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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버들 Dec 08. 2022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손주

산타클로스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앞동에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딸네 부부가 살고 있다. 딸이 친정엄마 코밑에 살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친정엄마 도움 찬스를 이용하겠다는 심사다.  내가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는 앞서 퇴직을 한 할아버지가 유치원에서 온 손주를 딸애가 퇴근할 때까지 돌봐주었다. 그러다 내가 퇴직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유행을 하고, 코로나 유행으로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손주를 엉겁결에 온종일 돌봄을 하게 되었다.


퇴직을 하면 느긋하게 여행도 다니고 예쁜 카페에 가서 여유롭게 커피 마시고, 못 읽은 책도 읽으며 하루하루를 마음 내키는 대로 즐겨보자 라는 소박한 꿈을 코로나로부터 손주를 지켜내는 돌봄과 맞바꾸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손주가 코로나와 함께 무사히 유치원을 마치고 올해 초등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나와 남편이 더 바빠졌다.


아침이면 손주는 책가방과 학원 가방 두 개를 둘러 맨 사위의 손을 잡고 잠이 덜 깬 까치머리를 한 채 우리 집으로 온다. 아침 7시 50분. 나는 정확히 손주가 올 시간에 맞춰 아침상을 차려 밥을 먹인 후에 까치머리를 얌전히 눌러 빚기고 오전 8시 30분에 손주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한다. 출근 대신에 손주를 등교시키는 평범한 할머니. 바로 집 앞에 있는 학교임에도 할머니와 손을 잡고 등교를 하는 게 좋다는 손주의 소원에 교문 앞까지 함께 한다. 하교는 혼자서 충분히 하면서 등굣길은 할머니 손잡고 같이 가잖다. 교문 앞에서 꼭 안아주며 “사랑해, 오늘도 즐겁게 지내.” 그러고는 서로 손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 다녀오겠습니다.” 배꼽인사를 한 후에 교실로 향하는 손주 녀석. 손주 녀석의 모습이 학교 건물 모퉁이를 돌아 안 보일 때까지 주욱 지켜보면 가끔 뒤돌아 서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한다.


이렇게 바쁜 주중의 아침 풍경이 늘 펼쳐진다. 하교도 당연히 우리 집으로 한다. 짧은 시간 동안에  간식 먹이고 학원 버스 시간 맞춰 태워 보내고, 학원 하나가 끝나면 할아버지가 학원 앞으로 걸어가서 손주를 기다려 다시 줄넘기 학원으로 보내 딸아이의 퇴근 시간에 맞춰 손주가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도록 해준다. 우리 두 노인네는 손주의 하루 일과에 맞춰 꽁꽁 발 묶여 지낸다.


 요즘은 손주 녀석이 아침에 와서 식탁에 앉기 바쁘게 크리스마스 날짜를 매일 손꼽아 헤아린다. 날짜를 헤아리는 손주의 상기된 표정에 설렘이 가득하다.

오늘 아침에는 “함미, 크리스마스가 이제 17일 남았어요. 25 빼기 8 하면 17이잖아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선물을 다 알고 준비한대요. 그런데 나는 작은 발자국 소리만 나도 잠이 깨는데 어떻게 산타할아버지는 기척도 없이 우리 집에 들어와 선물을 놓고 가셨을까?”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진지한 표정으로 산타의 남몰래 한밤중 방문에 대해 묻느다. 산타의 존재를 굳건히 믿는 초등 1학년의 순진댕이(?)


 그런 진지하고 설렘이 가득한 표정의 손주에게 할아버지가 “ 00야, 지금 산타할아버지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고 핀란드에서  거리가 먼 우리나라까지 올 수 없대. 큰일 났다 어떡하지?” 아침에 해외 뉴스를 검색하다 본 소식이라며 말했다.

그러자 녀석도 지지 않고 “엘리베이터 뉴스를 봤는데 그런 뉴스 없었어요. 산타할아버지가 로봇 선물을 준비해서 꼭 올 거예요.”

“아냐. 엘리베이터 뉴스는 소식이 느려. 그래서 아침에 네가 못 본거야. 산타가 코로나에 걸려서 선물 배달하다 아이들에게 코로나를 감염시킬까 봐 비상 이래.”

이 말을 들은 손주 녀석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갑자기 눈자위가 붉어지더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 내가 좋아하는 00 로봇을 꼭 선물 받고 싶어서 엄마 아빠 말도 잘 듣고, 열심히 살았는데......” 하며 눈물을 훔친다.

1학년 짜리가 열심히 살았단다.


초등 1학년인 손주는 정말 산타 할아버지를 실존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다.

아니면 선물을 못 받을 것에 대해 사전에 안전장치를 마련해 자기만의 방책으로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지어낸 산타 할아버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에 눈물까지 흘리며 속상해하는 손주의 모습이 귀여우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는 순진한 마음이 부럽기도 했다. 아침부터 눈물을 흘리며 속상한 마음을 지닌 채 등교를 하면 안 될일. 얼른 내가 수습에 나섰다. “ 00야, 산타할아버지가 코로나에 감염되었어도 크리스마스까지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아 충분히 건강해지셔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시러 오실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산타 할아버지는 00 이가 1학년 동안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고 착하게 잘 지낸 것을 알고 계시니까 네가 원하는 로봇을 꼭 선물해 주실 거야. 그러니 속상해하지 말고 우리 씩씩하게 얼른 밥 먹고 학교 가자.”

녀석은 그제야 눈물을 거두고 밥을 한 술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산타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는 초등 1학년인 손주. 그런데 손주는 정말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일까?

산타가 실존 인물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지만 산타가 실존 인물임을 인정해야 부모로부터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기에 산타가 실존 인물이라고 굳게 믿으며, 산타가 실존 인물임을 의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만 부모가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준비할 것이란 고도의 전략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인지 손주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그래도 산타는 허구의 인물이라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부모가 미리 준비해서 산타가 와서 주는 척하는 것이라고 영악을 떠는 것보다 산타가 실존 인물이라고 믿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손주가 더 어여쁘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영악하게 자기 앞 갈음하고 똑 부러지게 단단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치열한 생존경쟁의 정글 속에서도 산타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손주 같은 어린아이들이 있어 세상 어두운 곳에 밝은 빛을 선사하고 함박 웃을 수 있는 맑은 마음의 여백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기원한다.

산타할아버지가 긴 전쟁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크라이나 어린아이들에게, 굶주림과 질병으로 아파하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아이들에게  배고픔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과 행복의 선물을 듬뿍 안겨주기를 소원한다. 그 산타는 바로 조금은 여유있는 우리 기성세대, 세월을 많이 산 우리 노인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적은 연금액수에서 매달 자동이체로 일정액을 기부한다. 비록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배곯고 질병으로 신음하는 이 지구상에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어린아이에게 실낱같은 도움이 된다면 내가 바로 보이지 않는 살아있는 산타라고 생각한다.


 아침 식탁에서 시작된 산타 할아버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할아버지의 농담으로 촉발된 손주의 눈물을 바라보며, 또 그 눈물을 거두어 주면서 산타의 존재를 굳게 믿는 눈물 맺힌 손주의 순진무구한 맑은 눈망울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었음에 행복하고 감사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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