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멋진 사람이다. 그녀가 처음 화원에 들어섰을 때 큰 키와 예쁜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녀는 꽃나무만큼 키가 컸기에 꽃가지를 손으로 내리지 않고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천천히 꽃이 핀 나무들만 보던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가장 향기가 좋은 나무가 뭔가요?”
“어… 그게… 꽃나무마다 향기가 달라요. 좋아하는 향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냄새를 못 맡아서요. 꽃향기를 잘 몰라요. 죄송하지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꽃향기를 설명한다는 요구는 처음 받아보았다. 그녀는 반려견이 죽어서 수목장 하기 위해 꽃나무를 사러 왔다고 했다. 화장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왜 꽃나무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동생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녀와 화원을 돌며 꽃나무에 핀 꽃냄새를 맡았다. 키가 큰 그녀는 내 앞으로 나뭇가지를 내려주었고 나는 꽃냄새를 맡고 그녀에게 냄새를 설명했다. 그녀는 화원에서 제일 큰 별 수국을 골랐다.
“꽃나무 화분도 옮겨야 하니까. 뼛가루를 여기서 넣으시겠어요? 혼자 하시다가 나무뿌리가 다칠 수도 있거든요.”
단순히 나중에 뿌리가 상해서 오면 귀찮아서 했던 말이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내게 카드를 건네고 화원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카드에 적힌 이름은 이유안. 가영은 새싹을 보관하던 창고에서 나왔다. 나를 보며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의 옆에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유안은 품 안에 작은 함,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화원 내게 다가왔다. 유안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는 가영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였다. 유안은 작은 함을 내게 건넸다. 수목장을 진행하면서 유안은 작은 아이에게 말했다.
“유이야. 진짜 마지막이야. 호떡이한테 마지막 인사해.”
“호떡이는 아까 갔어. 여기 없어.”
수목장이 끝낸 화분을 유안의 조수석에 실렸다. 아까부터 가영이 호들갑을 떨며 재촉했지만, 유안의 앞에서 가영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보내줬어요.”
“아니에요. 다음에 또 오세요.”
“네 다음에 또 올게요.”
안녕히 가세요가 아닌 다음에 또 와달라는 인사를 처음 해봤다. 떠나는 유안의 차가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제야 가영에게 대꾸했다.
“일할 때는 말 좀 시키지 마.”
“아니. 이번에는 진짜 어쩔 수 없었다니까!”
“뭔데.”
“아까 저 멀대랑 같이 온 꼬맹이가 나를 보는 것 같아.”
가영의 말을 무시하고 조용해진 화원에 앉아 폭풍처럼 지나간 시간을 다시 되뇌었다. 유안은 같이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너 그 표정 뭐야. 기분 나빠.”
사람을 기억하지 않는 내가 유안을 잊어버리기 전에 유안은 정말 다시 화원으로 찾아왔다. 유니폼을 입은 유안은 화원 안에서 나에게 시선을 맞추고 천천히 걸어왔다. 꽃을 사러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꽃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오직 나만 보며 걸어왔다.
“저번에 감사했었습니다. 이거 답례로 사 왔는데.”
“아네 감사합니다.”
유안이 건넨 봉지에는 커피와 마카롱이 들어있었다.
“이거 전해드리려고 잠깐 온 거예요. 금방 다시 들어가 봐야 해서요.”
“무슨 일을 하시나요?”
“저는 관제사예요. 비행기 관제탑에서 일하고 있어요. 비행기가 잘 날아가게 봐주는 일이에요.”
유안은 팔을 높게 들고 비행기가 날아가는 시늉을 했다. 어린 동생을 돌보면서 몸에 밴 습관 같았다. 유안은 자기 행동이 과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팔을 내리고 다시 내게 웃어줬다. 유안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나의 이름을 물었다. 내 입으로 내뱉고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입에 침이 바짝 말랐다. 말하면 안 되는 걸 말한 것처럼.
