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비키, 은퇴] 자녀와 함께-(5)

New version of Chariots of Fire!

by w t skywalker

어제는 혼자만 미리/ 은근히/ 은밀히/ 스리슬쩍/ 알게 모르게/ 맛보게 된 은퇴 이후의 멋진 보석과도 같은 다시없을 귀중한 하루이자, 화려하지도/ 찬란하지도/ 옹색하지도/ 궁색하지도 않은 가장 마지막까지 나에게 주어지고 남아있는 삶이었다.

아들과 함께 아내와 같이 경기장에서 Chariots of Fire 운율이 울려 퍼지는 듯 적당히 스텝을 맞춰 보면서, 각자 나름대로의 리듬대로 라스트 댄스를 마치 처음 춰본 것처럼 춰보는데, 실제로 처음 춘 춤이다. 좋았다. 마냥 행복했다. 그랬다. 이 땅 위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나, 부자와 모자 관계 속에서 깊이 물들어가고 아롱지어진 소중함과 애틋함 그리고 아름다움은 그렇게 우리들 마음속에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수를 놓아 가듯이 촘촘히 아로새겨진다.




오늘은 아들내미가 남자선수로만 구성된 서울 대표팀에서 4 × 400m 계주 경기에 출전한다. 아쉽지만서도 아들은 고등학생으로서는 오늘이 마지막 경기가 될 거다. 그럼, 아들이 은퇴하는 건가? 은퇴까지는 아니고, 뒤로 잠깐이지만 잠시만 물러남을 맛보는 것이다. 그렇게 물러나 보는 중이다. 아들을 맘껏 응원한다. 그 이유는 나름 지켜줘야 하는 프라이빗 한 프라이버시이니 만큼 꼭 지켜주고 싶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다시 이 환희와 감격을 맛볼 수 있을까 오늘도 새롭게 기대가 된다. 어떤 문양을 새기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럼, 또 경기장으로 가 보자고. 아침도 여기 부산 말로는 빨간 고기 새끼(내 생각엔 열기 같다)라는 놈으로다가 미역국과 같이 든든하게 먹었으니 포만감이 장난 아닙니다.




저는 무지개를 양탄자처럼 엉덩이에 깔고 타고서리 번개와 같이 다시 경기장에 나타납니다. 아들내미의 경기를 직관 관람하고자 말이죠. 여유 부리다 마라톤 경기로 인해 도로가 막혀 도중에 버스에서 내려 환승 연애도 아닌데 지하철로 갈아타고 서둘러 왔습니다.

가까스로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고등부 400m 예선전이 막 시작되려고 합니다. 서울 체육고등학교팀은 6번 레인에서 출발하자 등수는 4등으로부터 시작해서 제가 목 놓아 앤드 목이 터져라 응원한 덕택에 6등에서 3등으로 다시 마지막 주자가 3등에서 추월하여 1등으로 결승 테이프를 끊습니다. 그럴싸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저는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데, 선수들은 왠지 그닥 최선을 다해 뛰지를 않네요. 웬일일까요?

알고 보니 예선전이라 3등 등수 안에 들기만 하면 결승에 진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헐, 이런 억울할 데가. 헛물만 켜고, 김칫국도 몽땅 단숨에 드링킹 해버렸네요. 결승에서 목 놓아 소리쳐야 하는데, 벌써 성대랑 목을 그만 놓아버렸으니 이를 어쩐답니까?

진퇴양난에다 설상가상으로 진퇴유곡입니다.

그래도 목을 가다듬어 봅니다. 그럼에도 잘 다듬고 다듬어 한 번 더 재활용해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원도 부족하기만 한 나라의 소시민적 임시롱 착하고 어진 백성이니 말이죠.




네. 다시 이곳 역사적인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 육상 경기 전용 트랙에서 결승전이 곧 치러지게 됩니다. 경기장 안이 온통 기대감으로 충일한데요. 저도 기대감 물결에 살포시 기대 봅니다. 기대하시라, 서울 팀의 400m 계주 결승전을.




예선을 자랑스럽게 치르고, 의기양양 득의양양 다시 관중석에 등장한 아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단단히 해내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대견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제는 부모의 따스한 품 같은 온실이 아니어도 비바람과 삭풍으로 뒤범벅된 노지에서의 풍찬노숙에도 불구하고, 무럭무럭 잘 자랄 재목 같기만 합니다. 잘 됐스. 목이 놓아진 것처럼 자연스럽게 맘도 한결 놓입니다. 아들은 이미 거친 야생의 숲에서 제 힘으로 쑥쑥 성장해 가는 듬직한 나무가 되어갑니다. 멀리서나마 부모의 삶의 태도와 신앙의 자세가 자녀의 밑거름이 되어주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아, 진짜로 아쉽게 결승전에는 제 아들놈이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미 선수 등록도 하지를 않았다네요. 네, 네, 좀 무리데스네! 하고 귀한 몸을 완전히 잔뜩 사리네요. 아들내미 덕분에 저도 목을 사리게 되는 커다란 은덕을 덤 앤드 경사로 누리게 됩니다. 그려.

눈물이 앞을 마구 가리는데, 그 눈물이 어떤 눈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눈물이 자꾸만 자꾸마~안, 은퇴 경기 같아서요. 부모 맴이 흑흑!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 3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