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 계절 편지
쨍하니 맑은 쨍하니 추운 날입니다.
쨍하니 회사를 째고 싶지만 카드 값이 저를 붙잡습니다.
추울수록 공기는 맑아지고, 시야도 좋아집니다. 뭔가 명징해지는 느낌, 코 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차가운 온도에 일상 속에 매몰되어 있던 정신마저 깨어날 것 같은 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겨울 공기의 냄새. 진짜 겨울다운 그런 날입니다. 왠지 입김을 불어대고 싶어 집니다. 내가 뭔가 거대한 괴수가 된 기분이 된달까요. 하아아악!까지는 아니지만 하아아아 정도만 해도 한기를 뿜어내는 용이 된 것 같습니다. (둘째 아이의 하아아악!이 생각나네요. 정말 대단한 하악질?입니다.)
차가운 공기 속을 헤치고 얼음 같은 바닥을 디디며 지하철 역으로 걸어갑니다.
역시 롱패딩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온몸이 따스하고 보호받는 느낌입니다.
따뜻한 옷, 그 안에서 얼굴로 올라오는 따스한 온기, 부드러운 노란색 조명, 이불같이 쌓이는 눈,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붕어빵 가게, 삐익 소리와 함께 끓어오르는 주전자, 찬 손을 녹여주는 뜨거운 차, 그리고 마음을 데워주는 책 한 권.
겨울만큼 따뜻함이 어울리는 계절이 있을까요.
차가운 만큼 따뜻함이 존재감을 발합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고 싶어 지죠. 겨울이 깊어갈수록 이불 밖은 정말 위험해집니다. 이러다 나무늘보처럼 몸에 이끼가 피어날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모두 등 뒤에 흩뿌리며 지하철에 실려갑니다.
어디든 갈 곳이 있다는 것,
내가 가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곳,
나만의 자리가 있고, 아무런 위화 감 없이 앉아 있을 수 있는 곳.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물론 모두가 나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괴롭히지도 않습니다.
물론 진상 고객들은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무료로 봉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정도면 훌륭하지 않은가요. 어디에 가면 내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앉아 있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정신 승리를 하며 이불 밖을 나가고 싶지 않았던 몸을 꾸역꾸역 끄집어내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예의에 맞는 단장을 하고, 추운 바깥을 헤치고 무의식적인 발걸음에 이끌려 나는 이곳,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창 밖은 쨍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나의 정신은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될까요.
명징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따스한 온기를 주변에 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