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너머, 나를 만나다
어느덧 반백의 나이가 가까워졌다.
거울 속에 희끗희끗 늘어가는 머리칼을 바라보면, 세월이 흘러온 속도에 놀라곤 한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여전히 젊은 날의 흔적들이 선명히 남아 있다. 특히, 25년 전 사회라는 낯선 강물에 첫 발을 담그던 그날의 감각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시골 청년이었다.
고향은 영화 집으로의 촬영지, 버스도 들어오지 않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도시로 나왔다. 연고 하나 없는 곳에서 시작한 대학생활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동기들의 세련된 말씨와 생활 방식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그들처럼 경쟁에서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내 앞에 뜻밖의 길이 열렸다.
군 장학금 제도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직업군인의 길이 내게 천직처럼 다가왔다. 1학년 때부터 군장학금을 받으며 학군단 생활을 시작했고, 전공 교재보다 군사학 책을 더 열심히 들여다봤다.
그 덕분에 군사학에서 A+를 받았다. 성적표에는 3점대 초반이라는, 그리 빛나지 않는 숫자가 적혀 있었지만, 내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마침내 학군단 역사에 이름을 남기며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한 지 며칠 뒤, 나는 병과 교육을 받기 위해 통신학교에 입교했다.
첫날밤, 낯선 침상 위에 누워 앞으로의 군 생활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도, 안도감의 눈물도 아니었다. 오히려 막막한 미래가 던지는 두려움이 더 크게 가슴을 조였던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정말 잘할 수 있을까?’
내 안에서 두 목소리가 싸웠다.
그러나 이내 두려움이 나를 잠식했다. 장교로 임관하기 위해 4년 동안 노력했지만, 정작 군인의 삶 앞에서는 자신감이 사라졌다.
배치받은 부대에서 상관의 질책은 날마다 이어졌고, 나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복무 기간이 나보다 짧은 동기들이 부러웠고, 좋은 보직을 받은 육사 출신 친구가 얄미웠다. 그렇게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국방일보에서 전산장교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 작은 활자 속에서, 꺼져가던 내 마음의 불씨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 상관의 따가운 눈총을 무릅쓰고 지원서를 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전산장교 실무 교육을 받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고, 3개월 후 자대 배치를 앞두고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 순간, 나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길을 택했다.
특전사 지원이었다.
“낙하산 타고 행군까지? 왜 사서 고생이냐?”
“편한 부대에서 전역 준비나 하지.”
주변은 고개를 저었지만, 내 안에는 알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조금 더 거친 바람을 맞아야 한다는 직감이었다.
특전사 지원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낙하산 훈련을 위해 받았던 3주간의 공수교육은, 내게 가장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훈련이자 정신적으로는 가장 큰 깨달음을 준 시간이기도 했다.
300미터 상공에서 기체 문 앞에 선 순간, 온몸은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발끝은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훈육관의 외침이 귀를 울렸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나는 온 힘을 다해 한 발을 내디뎠다. 바람이 얼굴을 할퀴었고,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듯한 순간이 지나자 낙하산이 활짝 펼쳐졌다. 그때 느낀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이후,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감이 생기자, 일에서도 성과가 따랐다.
늘 구박받던 존재에서 장기복무를 권유받는 ‘일잘러’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내 마음가짐이었다. 두려움이 나를 옭아매던 자리에 ‘도전하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들어섰다.
이후 20여 년 동안 나는 세 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특전사에서 배운 그 한 문장 — 안 되면 되게 하라 — 가 늘 나를 붙잡아 주었다.
지금 나는 안정된 회사에서 일하며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삶,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선택에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돌아보면, 내 인생은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처한 상황이 가장 힘들다고 믿는다. 하지만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그 상황은 더 깊은 수렁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기회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두려움의 강을 건넜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서 자신감이라는 땅을 밟았다.
지금, 당신 앞에도 강이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그 물살은 두려움처럼 차갑고 세차지만, 건너편에는 분명 당신만의 새로운 대지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 당신은 한 발 내딛을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