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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쑤니 Jan 13. 2023

40대 딩크족으로 살기

비혼주의 남녀가 만나 결혼을 했다.

돌아오는 2월 6일은 바로 결혼기념일이다.

2008년 4월 엄마에게서 온 전화. 당시 엄마와 나는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았다. 서른이 되기 전에 선을 대여섯번 봤었고 다 잘되지 않았다. 이후 난 결혼 같은건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고 엄마는 대노하셨다. 아빠는 설마?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결혼은 선택이고 비혼식도 하는 세상이지만 그때만 해도 '난 비혼주의야.'라고 하면 특이하다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던 라떼시절이었다.

"네 번호 이미 줬으니까 나가봐." 

"아! 싫어요!! 안나가!"

"OO 아줌마가 소개해준 자리니까 무조건 나가야되!"

한시간 넘게 실갱이를 했지만 엄마를 이기지 못했고 또 선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선자리에 나와서 나에게 "낙지볶음 드실래요?"라고 물어본, 그 텁텁하고 서툴렀던 남자가 나의 구남친이자 현남편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만난날 낙지볶음을 권하는 남자라니, 너도 정말 나오기 싫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 편하게 저녁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고로 주변에 낙지볶음 가게는 없어서 초밥을 먹기는 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결혼을 꼭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아니요. 굳이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선자리에 나와서 이렇게 대답한 나도 정상은 아니었던 것은 인정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도 비혼주의였던 터라 나의 대답이 신선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사계절을 만났고 6개월의 결혼 준비 기간을 거쳐 2020년 2월, 비혼주의 남녀는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들어가게 된다.


본론으로 들어가보면 우린 결혼전에 딩크로 살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야기는 그가 먼저 꺼냈다.

"넌 아이를 갖고 싶니?"

"아니, 난 자신이 없어."

난 자신이 없었다. 나의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면서 일생을 보내셨고 일흔이 넘은 지금도 자식 걱정을 하신다. 자식이 있으면 나 역시 내 부모처럼 하고 있을 것이 너무나도 뻔하고 난 그 전철을 밟고 싶은 생각이 1도 없었다.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라 부모로서의 희생은 시작조차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나의 이런 생각을 그에게 말했고 자기도 나와 똑같은 생각이라며, 우리는 그렇게 공원 벤치에 앉아 딩크족으로 살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글로 정리하다보니 남편과 나는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중요한 결정을 이리도 무심히 내리다니.

결혼을 하고 약 5년간은 양가 어른들께선 아이를 정말 낳지 않을거냐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곤 하셨다. 정녕 당신의 자식이 딩크로 살거라고는 상상도 못하신채 저러다가 하나는 낳겠지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엄마는 가끔 물어보신다. 둘이서 사는것 괜찮냐고, 아이가 없으면 이혼 확률이 높아진다면서. 우리는 부모님이 기대를 기어코 져버리며 열두번의 결혼기념일을 지나보냈고 이제는 또다른 질문을 받고 있다. "외롭지 않겠니?"

자식으로서 난 부모님을 외롭지 않게 해드리고 있는가? 전혀. 난 명절에나 친정에 가서 밥이나 얻어먹고 음식이나 얻어오는 것이 전부인, 그냥 그렇고 그런 딸, 바로 불효녀이다.


결혼은 했는데 아이 소식이 없으니 주변에서는 왜 아이가 없냐고 물어보고는 싶은데 차마 물어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난 그 어색함이 싫어서 주로 먼저 딩크라고 말해버린다.

아직도 기억하는 가장 충격적이었던 반응은 "아이도 안낳을건데 결혼은 왜 해?"였다. 아이 낳으려고 결혼을 한 것은 아닐텐데, 조금 상처가 되긴했나보다. 아직도 씁쓸한거보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그렇게 말했던 그 사람도 현재 딩크로 살고 있다. 결혼 후 무슨 사정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신념을 함부로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절감하며 항상 말조심을 하려한다.

비혼주의로 살던 딩크로 살던, 옳고 그른것은 없다고 본다. 난 비혼주의였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어 하나의 신념은 바뀌었다. 마음 맞는 사람이 있으면 결혼하는 것도 괜찮다고. 아직 딩크로 살고 있으니 남은 하나의 신념은 지키고 있고, 앞으로도 지키게 될것 같다.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해질땐 그와 아이가 있으면 어땠을까?라는 대화를 하곤한다. 

"다른건 모르겠고, 성격은 되게 까칠할걸?"

부모의 말과 행동이 자식에게 고스란히 전달될텐데, 하나의 생명체를 오롯이 키워내기에는 우리 부부는 너무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정신을 차리곤한다.


두 사람의 뜻만 맞다면 딩크족 나름 괜찮다. 딩크족인 우리 부부는 현생을 최선을 다해 살기로 했다. 퇴직 후에 추울 때는 따뜻한 나라에서 더울 때는 포근한 나라에서 한달씩 살아보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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