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문장 #0218

명사가 아닌 동사로 꾸는 꿈을 살자

by 미스터Bit

퇴근해서 온, 집안의 공기가 유난히 무거운 날이 있다. 가족 위계 중 서열이 가장 낮은 가장들은 생존을 위해 그런 일종의 위기를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그날은 딸아이의 중학교 입학 반 배치가 있는 날이었고, 그걸 미리 묻지 않은 내가 아차 싶었다. 속으로 결과가 좋지 않구나 생각하며 몸을 사리는 순간, 아내가 방 안에 있는 딸에게 뭘 잘해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냐며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으라 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딸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부어 있었고, 겨우 울음을 멈춘 채 식탁에 앉았다. 그러나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고, 나는 재빠르게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상황은 내 눈치 보다 훨씬 안 좋았다. 그간 학원 레벨 테스트에 쏟은 노력과, 각종 경시대회를 치르며 그래도 나름 시험 꽤나 봐왔다고 자부하던 딸아이인데, 다소 생소한 시험 유형에 그녀는 시간 부족으로 시험지의 답을 OMR 카드에 전혀 옮기지 못했다고 했다. 가끔 넋이 나가 있기가 특기인 딸아이의 평소 기질을 미루어 짐작건대 딸아이는 처음 시험 안내에 대한 가이드를 귀담아듣지 않았을 것이고, 이 시험은 기존에 문제를 다 풀고 OMR 카드에 적어 내는 방식이 아니라 과목 시험이 끝날 때마다 OMR 카드를 제출하는 방식이었기에 일종의 사고 정지가 일어나 이런 사태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딸아이는 중학교 반 배치고사라는 우리 사회에서 숫자로 서열을 구분 짓는 첫 진입 테스트를 완벽하게 망쳤다. 본인의 억울함과 실망감은 제쳐두고라도 반 배치고사 때문에 딸의 컨디션을 유난히 챙기던 아내도 어이없는 모양이었다. 반 배치고사와는 무관하지만 초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만만치 않은 사교육 스케줄을 묵묵히 소화하며, 최근 겨울 방학 특강이라는 명목의 하루 8시간 수업을 일주일에 세 번씩 잘 견뎌준 아이였던지라, 이번 시험의 망침은 가족에게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물론 나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 인생의 시험에서 가장 위기로 기억되는 순간은 초등학교 5학년 중간고사로 기억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정기적으로 보았고, 친절하게도 점수와 전교 석차를 통지표라는 종이에 또박또박 적어 부모님께 배달되곤 했다. 그 시절 사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엄마가 공부를 꼼꼼하게 챙겨준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공부를 꽤 잘했다. 공부에 소질이 있었다기보다는 단기 암기력이 좋아 시험 전 벼락치기로 한번 쓱 보고만 가도 성적이 잘 나왔고 선생님과 부모님께 인정받기에는 충분한 실력이었다.


5학년 중간고사 사회 시험 시간, 산을 설명하는 문제였는데 알 듯 말 듯 답이 생각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인생 처음으로 무사히 커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 시험의 답은 백두산이었다. 나는 그날의 내가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어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있으며, 더는 비겁하게 살지 말자고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를 유난히도 자책했던 것 같다.


딸아이의 실수를 생각하다가 내 삶에도 중요한 시험을 망쳤던 적이 있었나 생각하다 대학 졸업 즈음 취업 면접이 기억났다. 그 당시는 대학 졸업과 취업이라는 인생의 거대한 불안을 움켜쥐고 살던 시기라 취업 전형 일정만 맞으면 딱히 원했던 회사는 아니지만 일단 원서를 넣었다. 내가 원서를 넣은 곳도 국내 굴지의 제조 대기업이었는데 회사 인사과에서 면접 전 연락이 왔다. 이유는 내가 원서를 넣은 회사가 아니라 계열사 중 한 곳을 언급하며 그 회사로 면접을 봐보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때는 대기업 계열 중 당연히 간판 기업만 눈에 들어오던 시절이라 인사부에서 제안한 계열사는 생소한 곳이었다. 아무튼 나는 면접을 보러 갔다.


그런데 면접 장소에 가서 진행 직원에게 나의 신상을 밝히니 직원은 나의 면접 일정이 없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일정을 착각해서 하루 늦게 온 것이었다. 아무리 간절히 원하던 회사는 아니었지만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를 너무 대충 생각하는 나 자신이 심하게 부끄러웠다. 회사의 배려로 그날 면접을 보기는 했으나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연히 나는 그 회사에 떨어졌다. 지금은 재밌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경향이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기분이 나의 행동을 많이 좌우했고, 그로 인해 나는 나의 젊음을 허비했다.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딸아이의 OMR 사건이 오히려 한편으로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살아보니 살아가는 데 있어 이기는 것보다 잘 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나는 지는 날에 좌절하고 아파하며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해 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잘 졌으니 괜찮다는 위로를 받아본 적이 없었고, 지고 난 마음을 적절히 다루는 법을 배운 적이 없이 독학하느라 많은 시행착오와 그만한 대가들이 필요했다.


그런 관점에서 나의 시행착오를 나의 아이들에게 작은 사례로 제공하며 위로할 수 있기에 이번 사건이 딸아이에게 좋은 경험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인생이라는 시험을 잘 통과하는 사람은 매번 백점을 맞는 사람이 아니라 빵점을 맞아도 또 시험을 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른들의 시험도 마찬가지이다. 승진 혹은 1등이라는 결과가 안 나올 때면 세상 다 산 것처럼 축 처져 있는 사람이 내 주위에도 부지기수이다.


조금은 오만한 얘기일 수 있지만 지금의 나는 결과에 예전만큼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과정을 즐기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즉 명사가 아닌, 동사로 꾸는 꿈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임원이 목표였다면 지금은 회사의 CEO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회사와 옆의 동료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회사원이 나의 꿈인 것이다.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꿈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딸의 눈물은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 억울함이 아니라 값비싼 배움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 되기를 아빠로서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만일 딸아이의 답안지에 옮기지 못한 시험지의 실력이 올바르다고 하면 결과로 나온 숫자가 아닌 과정의 탁월함을 발견해 주는 빛나는 스승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어른이자 부모로서 숫자로만 인정받는 이 사회를 우리 아이들에게 학습시켜야 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매우 안타깝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 아이들이 가슴속에 많은 동사의 꿈을 심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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