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편지 - 25년 5월
비가 잔잔히 공기를 적십니다. 여리게, 하지만 하루 종일 알게 모르게 온 세상을 적시는 정말 봄비다운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온 대지에, 생물에, 무생물에, 비가 내리는 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이 습기는 고스란히 스며들어갑니다. 조용히 오랫동안 스며들어 안을 충만하게 채우지만, 거슬리거나 위험하거나 불편하지 않습니다. 건식 사우나 안에 앉아있으면 손끝에서 발끝까지 서서히 열기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사우나는 너무 오래 있으면 건강에 안 좋습니다.)
이렇게 안락하게 내 안에 스미는 것은 비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공기의 흐름, 기온의 변화, 어디선가 흘러와서 적시고 흩어져버리는 향기, 온몸을 가득 채우는 선율, 강렬한 또는 부드러운 시각의 향연,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체온, 손길, 그리고 감동적인 언어들.
각자 스며드는 강도와 속도는 다르지만, 충분히 그 안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들은 어느새 내 안을 가득 채우고 맙니다. 그러한 채움은 마음에 충만함과 행복감을 선사합니다. 그렇게 붕 뜰만큼 적셔진 나는 그 순간을 잊기 어렵죠. 그래서 언젠가 다시 찾게 됩니다. 다시 나를 가득 채우고 싶어서.
하지만 모든 스며듦이 인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내 안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스며든 속도만큼 천천히 사라져 버리는 것들도 있지요. 아마도 오래 같이 있는 것들이 주로 그럴 것입니다. 너무 천천히 들어왔다 천천히 나가버려서 나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어느 곳, 어느 시간에 문득, 떠오릅니다. 무엇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조차 않는 그 촉감, 그 소리, 그 냄새, 그 공기, 그 모습. 그립기는 하지만 슬프지도 않습니다. 뭔가 살포시 미소가 배어져 나오는 그런 스며듦이지요.
순간적인 강렬한 채움은 자극적이고, 도파민을 뿜어내며 행복 회로를 돌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 그렇지 못함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기억됩니다.
느리고 알 수 없는 스며듦은 알지도 못하고, 그 사이 행복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리움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습니다. 오늘은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있는 것들, 또는 스며있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보며 봄비를 즐겨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남은 하루도 잔잔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