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중에 누가 돈 빌려달라고 하면,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주고받지 않을 거야. 그 대신 다시는 돈 빌려달란 소리 하지 말라고 할 거야.
친구는 말했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해야지 하고 다짐했고, 실천에 옮길 일이 생겼다. 어제 고등학교 동창에게 연락이 와서는 몇 달 안에 갚을 테니 이백만 원만 빌려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오죽 힘든 상황이었으면 십수 년간 연락이 없던 사이에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해야 했을까 싶었다. 가슴이 아팠다. 궁지에 몰려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조바심도 났다.
하지만 여유 자금이 없을뿐더러, 오래전부터 다짐한 바가 있었다.
요즘 나도 돈이 없다고 말하고, 통장에 있던 삼십만 원을 부쳐주며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시는 돈 빌려달란 소리 하지 말라는 모진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런 말은 혹시 상황이 반복되면 그때 하면 될 것이었다. 그 대신 힘든 시기 잘 헤쳐나가라고 다독여주었다. 친구는 꼭 갚겠다며 고마워했다.
나는 빌려준 돈으로 인하여 당장 장 볼 돈이 더 빠듯해졌고, 커피 값을 아껴야 하게 되었으며, 피아노 레슨비와 저축할 돈을 구해야 하게 생겼다. 그렇지만 곤경에 빠진 친구를 돕기로 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곧 2026년이다. 새해에는 곤핍한 상황에 처한 이웃 없이 모두가 풍성하고 넉넉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