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건강과 평범한 화목에 감사해 하자
긴 명절 연휴가 무사히 끝이 났다. 명절 덕분에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동생네 가족도 만나고, 친지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친구와도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모든 집이 저마다 다른 서사가 있고 각자의 희로애락이 있었을 텐데 우리 가족도 명절에 관해서라면 일일이 설명하기 힘든 어려움을 많이 겪어왔고, 그런 가운데서도 또 한 번의 명절을 무사히 끝낼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는 대가족이다. 결혼 15년 차 아내가 지금도 한 명 한 명 친척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식구가 많다. 게다가 많은 식구들의 숫자만큼 현재도 또 다른 식구들이 해마다 생겨나고 있다. 2015년 즈음 할머니의 백수를 기념하는 자리에 할머니의 자손들이 모였을 때 센 인원수가 100명을 훌쩍 넘었고, 중학교 입학을 앞둔 우리 딸이 그 당시 집안 막내였으니 지금은 숫자가 자명하게 더 늘었을 것이다. 게다가 장수 DNA가 있어 집안의 가장 어른이신 큰 고모가 100세를 목전에 두신 것을 감안하면 당분간은 식구가 더 늘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엄청난 대식구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래도 바람이 잘 나는 편이다. 많지 않은 재산이지만 상속 시에도 서로를 더 챙겨주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만 봐도 아버지 형제들의 우애가 좋고 효심이 깊다. 집안 어른들이 소위 양반 성품이라 큰 풍파 없이 오랜 세월을 지내왔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식들이 그들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고 그 세대 간의 차이로 인해 잡음들이 곧잘 생기곤 한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결혼식에서 어머니가 부재인 상황에서 혼주 자리에는 큰 어머니가 앉으셔야 한다는 집안 어른들의 결정 덕분에 결혼식에 온 많은 사람들에게 큰 어머니가 새어머니가 아님을 일일이 나중에 해명해야 했고, 이제 막 새 며느리가 된 아내가 생소하게 치러야 하는 제사와 차례상에 대한 큰 어머니들과 작은 어머니들의 훈수가 매서워 명절만 되면 파김치가 되는 아내의 눈치를 봐야 했으며,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달마다 돌아오는 가족들의 경조사에 구두 굽이 닳도록 쫓아다녀야 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고의 시간을 버틴 끝에 대가족의 서사가 어느덧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음을 이번 설을 통해 체감할 수 있었다. 푸념하듯 "시대가 많이 변했어"라는 아내의 말처럼 명절 풍경이 많이 변했고, 한 세대가 저물어 감을 느낀다. 한때는 제사를 간소화하자는 아들들의 제안에 그런 얘기할 거면 오지도 말라며 벼랑 끝 전술로 으름장을 놓아가며 고집스레 지켜지던 아버지의 제사도 이번 명절부터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타협을 할 수 있었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아버지에게 제사가 어떤 의미인 줄 알기에 나와 동생은 서서히 변화하는 방안을 제시했음에도 아버지는 완강하게 타협을 거부하셨고 나는 극단적으로 명절이 없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명절 기피증이 생겼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우리가 제안한 명절 여행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고 하면 우리 가족의 명절 풍경,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의 명절 풍경은 훨씬 행복했을 텐데 그 점이 여간 아쉽다.
그럼에도 이런 오랜 투쟁 덕분에 이른 시점에서 나는 죽음과 죽음 이후라는 것에 대한 밑그림을 확실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한 생을 후회 없이 마친 것에 대한 감사와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 방송에서 배우 선우용녀 씨는 자신의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슬퍼하지 말고 춤을 추고 노래했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밝혔다. 멋진 생각이다.나 역시 내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울지 않고 나와의 시간들을 추억하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으면 한다. 그렇기에 아쉬움 없고 후회 없이 현재를 살아야 한다. 진부하지만 카르페디엠과 메멘토 모리가 한몸이라는 논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의 기일에 온 가족이 어떤 바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시간을 만들어 나를 추억하도록 유언으로 남길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났고 거의 스무 번의 제사를 지냈지만 어머니 제사에서 어머니 얘기를 꺼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손주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한 번도 보지 못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구전으로라도 전해주는 드라마 같은 따뜻한 장면을 상상했지만 아버지는 공산당 선동처럼 들리는 유튜브 영상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틀어놓고는 뚱하게 늘 앉아 있었다. 나는 절대 그런 식의 상황들로 우리 가족과의 시간을 채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마지막으로 나는 죽어서 잊히지 않을 무언가를 남겨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것이 어떤 건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찾아보고자 한다. 내가 이 지구별에 온 이유를 찾아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예전 어른들은 동네에 잘 안 풀리는 이웃이 있으면 조상을 잘 모시지 못해 집안에 화가 생겼다며 우리 어머니들의 청춘을 통째로 바쳐서 유지해 온 제사를 엄숙하게도 정당화했다. 나는 이 말이 상당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어떤 어미 아비가 자식들이 소홀히 했다며 자식들이 화를 입기를 바라겠는가. 예전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에서 이성재가 연기한 극 중 빌런이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했는데, 그 어머니는 아들의 범죄가 발각될까 봐 죽어가면서까지 아들이 흘린 손톱 조각을 삼켰다. 내가 아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이런 숭고한 것이고 나 역시 어떤 상황에서라도 죽어서까지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마지 않을 것이다.
아쉬운 것이 없지 않았으나 어찌 되었건 간에 명절이 잘 끝났고, 모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아무 사고 없이 가족 간에 웃으며 헤어져 돌아간 것만으로도 굉장히 기적 같은 시간을 공유한 것이라 생각된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가족의 건강과 평범한 화목에 더없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