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문장 #0227

내가 빛나고 있음을 가장 먼저 알아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by 미스터Bit

날이 좋다. 두꺼운 옷을 더욱 단단히 여미게 만들었던 겨울 찬 바람의 마지막 기세도 이젠 꺾인 것 같다. 가벼워진 외투의 무게만큼 마음도 무거운 것들이 겨울바람에 실려 날아간 것처럼, 감싸는 봄의 기운이 기분 좋다. 외부일정이 많아졌고, 어제의 마지막 외부 미팅은 뜻하지 않게 예전에 다녔던 학교 인근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난 일정에 아직 해가 저물기 전이라 학교 캠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졸업 후 20년 만에 캠퍼스를 걸으니 기분이 묘했다. 집과 회사에서 고작 30분이면 닿을 거리를 20년 만에 오는 것을 보니 그간 내가 정말 치열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걷는 캠퍼스였으나 풍경은 그때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 중앙도서관도 신식 편의점이 들어선 것 외에는 그대로였고, 전공 건물도 작은 카페가 생긴 것 외에 외형은 그대로였다. 방학임에도 후배들이 많았다. 철없던 시절에는 밖에서 동문을 만나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았는데 이름도 모를 후배들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솟아올랐다. 나이가 드니 쓸데없는 감성이 풍부해짐을 새삼 느낀다.

캠퍼스 곳곳에는 부모와 같이 온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기대 가득한 눈으로 신기하게 캠퍼스 사방을 재빠르게 둘러보는 모양으로 짐작건대 새내기들이 분명하다.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걸려있는 플래카드에서 내일이 입학식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시골에서 입학 전에 학교 주변에 집을 구해 살 준비를 마친 자녀들의 설렘과, 어린 자식을 품 안에서 떠나보내야 할 부모들의 마음이 묘하게 교차되어 보인다. 27년 전 나와 우리 부모님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의 입학식 기억은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반면에 2001년 내 동생의 입학식은 나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나는 그 당시 군에 입대해 있던 터라 전혀 추억이 없다.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던 중, 큰 이모와 함께 찍은 서울대 정문에서의 입학식 사진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신 것을 알았다. 그날 사진에 담아둔 어머니의 표정은 세상에서 부러운 사람이 없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그 기쁜 순간을 오래 누리지 못하고 2년이 채 안 되어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과 부재 뒤에 오는 혼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나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하필 가장 반짝반짝 빛이 나야 할 순간에 맞은 겨울이었다. 인생의 나침반이자 스승이자 친구였던 어머니가 곁에 없어지자 그 뒤로 아주 오랫동안 나는 길을 잃었고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축축한 바닥에서 사는 기분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것만 같아 견디기 힘들었다.

어두운 얘기를 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단지 나의 그 시절과 같이 길을 잃고 혼자 방황하는 누군가 있다면 곧 또 괜찮아질 것이란 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뜻하지 않은 불운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살아보니 그게 자연스러운 인생의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대부분 힘을 잃고 거기서 주저앉아 버린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불운을 대하는 자세인데 그때는 그것을 알기가 여의치 않다. 나는 웅크려 울면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선택했고 그런 나에게 미안해 죽을 것 같다. 내가 빛나고 있음을 가장 먼저 알아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는데 나는 나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 중 하나는, 예전에는 무심코 넘겼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되새김질해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것들 중 하나가 지나간 음악들을 지금에 와서 음미하는 것이다. 최근에 자주 흥얼거리는 곡 중 하나가 1993년에 발매된 이상은의 '언젠가는'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첫 인트로 멜로디가 강렬한 곡들은 많은데, 이 가사보다 첫 구절이 강렬한 곡은 찾기 어렵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20년 만에 찾은 모교에서 예전에 모르고 보이지 않았던 젊음과 사랑을 이제는 웃으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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