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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 인문학 Aug 09. 2024

나혜석의 결혼조건은 시어머니와
따로 사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나혜석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이름이다.

미술사적인 의미든

신 여성으로 한 활동이든

나혜석을 대체할 수 있는 이름은 없다.

청혼한 김우영에게 세가지 조건을 건다

첫째 일생을 두고 자신을 사랑할 것,

둘째 그림 그리는 일을 방해하지 말 것,

셋째 시어머니와 전처가 낳은 딸과 떨어져 두 사람만 따로 살 것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결혼 조건이었다.

결혼 후 김우영은 독일에서 공부하고

나혜석은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본격화한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서

3.1운동 때 독립선언서 작성에 관여한 최린을 만났다.

두사람은 파리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고를 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남편 김우영에게

이혼을 당하고 만다.

그 후 그녀는 ‘이혼고백서’내는데

지금 읽어봐도 남녀 평등에 대한 결기가 느껴질 뿐만 아니라

조선 사회의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을 거세게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나혜석이

미디어에 관심을 봤게 된 것은

그의 셋째 아들, 김건이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2015년 11월 아들, 김건 한국은행 전총재가 세상을 떠나고

7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남편의 유언에 따라

나혜석과 김우영의 초상화를 수원시에 기중하게 된다.

이 때 다시 한번 나혜석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지금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에 가면

두사람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살아 생전에 이혼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 같은 공간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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