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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mwonkang Aug 04. 2024

회색지대

- 잊힌 기억들

01. 빅뉴스


  안병장은 대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이상기후가 발생한 지 수 십 년이 되었다.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가 반복되다 보니 사람들은 변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래도 요즘 계속 쏟아지는 눈은 삼상치 않다. 그냥 눈이 내리면 폭설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뉴스에서도 대설주의보 발표는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24시간 동안 20cm 이상 쌓인다고 예상될 때 발표되는 대설경보가 일상적으로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기준을 상향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장병들은 눈 치우는 게 일상이 되었다. 천후로 훈련은 줄었고, 일의 강도는 훈련보다 훨 세었다. 가끔 북쪽에서 날아오는 오염풍선 수거 성가스런 일이지만, 그 정도의 일은 일종의 이벤트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 달 후면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전역제대인데 뭔 상관이란 말인가? 안병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담배를 피웠다.

  

제대를 앞둔 안병장은 요즘 고 2 때 교회에서 만난 주연이가 늘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제대하면 미연이를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재대하면 이 지긋지긋한 상도 끝이야.'

일상으로 굳어진 하루하가 지루하고 답답했다. 그럴 때마다  주연이가 떠오르곤 했다. 주연이를 생각하면 왠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폭설이 자주 반복되 안병장이 요즘 하는 일이란 눈 치우는 일 감독뿐이다. 대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했다.

노는 게 낙이었는데 제대를 앞두니 은근히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되어 안 피우던  담배까지 요즘 빨고 있다.

'뭘 해 먹고살지?'

담배연기만 후욱 불어내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 한문선생님도 불현듯 생각났다.


"선생님! 전, 뭐 해 먹고살아야 할까요?"


생뚱맞게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한문선생님이 돈키호테 같은 질문에 순간 당황하셨는지 안병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으응, 글쎄. 도올~"

'이 분이 갑자기 웬 돌을 찾으셔'

안병장은 한문선생님 표정을 살피며 뒷말이 궁금해졌다.


"넌 말이야, 돌처럼 단단잖아."

"그야 그렇지요. 왠 만해선 돌머리라 깨지지도 않죠."

"요즘 뜨는 게 조경이야. 돌과 관련된 일을 해봐.. 도올"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한문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안병장은 담임인 한문선생님을  힘들게  많이 혼났지만 한문선생님을 믿고 좋아했다.

뭐든 돌려 말하거나 숨기는 것 없이 바로바로 이야기하는 성격이셨다.

안병장은 담배연기를 들이시고 내뿜으며 주연이와 한문선생님을 생각했다. 그러자. 자기도 몰래 빙그레 미소가 나왔다. 


그때였다.

"안병장님! 큰일 났습니다."

갑자기 이상병이 쫓아와 소리쳤다.

"뭐야? 놀라게~"

"비행기가 떨어졌답니다. 비행기가"

"뭐? 이 악천후에 뭔 비행기?"

"들어와 보십시오. 뉴스가 계속 나옵니다."

안병장은 담뱃불을 부리나케 끄고 내무반으로 들어갔다. 모두 TV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호들갑 떨기는~'

안병장은 자신과 관련 없는 일에 무슨 호들갑이냐고 생각했다.


'사망자 명단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윤기복, 조아영, 김구수, 심수, 이팔용, 박종배..."

엄청난 안명사고였다. 무려 259명이 사망하고, 실종된 사람도 40명이나 된다는 보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다 운명인 거야.'

안병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죽을 운명이면 죽고 살 운명이면 산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종자 명단 발표에 많이 듣던 이름이 귓가에 들려 순간 안병장은 놀랐다. 안병장은 몸을 돌려 텔레비전뉴스를 보았다.

"실명단입니다.. 정수호, 오연~"

순간 병장은 '아'하는 한숨을 셨다.

'설마~아니겠지.'

'동명이인이겠지. 안돼. 미연인...'

안병장의 눈가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이를 보면 안병장이 생각하는 그 오미연과 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드니 자꾸만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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