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다

일상 에세이

by Pink Brown

컵에 담긴 물 표면에 동동 떠 있던 발포제가 제 몸을 녹여가며 서서히 가라앉는다.

자동차 바퀴에 뿌옇게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서서히 내려앉는다.

불다가 놓친 하얀 풍선이 하늘 높이 올라가다 나풀나풀 가라앉는다.

가벼웠던 발걸음이 서서히 무거워진다.

들뜨던 마음이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이유로 눌러앉는다.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바뀌는 순간이 있다.

눈에 보일 때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나는 안다. 무언가가 그전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변한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아마 과거로 돌아가는 재주가 있더라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마음이 바뀌었으므로. 나의 시각이 변하였으므로. 나의 생각이 틀어졌으므로.


몸은 26층 사무실에 있지만, 나의 마음은 저 밑 어딘가로 가라앉고 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간밤의 불면 때문인지, 그저 일이 지루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나의 마음이 너무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질적인 바람은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인 결핍은 채우기 어렵다. 나 혼자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누군가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채울 수 있어야 오롯이 홀로 설 수 있고, 그제사 고독이라는 인간의 숙명에 대항하여 맞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스스로를 채울 수 있지? 돈으로? 일로? 물건으로? 성장을 통해? 나를 몰입으로 가득 채우면 나는 오롯이 설 수 있을까? 하지만 평생을 몰입 상태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랬다가는 에너지 과다 사용으로 죽을지도 모르지)


사람은 평생을 찾아 헤맨다. 나를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가라앉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리지 않기 위해. 저 위로 오르기 위해. 안정적인 레벨까지 올라가기 위해.

하지만 떠있는 무언가는 가라앉기 마련이다. 높이 뜰 수록 더 많이 가라앉는다.

더 이상 가라앉지 않는 저지선을 튼튼히 만드는 것이 인간의 성숙도와 내구성을 가늠하는 지표일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저지선을 쌓아 올린다. 어느 순간 쌓은 만큼 내려앉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쌓아 올린다. 그러다 어쩌면 처음 시작했던 곳보다 더 많이 내려앉을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조금 쉬었다가 다시 쌓아 올린다. 그렇지 않으면 끝도 없이 가라앉을 테니까.


나의 심리적 저지선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들쑥날쑥한 저지선 중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는 곳에 있을는지?

가라앉는다. 풀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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