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문장 #0201

월급은 나의 생명력과 교환한 돈의 가격이다

by 미스터Bit

신입 직원이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88년도를 떠올리면 가장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 없이 말해보라는 나의 엉뚱한 질문에 "삼촌?"이라고 답하는 신입은 나와 정확히 20살 차이가 난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고참 대리님은 "88년도는 올림픽이지"라고 훈수를 두셨다. 나에게 88년도는 나와 공감할 수 있는 대화가 가능한 마지노선 후배들이 태어난 해이다. 각자가 떠올리는 88년도의 이미지 단어만큼 우리는 서로 다르다.

신입과 퇴근길 방향이 같아 어쩌다 보니 10여 분 되는 지하철 5정거장의 거리를 같이 왔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내성적인 성향으로 짐작되는 신입이 부담을 느낄까 봐 가볍게 하루의 안부를 물었고, 회사에서보다는 덜 경직된 표정으로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답을 했다. 혼자만의 착각일 수는 있으나, 다행히 신입은 나와의 대화를 이어갈 의지 정도는 있는 것 같아 부담이 덜했다.

사실 하루의 안부를 묻기 충분한 3~4분 정도의 스몰 토크를 하고 나면, 더 이상 이어갈 대화의 주제가 없다. 아마 신입이 회사에 적응을 한다고 해도 앞으로의 대화 주제가 마땅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대화의 필요 조건에는 '내가 궁금할 만한 것'이 매우 중요한데, 확률상 신입이 그런 걸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남은 4~5분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게 선배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 엊그제 받은 월급에 대한 감회를 물었다.

신입은 생각보다 월급을 많이 받았다며, 첫 월급을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에 펑펑 쓰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잔소리 모드가 켜져, 내가 신입으로 돌아가면 바꾸고 싶은 순간 하나가 바로 첫 월급을 펑펑 쓴 것이라며 짧은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내가 들었다면 또 쓸데없는 잔소리를 했다며 지적했을 대목이지만, 중요한 이야기라 참기 어려웠다.

지금은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입사하기 전 정말 끔찍하게 돈이 없었다. 없는 살림에 또 먹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은 많아 상대적으로 경제 능력이 있는 친구와 선배들을 부단히 쫓아다녔다. 그래도 염치가 아주 없지는 않아, 돈을 벌고 나서부터는 그간의 빚을 갚느라 또 부단히쓰고 다녔다. 그 덕에 다행히 딱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마음의 빚은 다 갚았으나, 통장 잔고가 한겨울 단풍나무 가지마냥 앙상했다. 신입 때 버릇은 결혼 전까지 이어졌고, 부자 마음만 품고 아내와 결혼했다. 매번 느끼지만 이런 나와 결혼해준 아내가 큰 사람임은 틀림없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내가 만약 신입 때부터 돈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매우 중요하지만 이 글의 주제와 맞지 않기에 별도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결론적으로 나는 부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더 부유해질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 월급은 내 생명력과 교환한 돈의 가격이라는 것을 나는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알았어야 했다.

우리는 취업이 어렵다는 사회적 배경으로 월급은 회사가 주는 고마운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내 시간과 노동을 정당하게 돈으로 맞바꾼 결과다. 좀 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나는 죽어가는 오늘의 나의 생명을 회사의 월급과 교환한 셈이다. 그렇게 힘들게 우리 손에 들어온 돈을 우리는 펑펑 쓰고 싶어 안달이 나있고,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타인의 소비를 욕망하는 것이 SNS이고, 거기에 열광하는 현대인들이 바로 그 증거이다.

신입에게 얘기하고 싶었던 핵심은 나에게 찾아온 돈을 귀하게 대우하라는 태도에 관한 얘기였다. 이는 신입에게 얘기하는 것이자, 동시에 나에게도 절대 잊지 말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나 역시 지금보다 훨씬 부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바른 공부가 필요하다.

신입과의 대화 끝에 신입은 서울에서 과연 집을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했고, 나는 5년이면 집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청년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과장의 언어가 아니라 나는 충분히 실행 가능한 현실을 이야기한 것인데, 아마 그는 내 말을 귀담아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조만간 나는 신입과의 퇴근길 동행을 종료할 것이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데, 나의 경험과 거기에서 비롯된 지혜를 무료로 알려주는 것에는 항상 유효기간이 있고 유료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신입이지만 예외는 없다. 다만 유료 전환 후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돈이 아니라 경청이라는 것을 그가 안다면 우리는 좀 더 긴 시간 동안 퇴근길 동행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신입이 타인과 사회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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