오늘의 한문장 #0129

삶에서 위안이 되는, 나만의 공간을 가질 이유가 있다

by 미스터Bit

퇴근을 앞둔 시간, 회사 후배에게 술자리 벙개 제의가 왔다. 워낙 좋아하는 동생이라 전화벨이 울렸을 때 직감적으로 술 한잔하자는 연락임을 알았고, 고된 업무 탓인지 오랜만의 소주 한잔 제안이 내심 반가웠다. 다만 내가 모르는 낯선 이가 동석한다기에 약간 망설이기는 했지만, 후배가 칭찬하는 사람이라 같이 자리를 했다. 오랜만의 벙개이자, 동시에 오랜만의 낯선 사람과의 술자리였다.


나와 친한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낯선 이와 같이 있는 것이 부끄럽다거나 어색하다기보다는, 사실 뭔가 꽉 끼는 양복과 넥타이를 목 끝까지 옭아맨 것 같이 내 행동이나 언어가 제약받는 것 같아 불편하기에, 낯 가린다고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어리고 젊었을 때는 완벽히 클래식한 정장을 입고 하루 종일 활동을 해도 불편함이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 고무줄 바지가 더 정감 가서 좋다. 인간관계도 점점 고무줄 바지 같은 사람들이 자석처럼 끌린다.


다행히 후배 말대로 좋은 분이셨고, 불편함 없이 수다를 떨다 약간 늦은 밤에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상암동에서 집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늦은 밤이 되니 지하철 배차 간격이 길어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쳐서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다. 자주 있는 벙개는 아니나, 최근 들어 술 약속을 거의 안 하다 보니, 밖에서 오랜 시간을 활동할 때면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요즘 들어서는 부쩍 든다.


그런 연유로 오늘은 일찍 귀가해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저녁을 먹고 샤워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섰는데, 느닷없이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가 더없이 안락해 보였고 만족스러워 혼자 웃었다.


내가 자의식을 인식하기 시작하고부터 줄곧 나는 나의 성향을 외향적, 요즘의 언어로는 E 성향으로 믿고 행동해 왔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보내는 것을 선호했고, 새로운 공간을 찾아 더욱 밖으로 향했다. 미얀마에서 살던 레지던스 거실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주말 오후에, 문득 혹시 내가 외향적인 E가 아니라 I는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진짜 나의 자아는 정적이고 내적인 것을 좋아했고, 어느 순간부터 집에 있는 것이 편하고 좋았다. 심지어 코로나 격리 시절에는 방 안에서 며칠을 갇혀 있었어도 전혀 갑갑하지 않았다. 높은 가능성으로 후천적으로 내가 나에게 외향적 인간이라는 프레임을 억지로 씌웠다는 의심이 들며, I인 나의 정체성을 자꾸 발견하게 될 때마다 약간의 혼동이 온다.


인위적 프레임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오랜 생각 끝에 원인은 공간 때문이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자의식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나는 나만의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25평 남짓한 아버지 집에서 3세대가 살았다. 삭월세라는 우리나라 80년대의 독특한 임대차 제도 덕에, 방 세 개의 주택에서 방 두 개는 2세대의 가족에게 임차를 주고 우리 네 식구는 한 방에서 생활을 했다.


그 후로 결혼을 하기 전까지, 어느 장소에서도 내 전용 공간은 기껏해야 두세 평 남짓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져보지도 못한 공간에 집착했다.


처음으로 넓은 집, 즉 넉넉한 공간을 가졌을 때도 나의 무의식은 과거의 낡은 습관을 떨쳐내지 못하고, 마치 남의 공간을 빌려 쓴 것처럼 여전히 어색하고 적응되지 않아 편하게 만끽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공간의 모든 안락함이 온전히 내 안으로 스며든 미얀마에서의 그 날오후, 나는 더 이상 공간을 찾아 방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러모로 미얀마는 나에게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의 주거 공간, 특히 아파트는 지독한 효율성의 추구로 천장이 유독 낮아 그 점이 아쉽다. 건축가 유현준은 '어디에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공간이 주는 힘을 설명했고 격하게 동의한다. 하나만 발췌하면, 우리나라의 학교 시설과 가장 닮은 건축 구조물은 감옥 시설이고, 학교 건물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우리 아이들의 정서적 불행이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약간의 건축학적 공간변화로도 학교 폭력 등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 집에서 느낀 만족스러운 행복은 그 의미가 단순히 편안함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집 내부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의 전반적인 삶의 질이 높아졌고, 정신이 맑아져 생산적인 충만감이 든다. 그리고 나는 더 나은 공간의 꿈을 여전히 꾼다. 강변북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한남동의 천장 높은 집, 나는 여전히 그 안에 있는 나와 나의 가족 이미지를 그린다. 그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꼭 크고 좋은 집이어야만 내 공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단 한 평의 공간이라도 내 생활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이면 충분히 안락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윤우상 원장은 그의 저서에서 현대인의 정신장애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공황장애는 불안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나는 그 불안의 원인 중 큰 이유로 정신적, 물리적 공간의 협소함을 꼽는다. 일상에서 마음 붙일 공간을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나의 경우, 어떤 일에 몰입할 필요가 있을 때면 거실에 놓인 낡은 1인 소파에 앉아 시작한다. 가족에게도 이곳은 내 자리라고 선포했고, 그러고 나니 밖에 있을 때면 빨리 집의 내 공간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부쩍 든다. 만약 당신의 집에 당신만의 공간이 없다면 당장 선을 그어서라도 확보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케아의 몇만 원짜리 안락의자로도 충분히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한번 시도해 보라. 위안이 되는 나만의 공간을 가져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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