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_동대문디자인플라자뮤지엄, 바스키아의 그림이 하는 말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기분이 좋았다. 새 전시를 보러 갈 때면 늘 따라오는 기대감 때문이다. 문화예술을 만날 때 나는 대체로 이런 마음으로 전시장에 들어선다. 잘 봐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오늘은 어떤 장면을 마주하게 될지 궁금해하며 들어간다. 바스키아라는 이름도 그날은 무겁기보다 반가운 쪽에 가까웠다.
DDP 안으로 들어서자 기대의 방향이 달라졌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그림들은 관람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기 이야기를 먼저 꺼내 놓고는 그대로 앞으로 나아간다. 작품 앞에서 천천히 생각을 정리할 여유는 많지 않았고, 시선은 계속 다음 화면으로 이동하게 된다.
조금은 당황스러운 감각이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서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누군가의 머릿속을 예고 없이 들여다보고 나온 기분에 가까웠다. 정돈되지 않은 문장들, 덧붙여진 단어들, 일부러 남겨 둔 흔적들이 그대로 걸려 있다. 미완의 상태가 숨겨지지 않은 채 드러나 있다.
전시장 중간쯤에서 발걸음이 멈춘 작품이 있다. 제목이 없는 해골 그림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라기보다는 묘하게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비어 있는 눈은 공포보다는 피로를 먼저 떠올리게 하고, 거칠게 그어진 선들 사이에는 말하지 못한 생각들이 눌러앉아 있는 듯하다.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이 그림이 무엇을 뜻하는지보다, 왜 이 얼굴이 지금의 마음에 걸리는지가 더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설명 없이도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이 있었고, 그때 예술이라는 것이 본래 사람에게 다가오는 방식이 떠올랐다.
바스키아의 그림이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는 자유롭게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화면 위의 소재들은 제각각 흩어져 있지만, 시선을 그냥 보내주지 않는다. 대충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쯤은 다시 보게 만든다.
한 번 보고 지나치려 하면 마음이 남는다. 다시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편하게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가볍게 소비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바스키아의 작품은 감상이라기보다, 한 번 더 확인하게 되는 대상이 된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다시 들게 된다. 혹시 그냥 지나친 것이 있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게 된다.
그때서야 이 전시가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조금 분명해진다. 정답을 찾으라는 말이 아니라, 그림 앞에서 어떤 태도로 서 있는지를 스스로 바라보라는 쪽에 가깝다.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마음이 어디에서 멈추는지를 묻는 자리다.
교육 현장에서는 늘 맥락을 짚고, 배경을 덧붙이고, 의미를 엮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전시의 바스키아는 끝까지 그런 과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살아 있었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둔다. 관람객은 그 앞에서 각자의 반응을 마주하게 된다.
DDP라는 공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매끈하게 정리된 건물 안에서 거칠고 불안정한 화면을 마주하니, 그 간극이 더욱 또렷해진다. 잘 다듬어진 공간 속에 놓인 날것의 감정이 대비를 만든다. 그 어긋남 속에서 바스키아의 그림은 더 선명해진다.
전시를 다 보고 나왔을 때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특정 작품의 정보보다는, 전시장 안에서 계속 흔들리던 시선과 감각이 더 오래 남았다. 이 전시는 좋았다거나 인상 깊었다는 말로 정리되기보다는, 마음 한편에 그대로 남아 있는 전시였다.
그래서 이 전시는 추천보다는 질문으로 남는다. 예술을 오래 바라봐 온 사람이라면, 이 전시 앞에서 잠시 설명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림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어 본 적이 있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바스키아의 그림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의미는 조금 뒤에 와도 괜찮다. 먼저,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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