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낭비가 있을까?

4학년인 내가 대학을 자퇴했다.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by 하리



대학을 자퇴했다. 4년제 대학이었고 난 이제 졸업반이었다. 많은 지인들이 내게 대학 자퇴에 대한 '낭비'에 관련된 걱정 어린 조언을 늘어놓았다. 등록금이 아깝다, 시간이 아깝다,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노력이 아깝다. 결국 시간 낭비, 돈 낭비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번 '4학년 자퇴 사건'을 겪으며 이러한 고민이 들었다.


과연 '자퇴'가 인생에 대한 낭비였을까?



Tamako.in.Moratorium.2013.720p.BluRay.x264-WiKi.mkv_20210802_131527.582.jpg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2013)


"여자친구는?"
"헤어졌어요."

"왜?"
"뭐랄까. 자연소멸한 느낌?"
"뭐. 그런 거지."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2013)를 보면 1시간 17분의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인생에 '낭비'가 있느냐에 대해 현답을 얻을 수 있다. 영화는 백수 다마코에 대한 이야기를 사계절로 나누어 아주 느리지만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다마코는 집안일 하나 돕지도 않고 아버지에게 눌러붙어 살고 있는 대졸이다. TV 속 나오는 정치인들을 보며 '일본도 막장이구만.' 이라며 정세를 욕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에게 '막장은 너야!'라고 한 소리를 듣고 나서 그녀는 나름대로의 도전을 해본다.


비록 취업 준비는 아니지만, 아이돌 지원서를 써보고 꼬봉(?)이나 다름없는 중학생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 진짜 취업이라는 장벽 앞에서는 그러한 활동은 터무니없어 보일 뿐이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의 세상 속에서 아마 다마코는 사회에서 도태되는 '잉여인간' 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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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본인도 그런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번듯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동창을 우연히 만났을 땐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결국 다마코는 취업에 성공하지는 못하지만, 집을 나오게 된다. 한발짝 나아간 것이다. 영화는 작은 발걸음을 내딛은 다마코를 보여주며 인생에 '낭비'란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이돌을 준비했던 그녀의 모습도 매일 살아가면서 먹어야 하는 식사도 모두 인생에서 소중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것 하나 없다는 것.


그녀가 겪고 있는 '잉여기' 또한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듯이 '호황기'가 있으면 '잉여기'도 존재하니까.



아무리 시간을 혹은 돈을 낭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의 교훈이 있다. 그렇다면 그건 낭비가 아니다. 죽을 쑤든 밥을 짓든 그건 '경험'이 된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후회하면서 살던 나는 언젠가부터 '절대 후회라는 걸 하지 말자.' 라는 강력한 가치관이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다. 이제는 어떤 일을 해도 후회는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후회는 해봤자 머리만 아플 뿐이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자퇴 상담을 하며 교수님에게 들은 말씀 중 유일하게 내가 반박할 수 있었던 말은 '낭비'에 관련된 생각이었다. 교수님은 솔직하게 대학에서 배우는 것으로 엄청나게 성장을 한 케이스는 없다며 학위를 위해서라도 계다니고 졸업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나의 자퇴를 만류하셨다. 나는 교수님과 1시간 동안 대화를 하고 나서 끝끝내 자퇴승인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수업이 재밌었고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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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으킨 '대학교 자퇴 사건'은 '학력'을 얻지 못한 활동에 대한 낭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학력'을 포기한 채로 다녔던 나의 대학 활동은 전혀 '인생'의 낭비는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대학교육은 지금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글쓰기에 대한 지분도 가지고 있다. 나는 대학을 다녔던 순간이 인생의 낭비였다고도 자퇴한 것이 인생의 낭비였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진짜 그렇다 해도 낭비라고 생각한들 낭비가 아닌 게 되지는 않는다.


하물며 정말 인생의 낭비라고 말하는 술을 마시건 도박을 하며 인생의 밑바닥을 굴러도 (굴러본 적은 없고 그것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건 그 사람 인생의 나름 경험이 되어 고통의 쓴맛을 선사해 줄 것이다. 일어난 일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모라토리엄' 기를 지나 인생은 다시 빛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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