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최대한으로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라
아이들의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6학년 아들 녀석이 반에서 학급 부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요즈음 학교에서의 학급 임원의 의미가 과거에 비해 다소 가벼워진 것으로 짐작되지만, 평소 아들 삶의 형태를 감안하면 우리 가족에게는 굉장히 놀라운 소식이었고, 부회장이라는 결과가 아닌 아들이 부회장이 되기 위해 시도한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의미가 상당히 크다.
첫 번째로는 자발적으로 학급회장 지원자에 입후보했다는 점이다. 미얀마 국제학교에 다니던 작년만 하더라도, 늘 친구들과 무리 짓는 딸아이와는 달리, 아들은 주로 소수의 친구들과 어울렸고, 종종 혼자 서성이는 것도 목격이 되었다. 급기야는 친한 친구에게 영문도 모른 채 따돌림 비슷한 것을 당해 아내와 나는 남모르게 속을 태우곤 했다. 미얀마를 떠나오던 때, 아들은 따로 인사할 친구가 없다며 덜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그간 친구 관계로 고민하던 안쓰러움을 고스란히 알 수 있었다.
그런 녀석이 전학 온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것도 그나마 새로 사귄 친구들도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태반이 갈라진 상황에서, 학급 친구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회장 후보자로 스스로 지원했다는 것 자체가 그동안의 고민을 일거에 씻어준 행동이었다. 아들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밝고 유쾌한, 그리고 친절한 기질이 다시 주위 친구들로부터 인정받은 것 같아, 부모로서 감사하고 기뻤다.
두 번째로는, 직접 공약을 내걸고 이행 노력을 한다는 점이다. 평소 유난한 엄마 껌딱지이자 아기 같은 애교 섞인 행동으로 우리 집의 유일한 사랑스러운 캐릭터인 아들이기는 하지만, 학교 생활에 있어서는 일거수일투족을 아내가 직접 챙겨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작년에도 아들의 적극성을 키워준다는 명분으로, 십여 명이 지원하는 방송반에 아들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온 가족이 총동원해 온갖 당근을 제시한 끝에 간신히 움직였던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가족과 사전에 상의도 없이 덜컥 학급회장이 되기 위해 스스로 손을 들고 지원해서, 학급 친구들을 위한 봉사 이행을 공약으로 제시한 뒤, 많은 친구들의 지지를 받아 부회장이 되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아이는 주체적이고 자존감 높은 청소년으로 자라고 있었던 것 같아 감개무량하면서도, 그간 몰라봐 줘서 미안하기도 했다.
전 KBS 아나운서 한석준 씨는 한 인터뷰에서 말과 대화에 대해 얘기하던 중, 다른 국가에 비해 유독 우리나라의 어른들은 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원인을 고민하다가, 우리 사회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바른 대화를 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배운 적이 없어 그렇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초등학생들을 위한 바르게 대화하는 법을 주제로 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
한석준 씨 주장에 격하게 동의한다. 그래서 나도 평소에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올바른 대화를 하기 위해 무척 노력 중이다. 나는 이번 부회장 당선 과정에서 보여준 아이의 성공 원인을 '말하는 태도' 때문으로 생각하고, 평소 나와 아내가 신경 썼던 아이들과의 대화 노력들이 감사하게도 아이들에게 조금은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이 학교 공부뿐 아니라 사회적 지능도 뛰어났으면 하는 욕심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학급회장 혹은 더 나아가 학생회장 같은 리더가 되어 보는 경험은 사회적 지능을 단련하는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당연히 이런 명사 형태의 바람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형용사 혹은 동사 형태의 지향점을 갖는 것도 똑같이 중요한 일이다.
풀어 이야기하면 나의 아들에게 회장, 혹은 사장, 의사, 부자라는 욕망 대신에 삶을 최대한으로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꿈꾸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아이가 손을 들어 회장이 되고 싶다고 표현했을 때, 그 순간 자신의 삶을 최대한으로 산 것이었고, 그 점을 대단히 칭찬한다.
삶을 최대한으로 산다는 감각은 오직 자신만이 아는 것이다. 이번 아들의 삶의 태도를 보며, 나는 오늘도 나와 가족 그리고 나와 관계된 모든 타인을 위해 최대한으로 살았는지를 점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