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다

계절 편지 - 25년 10월

by Pink Brown

문득 창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평소라면 저 멀리 남산이 보여야 하는데 (사무실이 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어라, 사라졌습니다. 앱을 켜고 미세먼지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이전, 한창 중국 산둥반도에서 공장이 미친 듯이 돌아갈 적에는 일 년 내내 미세먼지를 걱정하며 살았지만, 코로나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미세먼지 걱정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기에 미세먼지 때문일까? 싶었지만 역시나 미세먼지는 보통이었어요. 그럼 왜 사라졌을까? 해가 높이 떴으니 안개는 아닐 것 같은데..... 살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종종 마주치게 됩니다. 오늘의 사라진 남산은 저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라지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올해는 가을도 사라졌지요. 단풍이 들 적합한 기온 유지 기간이 너무 짧아서 단풍 들 틈이 없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계절이 훅 바뀌었습니다. 미세먼지도 사라졌고 (이건 너무 좋습니다), 아이들의 재롱도 사라졌고 (저만큼 커 버렸답니다), 삶의 즐거움도 점점 옅어지고, 성취해야 할 것들도 점점 줄어듭니다. 물론 저의 부지런함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게을러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일 년을 어떻게 보냈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해집니다. 어영부영하다 보면 1년도 사라져 버립니다. 벌써 대형 백화점이나 호텔 앞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더군요. 그러고 보니 골목마다 반짝이던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어릴 적 이웃 아주머니 집에 놀러 가서 간식 먹고 낮잠 자던 시절도 사라졌고, 학교 끝나는 시간이 되면 골목마다 메아리치던 아이들의 노는 소리도 사라졌습니다.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납니다.


봄은 새로이 생겨나는 것들이 마음에 들어오는 계절이고

가을은 서서히 없어지는 것들이 마음에 사무치는 계절입니다.


올해 저는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몫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지 몇 년이 되었지만, 바람이 쌀쌀해지고, 두꺼운 겉옷을 꺼내는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이 질문이 떠오릅니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들과 큰 트러블 없이 새로운 루틴에 같이 적응하였고, 못 읽는다 못 읽는다 했던 책도 어느덧 10권 가까이 읽어가고 있습니다. (아, 너무 적죠. 하지만 저는 1년에 최소 10권이면 만족합니다.) 엄청나게 무덥고 극한 호우가 이어지던 여름도 무사히 보냈고, 가족 모두 크게 아픈데 없이 잘 지냈습니다. 그러면 되는 것이겠지요?


여러분의 한 해는 어떠셨나요?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남아 있는지요? 그렇다면 아직 두 달이 남았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한 겁니다(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럼 시작이라도 해볼까요? 사라진 것들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담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