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B와 D 사이에서 C의 연속이다.
딸아이가 학수고대하던 중학교 배정 결과가 드디어 나왔다. 학교 배정이 오로지 운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이고, 세 군데 정도의 선택지라, 딸아이가 원하는 학교로 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행히 원하던 학교에 가게 되었고, 가까운 친구들도 같은 학교에 배정되어 자기들끼리 내친김에 입학 등록을 하고 왔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딸아이가 자신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 처음으로 간절하게 희망했던 첫 번째 선택지였고, 또한 자신의 손으로 등록한 첫 번째 학사 일정이었다. 내가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입학 등록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굉장히 빠른 독립적 행동이다.
국내 복귀가 결정된 작년 7월, 딸아이에게 지금 사는 이곳으로 가려는데 어떤지를 물으니, 이곳 학교의 교복이 예뻐 마음에 든다고 쿨하게 답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으니 딸아이는 아쉬운 마음에 혼자 울었다며, 아빠가 속상해할까 봐 속 깊은 행동을 했던 것이라 했다. 그래도 이곳에 오고 나서 딸아이는 교복이 예쁜 그 학교에 꼭 배정받았으면 좋겠다고 속마음을 표현했고, 간절하게 바랐던 덕분인지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이면에는 나와 아내의 '선택'이라는 사전 행동이 있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살 수 있는 여러 동네를 선택지에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여, 이곳으로 우리 가족을 이끌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가 다른 동네를 선택했다고 하면 지금과는 다르게 전개된 미래를 마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내와 나의 선택이, 딸아이가 주도적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원하는 중요한 것을 마음에 새길 기회를 제공했고, 결국 기다림 끝에 원하는 결과를 얻게 하는 성취감을 선물했다. 이것이 바로 선택이 삶에 끼치는 영향이자 중요한 힘이며, 스티브 잡스가 강조한 연결이다.
누구보다 이런 선택을 통찰력 있게 바라본 철학자는 장 폴 사르트르였고, 그는 삶을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어록을 남겼다. 하루에도 수천 번 하는 선택이 쌓여 결국 지금의 인생을 만들었다는 날카로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딸아이는 드디어 선택이라 부를 수 있는 시도를 처음 한 셈이다. 앞으로 인생의 중요한 관문 앞에서 굵직한 선택들을 성실히 쌓아 의미 있는 삶을 찾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한 도울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선택들을 보다 잘하기 위한 마땅한 조력자가 없던 탓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다. 조금 수고스럽기는 했지만, 지금 뭔가를 선택할 때 비교적 신속하고 판단이 나쁘지 않은 것을 보면, 이런 시행착오들이 나름 나은 선택을 하는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면, 생각보다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업무에 필요한 판단과 선택은 제쳐두고라도, 물건의 구입, 커피 주문, 심지어 점심 메뉴까지 통쾌하게 선택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나는 이런 현상은 우리의 삶의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학벌의 선택을 강요당했고, 도움 되는 친구를 사귀라고 강요당했다. 회사에서는 말 잘 듣는 편에 서라는 선택들을 또 강요당한다. 대다수는 선택이 강요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자주 쓰고 있는 가스라이팅의 개념이다. 세상은 착하고 말을 잘 들어야 부려 먹기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상적인 방향은 내가 한 선택들을 가치 있게 되기 위해 타인들이 직접 지켜주는 것이다. 넓게는 회사 또는 조직에서의 리더로서의 선택을 의미하고 좁게는 일상에서 반복되는 루틴들이다. 쉽게 얘기하면 내가 먼저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면, 이후에 타인들은 따라주는 것이다.
리더가 하는 선택이라는 의미는 잘 알 테지만, 루틴의 선택은 개념이 조금 낯설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점심시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점심을 혼자 먹기로 선택했고, 일반적으로 직장인에게 강요되는 직원들과 우르르 몰려가 밥 먹기를 선택하지 않은 셈이다.주말에도 마찬가지로 책 읽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운동을 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고, 술을 잔뜩 마시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어떤 선택이라도 주도적으로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의미 있는 선택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겠다'고 한번 선택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