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문장 #0216

평범과 비범의 차이는 속도가 아니라 꾸준함에서 온다

by 미스터Bit

큰 추위가 물러나고 어느새 공기에서 봄 냄새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포근한 새벽 날씨에 보조를 맞춰 가벼운 옷차림으로 아침 조깅을 나섰다. 영상 5도의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공기중에 기분 좋게 숨어있었고, 온몸으로 그것들을 헤치며 조금 천천히 앞으로 발을 뗐다. 기름때처럼 마음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잡념들이 달리는 동안 한 걸음에 하나씩 도로 위로 떨어져 나갔고, 조금씩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날씨 탓인지 양재천을 끼고 달리는 무릎이 오늘은 한결 상태가 나아 보여 5km 반환점을 1km만 늘려 보자고 마음먹고 결국 12km를 달렸다. 작년 8월 처음으로 러닝을 시작했을 때는 한 번 달리고는 2~3주를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고생했는데, 6개월 만에 제법 달릴 줄 아는 러너가 되었다. 달리면서 문득 "나는 왜 달릴 생각을 했을까?"라는 질문이 들었고, 달리는 내내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사실 전에는 나는 달리는 것보다 사이클 타는 것을 더 선호했고, 물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봄이 오면 또 본격적으로 사이클을 타고 이곳저곳을 누빌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몽글몽글해 온다. 미얀마에서 내가 거주하던 레지던스에는 일본인이 많았는데, 일본 사람들은 트레드밀을 참 열심히도 뛰었다. 아침 6시에 시작하는 휘트니스 클럽 문을 열자마자 들어서면, 어김없이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일본인이 있었다. 무역회사 법인장인 그는 날렵하고 다부진 체형의 중년 남성이었는데, 매일 한 시간 정도를 달렸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자리에서 항상 달렸다.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생각만으로도 지루해하던 나였는데, 그를 매일 보며 그가 달리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따라서 달려보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역시 지루하고 힘들어 30분을 달리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시간이 늘어 어느새 한 시간을 달릴 수 있게 되었지만, 좁은 휘트니스 클럽에서 달리는 것은 그다지 재미가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미얀마는 밖에서 달리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는 나라가 아니다. 달릴 공간이 없고, 연중 30도가 넘는 날씨에 자칫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어쩌면 그때 마음껏 달리지 못해 응축되어 쌓였던 아쉬움이, 에너지를 터뜨릴 수 있는 장소에 오니 너무 자연스럽게 달리고 싶은 마음이 팽창되어 나를 달리게 등떠민 것 같다. 마침 내가 없는 시간동안, 런닝과 친해진 친구들이 있어, 나는 한결 더 쉽게 그들을 따라 러닝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문밖만 나서면 달릴 인프라가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잘 되어 있고, 마음만 먹으면 매번 다른 풍경을 등 뒤로 넘기며 달릴 수 있는 여건이 된다. 또한 많아진 러닝 인구 덕에, 일상에서 쉽게 보이는 그들이 있어, 그들을 보면서 달리고 싶은 동기가 쉽게 생긴다.


6개월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에게 달리기는 한마디로 그릇을 키우는 하나의 수단이다. 달리면서 나는 비운다. 합리적이지 못한 것들에 쌓였던 불만들,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들, 나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타인에 대한 시기심들, 이런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불안과 마음의 화, 조바심 등 부정적인 것들이 달리는 동안 비워진다.


요즘 들어 확신이 드는 사실은 삶을 무겁게 누르는 감정들이 비워져야 그 자리에 밝은 것들이 채워지면서 마치 나이테처럼 단단해지며, 나의 그릇이 조금씩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나의 그릇은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말 그릇과 마음 그릇에도 영향을 주는데, 이 그릇의 공간이 넉넉할 때면 나는 타인에 대해 조바심 없이 관대해지곤 한다. 결국 내 그릇의 크기만큼 타인과 관계할 수 있다.


따라서 자주 달린다는 것은 그만큼 자주 비운다는 뜻이고, 달림으로써 이전보다는 확실히 조금은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얼마를 달리겠다는 목표보다 얼마나 자주 달리겠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이노우에 신파치는 저서 '꾸준함의 기술'에서 평범과 비범의 차이는 속도가 아니라 꾸준함에서 온다고 말했다. 요즘 재밌게 보는 콘텐츠 중 하나가 과거 이소룡의 초인적인 몸놀림에 관한 영상들인데, 그의 어록을 보면 어떻게 그가 그런 초인의 경지까지 가게 되었는지 이해가 간다. 그는 "나는 만 가지 발차기를 연습한 사람은 두렵지 않으나, 한 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두렵다"라고 했다. 그의 말은 꾸준함에 관한 통찰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이다.


이소룡처럼 발차기 만 번을 연습하기는 어렵지만, 달리기에 관해서라면 빈번하고 꾸준하게 달려볼 작정이다. 왜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그토록 달리기에 집착하는지 요즘에 와서는 조금 이해가 간다. 많이 달리고 많이 비워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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