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왔던 방식이었다. 그치만 왜 항상 실패는 괴롭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던 적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나는 운이 꽤 좋았다.
이상했다.
왜 하는 일마다 운이 좋지? 설마, 여태까지의 삶에서 실패를 너무 많이 해서?
'이제 나는 럭키한 사람인가?'
라고 생각했다. 3일 전까지는
3일 전,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사건을 마주했다.
1순위였던 기업의 면접까지 보고 나서, 한 과목으로 인해 졸업을 하지 못해 전형 포기를 해야하는 상황
이 상황을 만든 내가 멍청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서류 합격, 인적성 시험 통과'가 왜 하필 일어나서 기대와 실망을 크게 만들었냐고 운수 좋았던 일에 대한 원망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3일동안 잠만보였던 내가 밤에 잠도 잘 못 자고,
그 사건이 생각날 때마다 배멀미하듯 속은 매스꺼웠다.
3일동안의 내 수면시간은 5시간, 3시간, 0시간 이었다.
계속해서 나를 자책하고, 갉아먹었다.
혼자 사색을 할 땐, 더 나를 몰아세웠다.
그래서 사색을 하지도, 다른 기업에 지원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책 구매, 지인과 약속잡기, 유튜브 보기
3일동안의 내 시간은 철저히 내 실패에 외면하는 시간이었다.
3일간 도피 결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원래 실패 밥 먹듯이 하던 사람인데, 왜 운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래 내가 잘못한 게 맞아. 하지만 다시 일어나면 되잖아? 그거 너 잘하는 거잖아'
'여태까지 수업료라고 치자. 부족했던 부분 채워서 다시 일어나자'
위의 다짐을 시도때도 없이 주입시켰다.
그리고 깨달음도 만들었다.
'미리 확인해서 못 챙기는 경우 없게 하기'
하나 더 깨달은 점이 있다.
상처가 남으려면, 그만큼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
여태까지 난 준비성이 부족하고, 철저하지 못하다는 핀잔을 꽤나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고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의 일이 발생했다.
그 전의 과정에서는 내가 고쳐야 한다는 위기감도, 고통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안 고쳐졌다.
꼭 이렇게 크게 다쳐봐야만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겠니 라고 꾸짖는다면 이에 대한 반박은...
할 수 없다. 맞는 말인걸
내가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이 사건이 주는 중요성을 단순한 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상처가 남겨질 정도의 고통으로 느끼는 것
그리고, 이후의 나는 새로 생긴 상처를 기억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상처가 아닌, 새살이 돋을 정도로 상처였던 일을 두번다시 발생시키지 않는 것.
"더 꼼꼼하고 철저히 처리해야지"를 품고 다시 출발선으로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 출발선 앞에 선 나에게 끊임없이 주입한다.
결승선에 마치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것처럼, 겸손하게
그리고 되돌아보지 않을정도로, 치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