“저는 오늘 스케줄은 8시에 끝나는데, 괜찮으시면 밥 같이 드실래요? 그 안에 제 번호가 있어요. 생각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가영은 유안의 정강이와 뒤통수를 연신 때리며 ‘미친놈’이라고 욕을 해댔다. 유안은 시계를 보더니 잠깐 들른 거라는 말처럼 대답을 듣지 않고 화원을 빠져나갔다. 나는 마카롱 사이에서 바른 글씨로 적힌 유안의 전화번호를 발견했다. 커피 컵에 붙은 물방울 때문에 잉크가 번져갔고 가영은 내 눈을 가리기 바빴다. 나는 꽃다발을 만들고 남은 포장지 위에 급하게 유안의 번호를 적었다. 몇 번이나 확인하고 핸드폰에 옮겨놓기까지 했다.
“사기꾼이라니까. 사람을 아주 제대로 홀리네. 너 진짜 저 사기꾼이랑 저녁 먹을 거야?”
가영의 말 따위 들리지 않았다. 유안이 뿜어내는 밝은 분위기와 따뜻한 기운이 꿈을 꾸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영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유안이 사 온 것들을 먹었다. 너무 달아서 턱이 아렸다.
유안과의 만남은 계속됐다. 유안과 만날 때마다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녀는 나보다 2살 많았다. 그런데도 유안은 내게 계속 존댓말을 했다. 만남이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그녀는 천천히 내게 반말했다. 나는 그게 또 좋았다. 내게 반말하며 상냥하게 말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가영은 유안을 만나고 나면 더욱 신경을 거슬리게 했지만 가영은 유안을 만날 때면 따라오지 않았다.
“같이 있으면 기분이 나빠.”
“저렇게 잘 사는 애들이 너를 왜 좋아하겠냐. 정신 좀 차려.”
“너 유안 씨 따라다녔어?”
“아니. 저 꺽다리 옆에 오래 있을 수가 없어. 기분 나빠.”
가영의 말을 무시하고 싶었지만, 유안은 나와 사는 세상이 다르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외형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그녀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계속 의문이 따라왔다. 그녀가 유이를 데려올 때마다 봐줄 사람이 없어서라고 말할 때 유안과 유이의 부모님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그녀가 내게 나의 부모에 관해 물어볼 것 같았다. 나는 그것에 대해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나도 알아. 나랑 다른 사람이라는 거.”
“부모님이 안 계셔. 혼자 유이를 돌보고 있어. 내가 19살 때 아버지가 재혼하셔서 낳은 아이가 유이야. 나랑 유이는 엄마가 달라. 아버지랑 새엄마도 같이 오래 살지는 못했어. 이혼하시고 새엄마는 유이를 두고 갔고 아버지는 2년 전에 돌아가셨거든.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어. 우리 엄마와 이혼하시고 화가 난다고 나를 때렸거든. 나는 태어날 때부터 냄새를 못 맡는 건 아니야. 머리를 잘못 맞고 신경에 손상이 생겨서 처음에는 후각이 그다음에는 미각이 사라졌어.”
유안이 내 앞에 섰을 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유안의 그런 눈빛이 좋았다. 장난스럽지만 걱정과 슬픔이 담겨있었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내 표정을 본 유안은 나와 더 가까워졌다. 유안은 내가 먼저 말할 때까지 내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유안이 더 좋아졌다. 유안의 근처에는 쉽게 올 수 없는 가영 때문인지 나는 점점 평범한 일상에 녹아들어 갔다.
가영과 둘이 있을 때마다 짜증이 늘어갔다. 유안을 만날 때마다 아니면 만나러 가려할 때마다 소리를 질러댔다. 가영의 비명은 유안과 붙어있을 때마다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날은 유안의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였다. 가영은 유안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짜증 나는 비명을 질러댔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유이가 티비소리를 점점 키웠다. 그러다 유안의 소리를 줄이라는 말에 유이는 가영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끄러워! 너 때문에 소리가 안 들리잖아!”
