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상징, 마리나 베이 샌즈 & 멀라이언 야경을 보다
우리가 방문한 호커 센터는 ‘맥스웰 푸드센터’로, 여의도 빌딩 숲 가운데 위치한 광장 시장 같은 분위기의 푸드 센터. 근처에 소위 글로벌 대기업들의 APEC 본사로 추정되는 큰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이 호커 센터는 평일 저녁이기에 직장인들과 현지인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이 섞여 신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비행기에 오래 앉아있던 영향인지, 뭔가 계속 속이 울렁거렸던 나는 강한 향신료 보단 속이 편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리하여 삼계탕의 삶은 닭고기를 연상시키는 싱가포르 사람들의 소울푸드 ‘치킨라이스’를, 남편은 대표적인 페라니칸(Peranakan) 음식인 ‘락샤(Laksa)’ 수프를 주문했다.
페라니칸은 15, 16세기 말레이 반도에 이주해 온 중국인과 현지인 사이의 후손을 말하는데, 이들의 문화와 음식이 싱가포르 이곳저곳에 참 많이 녹아 있다고 한다.
이후 돌아다니면서도 맥스웰 푸드센터와 같은 호커 센터를 포함하여 싱가포르 시내에도 페라니칸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치킨라이스(Chicken Rice)
SGD 5.50
락사(Laksa)
SGD 6.50
한국에서부터 장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후덥지근한 싱가포르. 더위를 날려줄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물론 싱가포르가 술값이 비싼 나라인 건 알았지만, 거의 1잔에 12,000원에 육박하는 가격을 보고는 ‘저녁밥 보다 비싼 맥주를 마실 순 없지’를 되뇌며 이날만큼은 맥주를 꾹 참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갈증이 올라왔다. 검색해 보니, 맥스웰 푸드 센터에서 멀라이언 파크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숙소에 들려 짐을 놓고 간다면, 오후 8시와 9시 반쯤 한다는 야경 분수 & 레이저 쇼를 놓칠 것 같았다.
숙소 찍는 걸 포기하고는 마실 걸 하나씩 들고 배낭과 함께 걸어가 보기로 했다. 주문한 Iced Bandung과 Iced Lemon Tea는 각각의 매력이 있었다.
Iced Bandung & Iced Lemon Tea
SGD 2.20 ea.
저녁을 러닝으로 마무리하는 사람들
걸어가는 길에 흥미로운 광경도 목격했는데, 바로 러닝을 마친 싱가포르 러너들의 단체 스트레칭 현장이었다.
그중에는 상의 탈의한 근육질의 러너도 몇몇 보였다. 보통은 반팔티를 입고, 적어도 얇은 나시라도 걸치고 달리는 한국의 러너들을 보다가 이런 분들을 보니 살짝 문화 충격이었다.
빌딩 숲을 헤치며 걸어가다 보니 오른편에 ‘더 플러턴 베이 호텔(The Fullerton Bay Hotel Singapore)’가 나왔다. 입구부터 으리으리한 것이, 온몸으로 ‘나 정말 비싼 호텔이야’를 얘기하고 있는 듯했다. 플러턴에서 좀 더 걸어가니 수평선 너머로 싱가포르의 상징,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Singapore)가 보였다. 홀린 듯이 핸드폰을 꺼내 야경을 담았다.
10년 전 기억이긴 하지만, 홍콩 여행 당시 침사추이 쪽에서 홍콩섬 쪽을 바라본 야경의 그것과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5분 정도 더 걸어갔을까. 사람들 틈 사이로 멀라리언(Merlion) 동상이 보였다. 멀라이언은 인어(mermaid)와 사자(lion)를 반반 섞어 놓은 모습으로, 입에서 물을 뿜어내고 있는 인어사자 동상이다.
사람들은 그 물을 손으로 받치거나 받아먹는 듯한 포즈를 연출하며 각자의 스타일 대로 인증샷을 남기고 있었는데, 남편과 나도 그 앞 계단에 잠시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는 기념사진 촬영에 동참했다.
그렇게 잠시 계단에 앉아서 좌측에 멀라이언, 우측에 마리나 베이 샌즈를 두고 야경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야경을 보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싱가포르에 오는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슬슬 눈꺼풀이 무거운 게 느껴졌다.
와이파이를 잡아 검색해 보니 숙소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거나 아님 계속 직진해서 걸어가야만 탈 수 있었다. 남는 게 체력이라고, 겁도 없이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는 걸어갔다.
끼 많은 친구들의 집합소,
Esplanade 역 지하 광장
가는 길에 또 발견한 재밌는 광경. 길 건너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고 ㅜ떠서 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보도이자 지하철 Esplanade 역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 스케이트 보드를 타거나, 춤 연습을 하는 수많은 젊은 싱가포르 청년들이 보였다. 바쁘게 한 손으로는 구글맵으로 출구를 찾으면서도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늘이 처음은 아니라는 듯이, 능숙하게 보드를 타고 음악에 맞춰 단체 안무를 맞춰보는 친구들을 보니 문득 ’우린 저 나이에는 무얼 했더라?‘라고 하는 꼰머같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지하 광장에 모여 청춘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건너편 출입구로 나오고 나서부터는 내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을수록 시야도 흐릿해지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근처 Raffles City 쇼핑몰에 들어가 잠시 바닥에 앉아 숨을 골랐다.
당황한 남편은 서둘러 와이파이를 잡아 호텔까지 거리를 검색해 보았는데, 야속하게도 750m 즉, 걸어서 11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이 거리를 택시를 탈지 말지 고민도 잠시, 본인도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자신의 배낭을 멘 상태에서 내 배낭까지 앞에 메고 걸어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둘이 반쯤 묵언수행을 하면서 호텔 앞까지 걸어가 무사히 체크인을 마쳤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한기가 들며 몸살 기운이 올라왔다. 장시간 비행과 급격한 기온의 변화의 여파였다.
그렇게 둘 다 반송장이 되어 싱가포르 여행의 첫째 날이자, 5주간 여행의 첫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