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영원히 살 거야.

오아시스 내한 공연 (2025. 10. 21.)

by 박범

살아본 적 없는 시간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다. 하지만 새천년이 오기 직전에 태어난 나는 반지의 제왕이 처음 개봉했을 당시의 혁신을 알지 못한다. 극장에서 <반지원정대>의 상영이 끝나고 난 뒤 트릴로지라는 것을 몰랐을 이들이 느꼈을 허탈함도, 그 뒤에 있었을 1년간의 기다림도 나는 알지 못한다. 야구를 좋아하고 기아 타이거즈라는 팀에 열광하지만, 해태 왕조 시절 사람들이 느꼈을 압도적인 영광과 해방감을 나는 알지 못한다. 현재는 레전드로 이름과 등번호를 남긴 선수들의 신인 시절을 보며 느꼈을 답답함과 염려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종종 살아본 적도 없는 시간을 그립게 만든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방영 당시의 10대들마저 매료시켜 있지도 않은 향수를 느끼게 만들었듯이.


굳이 따지자면 오아시스의 전성기는 새천년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가히 불후의 명작이라 불리는 <Definitely Maybe>와 <Morning Glory?>로 열린 전성기는 정규 3집에 이르러 종말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리고 명곡 범벅인 B사이드 컴필레이션 앨범과 함께 사전적인 의미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어떤 음악을 선호하는지는 개인의 취향이니 나처럼 DM이나 MG보다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를 즐겨듣는 이들도 많겠지만. 시간은 언제나처럼 빠르게 흘렀고, 원년 멤버들이 하나둘씩 팀을 떠났고, 새로운 얼굴이 들어왔다. 그러다 리암의 목소리가 완전히 맛이 가고, 두 형제는 죽도록 싸웠고... 2009년, 오아시스의 이름으로 적는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다.


Maybe I just wanna fly
Wanna live, I don't wanna die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아시스는 내 시대에도 청춘의 이름으로 영원이 되었다. 밴드가 해체한 2010년대에도 십대들은 MP3에 앨범 전곡을 넣어다니며 오아시스가 써 내려간, 살아본 적도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어떤 예술과 말들은 고동이 멈추지 않는 한 종종 영원으로 자리한다. 그저 날고 싶고, 그러니 영원히 살 거라는 낭만은 뜻 따위 상관 없는 원더월이 되어 여전히 서툴고 어린 젊은이들의 숨결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사실 내 십 대 시절 플레이리스트는 제라드 웨이와는 정 반대의 이유로 영국보다는 미국에 있었다. 브릿팝의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보다는 하드록과 메탈의 묵직함과 강함에 흔들렸고, 때로는 디스토션과 시꺼먼 비트에 매료됐다. 토니 스타크를 좋아한 만큼 AC/DC의 음악은 늘 플레이리스트에 있었고, 메탈리카와 시나위를 좋아하는 엄마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모락까지.


흐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은 날아가듯 흘러버렸고 어느덧 2010년대는 추억이 되었다. 살아본 시간을 그리워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20대 중반이 된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10대 시절과는 달리 오아시스의 음악이 꽤 들어 있다. 그들의 음악에 매료된 몇 가지 이유를 짐작해 보자면, 여러 트랙에 담긴 불확실의 낙천성 때문일 것이며, 분명함을 자신하며 probably 대신 maybe를 함께 말하는 모순 때문일 것이다. 너와 나는 영원히 살 거라고 낭만의 구덩이로 밀어 넣으면서 우리 인생은 결국 거대한 계획의 일부라며 떨어져 다친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따스함 때문일 것이다. 되고 싶은 것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춤을 추고 싶으면 추라며 쥐여 주는 초대권과, 지나간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이나 하라는 현실적이기 짝이 없는 조언 때문일 것이다. "누가 그러더라. 천국은 없다고. 자, 가서 말해봐, 지옥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세상에, 통쾌하기까지 하다. 우리 시대 청춘 역시 그들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유롭게 탬버린을 머리에 올리고 뒷짐을 진 채 내가 바로 로큰롤 스타다, 노래하는 패기 역시 청춘과 흠뻑 어울릴 수 밖에 없으니까. D'You know what I mean?


다시 말해 이건 돌고도는 트렌드에 맞게 닳아빠진 올드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에 깊이 예속되지 않는 원더월을 따라 미래를 알 수 없는 내 젊음을 걷고 있는 것일 뿐이다. 물론 원더월은 인생의 지침서 따위가 아니다. 그건 그냥, 완전 멋진 벽인 것 같다, 아마도. 분명히, 잠깐 등을 대고 기대 영원이 될 찰나의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벽인 것이다.


한때 맛이 갔던 리암 갤러거의 목소리는 전성기 때보다 거칠어졌을지언정 충분히 과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음악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공감을 산다. 그런 음악의 중심에서, 이제는 나이를 먹은 천사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영원을 살겠노라 라이브로 노래하고 있었다. 노엘의 달달하고 섬세한 보컬도 여전했다. 화려한 기교는 없을지라도 정직하게 가슴을 울리는 기타 소리, 천재 작곡가의 빛나는 사운드는 압도되어 열광하기 충분했다. 그러니까 1년 더 해주세요... 원합니다 가스 패닉 라이브 원합니다 4567집 위주 셋리


And I know we're going to uncover
What's sleepin' in our soul


콘서트에서 가장 재밌었던 순간은 역시 <Cigarettes & Alcohol>의 포즈난과 코리안 내선 순환 열차 <Don't Look Back in Anger>였다. 정말이지, 끝내고 싶지 않았달까. <Cigarettes & Alcohol> 때는 원래 노래 시작 전에 다시 앞을 봐야 하는데 포즈난에 심취한 관객들이 돌아보지 않자 리암이 박자에 맞춰서 유 캔 턴 어라운드라고 하더라.


그리고 여기,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불행한 이들이 있다. 무대 위에는 가정폭력과 가난 속에서 자란 로큰롤 스타가 있다. 하지만 그가 쓴 가사에는 불행이 없다. 대신 그는 말한다. 삶을 불행 따위의 손아귀에 맡기지 말라고. 우리는 언젠가 우리 영혼 속에 잠든 것을 밝혀낼 것이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관객들은 따라 부른다. 분노로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고. 영원히 부를 것처럼, 부르고 또 부른다. 이때 시계를 보는 척하는 락스타는 꽤 귀여웠다.


쉽사리 변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쉽게 변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는 나이를 먹었고, 세월은 영원을 노래하는 이들도 변하게 만들었다. 마침표인 줄 알았던 것은 쉼표가 되었고, 그들은 서로를 용서했으며, 이제는 무대 위에서 포옹도 한다. 너무 늦은 걸 알았을지라도 분노에 찬 채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는, 후회하지 말라는 그 가사처럼.




하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가 보는 것을 너는 볼 수 없다. 네가 보는 것을 나는 볼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우리는 아마도, 영원히 살게 될 거다.

우리는 그들이 절대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니까.



아침의 비가 뼈를 적시는 고통을 느껴본 적 있는가?

피부를 스미는 햇살에 살아있음을 느껴본 적 있는가?

어떤 날이든 아침은 매번 새롭다. 어떤 것들은 아침을 참 닮았다.


https://youtu.be/jmC3553Q3Fo?si=B9Znrm6M_1Oe0FWl


살아본 적 없는 시간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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