“유이야. 또 뭐가 보여?”
“저 언니 올 때마다 쟤도 같이 와. 그리고 언니 욕을 해.”
“괜찮아. 언니가 강한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유이 지켜줄게.”
“미안해. 놀랐지? 유이가 가끔 이상한 걸 본다고 해서.”
이번에도 나는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나를 보며 웃던 가영의 끔찍한 웃음뿐이었다. 나에게 이 날이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건 아토의 고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영아. 나 이탈리아로 발령 났어. 6월에 출국이야.”
“언제 돌아오는데요?”
“같이 가자.”
“네?”
“나랑 같이 살지 않을래?”
단 한 번도 외국으로 나간 적 없었다. 갈 상황도 되지 않았고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이탈리아에 가서 살 수 있을까? 유안은 돈 걱정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외국어도 하지 못하는데. 머릿속에 같이 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가 가득 찼지만 나는 유안과 함께하고 싶었다.
“네가 거기 가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꺽다리랑 헤어지면 너는 완전 거지되는 거야. 그 꼬맹이 봐줄 사람 없으니까. 너를 식모로 데려가려는 거야.”
가영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변명했다. 헤어지지 않으면 되지. 유이를 얼마든지 봐줄 수 있어. 내가 유이를 잘 봐주면 헤어질 일도 없지. 유안은 고민을 해보라고 했다. 일주일이나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유안과 같이 갈 생각을 하고 있다.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먼저 공부부터 해야 하나. 유안을 다시 만날 때까지 서점에서 기초 이탈리아 문법책을 사고 집을 정리했다. 가영은 자주 어딘가로 사라졌고 집에서는 이탈리아로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늘어놓았다.
“진영아. 너 그거 알아? 걔 냄새를 못 맡는 거 거짓말이야.”
“이제는 하다 하다 그런 거짓말을 해? 그런 말 할 거면 조용히 있어.”
“진짜야. 내가 봤어. 확인해봐.”
유안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가영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유안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가영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정말 조금이었다. 바나나 알레르기가 있는 유안은 생과일주스를 먹을 때 늘 바나나를 빼고 먹었다. 나를 보러 화원을 찾아온 유안에게 바나나가 든 생과일주스를 건넸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바나나 냄새가 나는 주스였다. 화원 안에 아무 의심 없이 주스를 마시는 유안과 그 모습에 기뻐하는 나와 깔깔거리며 웃는 가영이 있었다. 숨을 쉬지 못하고 쓰러진 유안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나를 바라봤다. 가영은 거품을 물기 시작한 유안의 옆에 서서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약이 어디 있는지 알아. 알려줄까?”
“빨리 말해. 사람이 죽어가잖아.”
“그래. 그 대신 애랑 다시는 만나지 마. 안 그럼 안 알려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영은 유안이 늘 들고 다니는 가방의 검은 파우치에 있다고 했다. 주사를 유안의 팔에 꽂자 얼마 가지 않아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구급차에 실려가는 유안은 의식이 없었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유안이 의식을 차릴 때까지 기다렸다. 뒤늦게 유안의 몸에 올라오는 반점과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혈관이 터진 이마는 붉었다. 정신을 차린 유안은 차분하게 내게 말했다.
“놀랬지 미안해.”
“아니에요. 내가 미안해요.”
“근데. 나 쓰러졌을 때 누구랑 대화했어? 약이 거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고?”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이미 유안의 표정이 전부 말해주고 있었다. 유이가 매일 밤 나를 쫓아다니는 여자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역시 난 미안하다는 말 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안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난 괜찮아.”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화원으로 돌아갔다. 화원에서 가장 먼저 유안의 흔적을 지웠다. 유안을 죽을 뻔한 생과일주스와 그녀가 줬던 모든 것을 치웠다. 유안이 이탈리아로 떠난 계절이 될 때까지 나는 습관적으로 화원의 문을 바라봤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유안이 그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