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곳에 살면 어떨까?
누구나 한 번쯤은 꿈 구워 온 장면일 것이다.
푸하하. 나는 지금 그런 곳에 살고 있다.
제주에서 어렵게 구한 전셋집에 혼자 입주를 하고, 서울 집 이삿날까지 20일 정도의 텀이 있어 우선 한달살이 숙소의 짐을 빼서 제주집으로 이사?를 했다.
한달살이 동안 짐이 늘은 건지 차가 좁아진 건지 서울에서 출발할 때 ‘감동이’에 한 번에 실렸던 짐을 2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집으로 옮겼다.
제주에 내려온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고, 이제 완연한 여름이 되었다.
코로나라고 하지만 여름철이 되자, 서귀포에는 확실히 늘어난 사람들과 렌터카로 북적였다.
틈틈이 올레길을 걸어서 일까, 내 몸은 검게 탄 모습에 살도 많이 빠져 제법 섬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가게에서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에 어지러울 때, 밖에 한 번씩 나가 햇볕을 쐬곤 했는데, 올여름엔 서귀포의 강한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다.
‘사람 사는 거 참 모를 일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쭉 해안가에 살았기 때문에 바다는 늘 친숙한 곳이었지만, 내가 바다를 참 좋아했다는 걸 참 오랜 시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다시 만난 서귀포의 바다는 내 안에 방치되었던 본능을 다시 깨웠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하루에 한 번씩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10분이면 정방폭포와 자구리 해안, 소천지 나 보목항이 있었고, 문섬과 섶섬이 눈 뜨면 보이는 곳에 살고 있으니 집에서 파도를 확인하고 바다로 갈 수 있다.
휴가철에 잠깐 놀러 온 사람들이야 인파가 몰리는 유명 해수욕장에 가겠지만, 바닷가에 살다 보면, 백사장에 깔린 모래를 피해 바다를 간다.
검은 현무암과 자갈들이 자연스럽게 반겨주는 해안가에 ‘감동이’를 세우고 수경과 오리발을 챙겨 성큼성큼 들어가면 물속이 훤히 보이는 바다가 반겨준다.
안전요원이나 펜스도 없고, 고운 백사장도 없지만, 바다수영을 즐기러 나온 도민들이 적지 않다.
바다수영을 처음 해본다면 조금 무서울 수도 있지만, 바닷물이란 곳이 염분 때문이라도 몸에 힘만 빼면 누구나 뜨기 때문에 파도가 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수영하기 더 편하다.
더구나 요즘은 스노클 장비들이 좋아서 수영을 못하더라도 겁만 먹지 않으면 누구나 서귀포 바닷속을 만끽할 수 있다.
덤으로 보말은 조금만 헤엄쳐 나가면 깊지 않은 곳에 널려있고, 운이 좋으면 전복이나 뿔소라도 건져올 수 있는 곳이 서귀포 바다다.
다이빙을 오래 하다 보면 문어도 보인다는데, 내 눈엔 아직 문어는 보이진 않지만, 보말 라면은 언제나 먹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직접 잡은 전복을 함께 넣어 밤바다를 보며 호사스럽게 해물라면에 ‘한라산’을 곁들일 수 있다.
이런 생활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니, 올레길을 걸을 때 마음속 짐을 버렸다면, 나는 서귀포 바다에서 황량해진 마음 한편을 채울 수 있었다.
돈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다인 줄 알았던 지난 세월. 나는 제주행 2달 차에 자연이 채워주는 양분을 감사히 받아먹고 있다.
이 영양제를 혼자만 누리려니, 아직 서울에 있는 가족들이 눈에 밟힌다.
올레길을 걸을 때, 해안가에서 들리는 숨비소리(해녀들의 긴 숨소리)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애잔했는데, 내가 직접 들어가 본 바다는 애잔하기보다는 포근하고 아늑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듯,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는 순간 고생이라 여겨지는 것일까?
처음 맞는 서귀포의 여름바다는 그렇게 나에게 아낌없이 에너지를 채워 주었고, 나는 몸은 검게 마음은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