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세일즈에서 '산수'를 하는 자

결코 거상이 될 수 없다

by 구십구 퍼센트 E

세일즈 온도 #1; 럭셔리 세일즈에서 고객의 기념일이 갖는 진짜 의미

평화로운 오전, 문득 매장의 VIP 리스트를 살피다 한 고객의 생일 알람을 발견했다. 럭셔리 비즈니스에서 고객의 생일은 단순히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쌓아온 '관계의 온도'를 증명해야 하는 결전의 날이다. 나는 담당자인 케빈을 불렀다.

"케빈, 오늘 A 고객님 생일인 거 알죠? 고객님은 샴페인이랑 꽃 중에 어떤 걸 더 좋아하실까요?"

케빈은 마치 숙제를 완벽히 끝낸 초등학생처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 점장님. 걱정 마세요. 이미 아침에 깔끔하게 보냈습니다."

나는 안도하며 물었다. 케빈이 우리 매장의 품격에 걸맞은 센스를 발휘했기를 바라면서. "오, 그래요? 뭐 보냈어요? 요즘 줄리엣 로즈라는 장미가 여성들에게 반응이 좋대요."

"스타벅스 만 원권 쿠폰 보냈습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만지작거리는 고객에게, 동네 친구끼리도 미안해서 잘 안 보내는 '만 원권 쿠폰'이라니. 나는 조심스럽게,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왜... 하필 만 원짜리 쿠폰이죠? 그것도 스타벅스를? 사비로요?"

그러자 케빈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제적 논리를 펼쳤다. "그 고객님이 제 생일 때 만 원짜리 쿠폰을 보내주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똑같이 돌려드린 겁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죠."

아, 이 얼마나 숭고한 등가교환의 법칙인가. 케빈에게 그 고객은 '우리가 정성껏 모셔야 할 VIP'가 아니라, '자신에게 만 원의 부채를 안긴 채권자'였던 셈이다. 그는 고객의 축하를 받은 게 아니라, 만 원의 빚을 졌다고 생각했고, 생일이라는 완벽한 기회를 틈타 그 지긋지긋한 부채 관계를 청산(Liquidation)해버린 것이다.

케빈의 당당한 '부채 청산' 보고를 들은 뒤,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한가롭게 시간이 가는 걸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즉시 고객의 반응을 살폈다. 역시나, 고객의 피드백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대응'이라는 이름의 가장 잔인한 피드백이 돌아왔다.

수백만 원짜리 핸드메이드 백을 들고, 대를 이어 내려오는 장인 정신을 소비하는 고객에게 만 원짜리 모바일 쿠폰이라니.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관계는 정확히 만 원어치이며, 우리는 서로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줄 것도 없는 비즈니스적 타인입니다"라는 선전포고였다. 케빈은 단돈 만 원으로 우리가 수년간 쌓아온 신뢰의 온도를 영하 273도, 즉 절대영도로 얼려버린 것이다.

나는 즉시 다음 행동으로 옮겼다. 케빈이 꽁꽁 얼려버린 고객의 마음을 녹이려면,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데일 듯 뜨거운 온도'로 꽁꽁 언 고객의 마음을 녹여야 했다.

샴페인의 긴급 투입: 매장에 비치된 가장 고가의 샴페인을 꺼냈다. '축하'를 넘어서는 '사과'의 표시였다.

친필 카드의 온도: 케빈의 핸드폰 문자를 덮어씌우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만년필을 들었다. 직원의 미숙함에 대한 사과 대신, 고객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꾹꾹 눌러 담았다.

퀵서비스라는 속도: 마음이 더 식기 전에 도달해야 했다. 샴페인병이 퀵서비스 기사님의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흔들리며 도심을 가로지르는 동안, 나는 기도했다. 제발 이 샴페인의 탄산이 고객의 불쾌함을 조금이라도 씻어내 주기를.

결국 그날 오후, 샴페인을 받은 고객으로부터 짧은 메시지가 왔다. "점장님 덕분에 웃네요. 샴페인은 잘 마실게요." 그제야 나는 멈췄던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만 원으로 끝날 뻔한 인연을 수십만 원짜리 샴페인과 나의 수명 몇 시간을 갈아 넣어 겨우 심폐소생술 한 셈이다.

케빈은 '공정함(Fairness)'을 추구했지만, 럭셔리 세일즈는 '환대(Hospitality)'를 추구한다. 공정함은 수학의 영역이지만, 환대는 예술의 영역이다. 고객이 준 1도에 우리가 1.1도로 화답할 때 비로소 관계라는 온기가 유지된다는 사실을 케빈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결국 스스로 짐을 싸서 나간 건 어쩌면 이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케빈이 나에게 그 쿠폰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의 눈빛은 칭찬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가 '잘했다'고 믿었다. 고객에게 빚지지 않았고, 즉각적으로 반응했으며, 심지어 본인의 사비(비록 만원이지만)를 들여 화답했으니 이 얼마나 깔끔한 업무 처리인가.

하지만 럭셔리 세일즈에서 고객이 건네는 호의는 '교환'을 바라는 거래가 아니라 '연결'을 바라는 손짓이다. 고객은 케빈에게 만 원짜리 커피를 보낸 게 아니라, "나는 당신을 단순히 물건 파는 사람 이상으로 신뢰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 케빈은 그 귀한 마음을 받자마자 빛의 속도로 '만 원'을 돌려줌으로써 그 메시지를 '반송' 처리해 버렸다.

그것은 "당신의 호의는 정확히 만 원어치의 가치일 뿐이니, 더 이상의 감정적 교류는 사양하겠습니다"라는 거절과 같았다. 이보다 더 세련되게 상대의 호의를 짓밟는 방법이 또 있을까.

결국 케빈은 스스로 '럭셔리 세일즈맨'의 자격을 반납했다. 관계의 온도를 잴 줄 모르는 그에게 명품관은 그저 비싼 물건이 놓인 창고에 불과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