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igraphy studio
낭만이 넘치는 캠퍼스 내의 서예 강좌도 한 학기와 연이어지는 계절(겨울) 학기마저 강물처럼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계절학기 마지막 수업을 스승님의 서예 전문 스튜디오 공간에서 하자고 말씀하신다. 스승님의 서예 작업 공간이라니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넘 기대된다. 어떤 글씨들이 나를 살갑게 반겨줄 것인가? 자못 궁금하다.
사부님의 스튜디오는 ㅇㅇㅇ 서예 갤러리라는 명칭으로 제비연 마을인 독일풍 공동체 마을의 초입에 자리 잡고 있어 더욱 반갑고 이색적이자 맛깔스럽기까지 하다. 묵향의 그윽함과 전원의 고즈넉함이 아주 찰떡같이 잘 어울려 꽃피는 내 고향 같은 분위기마저 물씬 풍겨 나니 아직까지도 코 밑이 간지러운 것만 같다.
갤러리 방문 전 갤러리의 베이스 노트인 묵향과도 꽤 어울릴 것만 같은 프랑스 차를 준비하느라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스튜디오다. 깔끔하기가 스승님 성품을 빼닮았다.
사부님과 원우들이 정겹게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내 선생님 작품을 보고 느낀 점들을 나눈다.
연이어 스튜디오 곳곳을 속속들이 돌아다니며, 자기만의 공간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있는 제멋에 취한 서예 작품들을 한 작품씩 차례대로 알현하는 호사도 잠시 누려본다.
반듯하다가 굽고, 굽은 듯 휘어지는 글자들! 모였다가 흩어지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획들!
병풍 한 폭 한 폭마다 내비치는 화려함이라니.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는 않은 작품이다.
스승님 스튜디오는 작품과 한데 어우러져 마치 고향과 한옥에서만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본래적 아늑함을 은은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백제 특유의 온화하고 그윽한 아름다움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건축 용어로써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처럼 스튜디오의 내적인 조화로움이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준다.
사진 3장은 모두 네이버 블로그의 유쾌한 사진공작소에서 몽땅 퍼온 겁니다.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겠죠.
나도 물방울을 소재로 감히 스승님의 작품 평을 맘껏 해 본다. 새벽이슬처럼 물방울이 맺혀 있는 듯 글씨가 매우 영롱하고 응집력이 돋보인다고 설을 풀어 본다. 다행히도 모두들 공감을 표시해 준다. 연이은 감상평과 이어서 선생님의 강의가 뒤따른다. 앞으로 붓글씨를 쓰는 데 있어서 유념해야 하는 잘못된 예들을 하나씩 보여주시면서 경계해야 할 점들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신다.
커피 향과 묵향이 어우러지고, 오고 가는 환담과 담소로 계절학기 수업의 마지막 챕터를 가까스로 덮는다. 마당에 있는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곧 있으면, 또다시 정기 학기가 쉼과 지체됨도 없이 바로 시작될 테니까.
선생님께서 써 주신 체본을 바라보며 감상하는 즐거움은 언제나 가슴과 마음에 벅참과 감격으로 충일하기만 한데, 직접 글씨를 써내야 하는 고통에 더해 한껏 맛보게 되는 난필의 부끄러움 플러스 괴로움이라니!
벗어나고파! 글씨에게서.
그래도 피할 수는 없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젖 먹던 힘을 다시 내보는 수 밖에.
천천히 붓을 든다.
그 옛날 그 어딘가의 장맹용 비에서 평생 대학원 작품용 화선지로의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여행한 글자들! 나를 보고 어서 와보라고 손짓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향에 취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몽롱하다. 취권이 이래서 나오는갑다. 그럼, 나는 이제부터 취필(醉筆)이다. 여러분도 한 번 그 향(香)과 서(書)에 취해보길 조심스레 권해 본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사 4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