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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티나인즈 Aug 22. 2019

그녀가 전해준 이야기


장소는 풍경을 보여주고, 풍경  사물은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장소 안에서 이야기는 재생되고, 이후  이야기는 왜곡되었든지 과장되었든지 혹은 축소되었든지 상관없이,  사람 안에서  사람의 역사로 박제된다.


7살 때부터 8년을 살았던 대전 어느 동네를 한밤중에 찾았다. 20년 만이었다. 1박 하는 출장을 대전으로 가게 되었는데 마침 일을 본 곳에서 그 동네까지 택시로 10분 거리였기 때문에, 일을 다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기 전 설레는 맘으로 택시를 잡은 거였다. 동네는 바뀐 듯도 했고 그대로인 듯도 했다. 길의 폭과 방향, 건물의 위치는 그대로였지만, 각각의 형태는 어딘지 달라져 있었다.

  전학 가기 전 1년을 다녔던 집 앞 중학교와 시장 길목에 있던 친구네 빌라는 그대로였지만, 내가 살던 아파트 입구의 슈퍼는 편의점으로, 학교로 통하던 흙바닥 길은 매끈한 4차선 도로로 변해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천 원짜리를 손에 쥐고 콩나물 심부름을 갔다가 슈퍼에 도착해서야 돈을 잃어버린 걸 알게 되었던 일. 하굣길 오줌을 못 참고 바지를 적신 바람에 친구네에 들러 노란 타이즈를 빌려 입고 돌아왔던 일. 참 어렸던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멜랑꼴리 했다. 장소가 부리는 마술은 참으로 신비했다. 길을 밟는 것만으로도,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장소는 나에게 시간의 초월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날, 기억의 마지막 목적지는 피아노와 선생님이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 거실에는 검은색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다. 다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딸내미의 성화에 못 이겨, 부모님이 이사하는 김에 장만해준 피아노였다. 집에 피아노를 들인 후로는 가정 방문 레슨을 받았는데, 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우리 가족이 다니던 교회의 대표 반주자로, 인맥이 아니었다면 모시지 못했을 선생님이었다. 지방이긴 했어도 종종 공연을 하는 분이었고, 그 선생님에게 초등학생 제자는 나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선생님에게 배운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내가 무지막지하게 연습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렇지만 초견 실력은 좋아 심하게 혼나지는 않았다는 것, 앞으로는 정말 열심히 연습하겠다고 자주 선수 치듯 용서를 빌었던 것- 그리고, 선생님이 곡을 처음 줄 때 시범연주를 하곤 했는데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살짝 열어 놓은 창 사이로 들려오던 시끌벅적한 운동장 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졌던 것이 생각날 뿐이다.

  내가 선생님께 4년을 배웠을 무렵, 선생님은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셨다. 그 후로 나는 거짓말처럼 어느 한 선생님께 정착할 수 없었고, 이냥 저냥 동네 피아노 학원을 기웃거리다가 중학교로 진학하며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녀를 떠올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에게 특별한 것은 피아노지 피아노 선생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 년 전까지는.     


작년 가을, 갑작스레 배움에 대한 열망이 일어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질척거림이야 늘 나와 동반하는 것이었지만, 아주 가끔은 그와는 다른 결로, 피아노에 대해 일종의 순수한 감정 과잉의 상태가 될 때가 있었다. 직장 근처에 있는 동네 학원이었지만 수업 형태는 방문 레슨의 그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50분의 밀착 레슨. 나와 선생님만의 오롯한 시간. 그 시간 동안 나누는 대화는, 손가락 끝으로 표현하는 언어. 아다지오, 안단테, 알레그로, 모데라토- 쉼표도 연주하듯- 머리로는 노래를 부르며- 더 둥글게, 둥글게- 더 자신 있게- 더 힘차게-

  ‘아, 이거였구나.’ 근 두어 달을 새로운 피아노 선생님과 함께했을 때, 내가 깨달은 것은 나의 어릴 적 피아노 선생님이 내게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간 내가 특별한 그녀를 특별 취급하지 않았음도. 새로운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 선생님은 나와의 시간에 그녀의 모든 감정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보여줬고, 나에게도 그렇게 마음을 쏟아낼 것을 독려했다. 악상으로 이루어진 대화는 진실했다. 비록 나의 이야기는 엉성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선생님이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피아노를 통해 내뱉는 말들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듯했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선생님은 나에게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더 자신 있게, 더 힘 있게, 더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는 것을 나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나에게 새로운 언어 ‘사용법’을 가르쳐준 사람. 그래서 새로운 세계에서의 모험을 가능하게 해 준 사람이 바로 그녀였음을.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 안에는 풍경이 있다. 풍경은 우리를 장소로 이끈다. 장소 안에서 이야기는 만들어지고, 이후 그 이야기는 널리 퍼진다. 광활함으로. 우리 자신도 광활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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