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강인함은 고독을 긍정으로 바라볼때 생긴다
오랫만에 일본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부터 아내는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는데, 연말부터 몸이 아파오는 바람에 이제서야 겨우 2박3일의 짧은여행을 실행했다. 아직 치료중인 아내의 몸상태가 걱정되서 여행가는것이 온전히 마음 내키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집 안에서만 갇혀있는 것 또한 건강에 능사가 아닌것같아 마음을 고쳐먹고 여행에 동의했다. 또한 초등학교 졸업을 한 딸아이에게도 다른 세상을 구경할 기회를 줄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좀 더 여행에 긍정적인 마음이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아내의 몸상태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무리하지 않는다면 여행이 충분히 가능한 상태가 되보여 걱정이 덜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전혀 엉뚱한데서 발생했다. 딸의 졸업과 가족 여행으로 설렌 맘이 배가 된 아침, 아내의 첫마디는 아들이 고열이라 여행을 못갈것 같다고 했다.
잠과 현실의 경계에 의식이 자리하고 있어 처음에는 꿈을 꾸는줄 알았다. 이내 완전히 현실의 경계로 넘어왔을 때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아픈 아들을 무리해서 같이 가거나, 혹은 여행 일정 전부를 취소하거나, 또는 아들을 혼자 남겨두는 선택지만이 있었다.
아내의 몸상태를 고려해, 아들이 독감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일종의 격리 차원의 여행으로 프레임을 전환해 아들만 두고 가기로 선택했고, 일사천리로 아들몫의 여행 일정을 전부 취소했다. 그간 아내의 간호로 고생하신 장모님이 짧은 시간이지만 혼자 보낼수 있던 시간도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혜자에서 다시 가장 큰 피해자가 되셨다. 아픈딸 간호에 이어 손주간호까지 짊어진 장모님을 보며 우리네 부모님의 삶도 참고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고단함의 시작과 끝은 도대체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뜬금없이 아들 자랑을 하자면, 우리 아들은 인물이 좋은편이다. 아내를 닮아 작은 얼굴에 적당한 V라인 턱선, 과하지 않은 날렵하게 높은 콧날, 그리고 유난히 흰피부와 심지어 보조개까지, 내가 어렸을때 부러워했던 도시적이고 세련된 부잣집 아들스러운 외모를 우리아들이 가지고 태어났다. 거기에 나의 흥과 예술가적 감성까지 몰빵된 DNA로 타인으로 주목받기 좋은 기질이 분명있다.
이녀석은 태어날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 우리부부는 아내의 직업 커리어를 살리고자 아이를 한명만 낳아서 키울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딸아이 존재가 주체하지 못할 감격으로 느껴졌고, 이런 감격이 두 배가 되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하는 생각에 계획을 수정했는데,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다이내믹해졌다.
아들의 출산이 가까워질 무렵, 딸아이 출산도 도맡으셨던 산부인과 선생님은 아이의 다리 뼈가 약간 휘어 크면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는데, 역시 크면서 약간의 안짱다리가 있는 편이었다. 비싸게 비용을 들여 다리 교정도 해보았으나 한창 뛰어다녀야 하는 아이에게는 무리였고,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6개월쯤 무렵 분유에 의한 기도 질식이 되어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던 적도 있었고, 기어 다닐 무렵 제주도로 간 가족여행에서 전기포트의 끓인 물을 엎어 손과 다리에 화상을 입어 오래 입원을 하기도 했다. 화상으로 입원한 것을 계기로 아내는 일을 그만두었고, 우리는 우리 미래의 계획을 다시 전면 수정해야 했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나도 어렸을 때부터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내리막 경사에서 자전거를 타다 머리가 깨져 동네 군의관 아저씨가 꿰매준 적이 여러 번이고, 발차기하다 넘어져 팔에 철심을 박아 고정하기도 했고, 심지어 회사에 다닐 때도 축구를 하다 인대가 끊어져 수술도 했다. 그 옛날 어머니가 입에 달고 사셨던 "몸 다치고 아프면 너만 손해야"라는 말을 지금 내가 아들에게 그대로 입에 달고 산다. 옛 어른들의 지혜는 틀리는 법이 없다.
물리적 사건 사고뿐 아니라 과한 텐션과 감정선 때문인지 친구들과 관계에서도 구설수가 몇 번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주변인으로 머무는 적도 있었다. 다소 부당한 경우에는 아빠로서 강력한 개입을 하고자 마음먹은 적도 있으나, 현명한 아내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며 자중하라 했고, 아내가 약간의 조언을 보탠 덕분에 아들은 그런 힘든 시간을 스스로 잘 넘겼으며, 지금은 꽤 단단해진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본인만 남겨두고 가는 우리를 보는 눈빛이 아쉽기는 했지만 떨쳐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예전이었으면 상상하기 힘든 의젓함이었다.
개인적으로 아들이 아직 어리지만 혼자 고립되는 고독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희망한다. 인간의 강인함은 고독을 긍정으로 바라볼 때 생긴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인간을 부정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마음들, 즉 불안, 갈등, 시기, 분노 등은 고독을 극복하지 못하고 외로움이나 결핍으로 해소하려 하는 데서 온다. 따라서 고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단하다.
많은 가족 여행에서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는데, 동행하는 아들이 없으니 왠지 허전하고 쓸쓸한 게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비록 할머니와 함께라고는 하지만 혼자의 시간을 견딘 아들의 배움은 작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또한 기존과는 달랐던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얻은 게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다음은 우리가 어떤 여행을 만들지 또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