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절에는 '엄마와 함께' 어디론가 간다는 것을 남들이 아는 것이 부끄러웠다. 마마걸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어머니와 버스를 타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머니 옆에 자리가 났고, 어머니는 뒤에 있는 나를 돌아보며 이리 와 옆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셨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 옆으로 가기를 거부했고, 어머니는 무안한 표정을 지으셨던 것 같다.
딸들이 나와 함께 나란히 걷기를 부끄러워하는 이유를, 나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 자신이, 자의식 높은 아이들의 심리를 잘 이해해 주고 또 사춘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그런 엄마라고 믿고 있었다. 오늘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이가 교회 친구와 영화관에 간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지만, 속으로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도 아니고 낯선 동네에 있는 영화관에 갔다가 혼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겠다니. 세상이 얼마나 험한 곳인데. 교회 근처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아이는 알겠다고 했다. 카페에서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리다가 묘안이 떠올랐다. 영화관에 찾아가서 아이와 아이 친구 저녁밥을 사 먹이고 집으로 돌아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아이가 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며 갔던 것을 보면, 그것이 묘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전화 통화가 한 차례 간신히 연결되었던 것을 제외하면 영화가 시작하기 전이었을 순간에도 아이와 연락이 잘 닿지 않아 나는 나대로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카페에 두 시간도 넘게 앉아 있었던 터라 영화관까지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운동도 할 수 있고, 복잡한 몰에서 아이가 지하철을 찾다가 길을 잃을 염려도 없어지고, 저녁 시간도 너무 늦어지지 않을 테니 일석삼조일 것이었다.
영화관에서 친구와 나오는 아이에게 반갑게 다가갔다. '엄마 여기 어떻게 찾아오셨어요?'라고 물으며 아이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김밥을 먹을래, 햄버거를 먹을래, 하는 질문에도 아이는 예의 바르게 답하며 친구의 눈치를 살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아이가 민망해할까 봐 나는 아이들과 조금 떨어져서 걸었다. 이런저런 말을 거는 것도 아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최대한 자제했다. 센스 있는 엄마의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친구와 헤어지자마자 아이는 내게 분노의 화염을 뿜었다. 그렇게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렇게 말을 계속 걸면 어떻게 하냐며 소리치는 아이의 붉은 뺨에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의 세계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몰랐구나, 엄마가 미안하다.'라며, 나는 몇 번이나 사과해야 했다.
화가 풀린 후, 아이는 엄마가 부끄러웠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엄마에게 소리치고 짜증 낸 것은 잘못했지만 본인도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나도 미안했다고 한번 더 사과했다. 하지만 웬걸, 지하철 타는 곳을 찾는 일에도, 환승역이나 심지어 종착역에 내리는 일에도 내게 완전히 의존하는 상태인 아이를 보자 입이 근질거렸다. 잔소리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지하철의 무수한 사람들과,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며 웃고 있는 아이의 정수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몇 차례 더 한숨이 나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