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멋진데...
사실 쪼금 기대했다.
'되려나?'
사전 지식 없이 브런치 작가에 신청하고는 뒤늦게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힘든 것이구나.
'에잇, 어떻게 되겠지.. 안되면 말고.'라고 생각하면서도 서너 번은 재접속해서 신청서를 수정했다.
그러고는 연락이 왔으려나? 기대하면서 메일도 세 번 정도 확인해 보았다. 그러곤 두둥!!
'오, 되었어!'
브런치 작가 선정 팀에서 퇴근하시기 전에 메일을 보내주셨나 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니면 주말 내내 열댓 번은 메일 확인했을 텐데. 앞으로 부지런히 내 생각을 글로 남겨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더 나이 들어서 읽어 본다면 이것조차 추억이 될 테니.
어릴 때 우리 집 책장에는 책이 많았다. 요즘 말로 방판 내지는 공구와 비슷하려나,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단체로 구입하셨는지 학교에 다녀오면 '전집'류의 새로운 책들이 주르륵 꽂혀있곤 했다. 극 I 성향이던 나는 방학땐 집에서 책을 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엄마는 그런 날 보고 더욱 뿌듯해하시면서 새로운 책들이 책장을 채워나가곤 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이렇게 한 번만에 브런치 작가에 선정된 것도 어찌 보면 엄마의 활활 타올랐던 교육열 덕분이 아닐까 한다.
내 이야기에는 엄마가 많이 등장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내 삶의 지침서였다. 당시 어리숙했던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생활했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돌이켜보면 난 '마마걸'이나 '온실 속의 화초'였 음이 분명해 보인다. 세상 밖으로 나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예전 엄마 기억 속에 머무르고 있는 열 살짜리 착한 딸은 온데간데 없어졌지만.
"너랑 똑같은 자식을 낳아봐야지."
"난 안 낳을 건데."
"어휴..."
나이가 들고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나이가 되어가면서 난 어느새 엄마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엄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한편에 담은 채, 난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는 굳은 다짐도 함께 가지고 있으니.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엄마에게 전화하려고 한다.
"엄마, 나 작가 되었어요."
엄마, 고마워요. 미안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