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평판은 시간이 만든 가장 정직한 추천서

평판이 몸값을 만든다

by 낙하산부대

20여 년 동안 세 번의 이직을 했다.


한 번은 버티기 위해서였고, 두 번은 더 멀리 가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직무를 바꾸기도 했다. 숫자로 따지면 일곱 번의 회사를 거친 셈이다. 인생의 긴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불안정함이 아니라 성장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수천 명의 사람을 만났다.


돌아보면 그 만남 하나하나가 내 경력의 이정표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동료이자 상사, 후배였을 뿐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내 인생의 교과서가 되었고, 거울이 되었다. 나는 그 속에서 사람의 결을 읽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몇 번의 대화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품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말 속에 묻어나는 태도, 눈빛에 담긴 온기, 짧은 순간의 호흡 속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온다. 물론 내 판단이 항상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종종 주변 사람에게 물어본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경우 답은 비슷하다. 사람을 보는 눈은 특별한 재능이라기보다는, 결국 시간이 주는 감각이고 경험이 만들어낸 직관인 듯하다.



나는 그런 직관이 삶을 이끄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 번 목격했다.


성품이 곧고, 회사 일을 자신의 일처럼 묵묵히 해내는 사람은 결국 오래 간다. 성과도 좋고, 평판도 좋다. 그 사람과 함께했던 동료들은 또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좋은 회사는 그런 사람을 반드시 알아보고, 더 크게 키운다.



반대로 눈치와 아첨으로 자리를 얻는 사람도 있다.


기회만 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 잠시 반짝일 수는 있지만 오래 남지는 못한다. 주변에서 좋은 평판이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평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리를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토대다. 그것이 없다면 언젠가는 무너진다.



특히 요즘은 국내 기업도 경력 채용에서 평판 확인을 매우 꼼꼼히 한다.


예전에는 외국계 회사에서나 하던 절차였는데 이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겉으로는 지원자가 제출한 추천인의 연락처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공식 절차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더 깊고 더 날것의 이야기를 듣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채용하는 입장에서는 사람 한 명이 회사에 끼칠 파장을 고려할 때, 그만큼 세심하게 알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그 과정을 직접 겪은 적이 있다.


몇 년 전, 같은 본부에서 함께 일하던 후배가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며 조언을 구하러 찾아왔다. 그는 또래 사이에서도 일 잘하기로 소문난 직원이었다. 나는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그는 내 앞에서 솔직하게 말했다.

“팀장님, 새로운 시장에서 제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면 도전해보는 게 맞지.”


그의 눈빛은 이미 결심으로 단단히 굳어 있었다. 그 의지를 꺾을 이유가 없었다.


후배는 이후 모든 과정을 무난히 통과했다. 서류전형, 영어 면접, 임원 면접까지 매끄럽게 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절차는 처우 협상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평판 확인 요청이 나에게 들어왔다. 그는 미리 나에게 부탁하며 말했다.


“팀장님, 아마 연락이 갈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며칠 뒤, 헤드헌터의 전화가 왔다. 그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이어갔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 회사에서 임원까지 성장할 수 있는 인재입니다. 그런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니, 최고의 대우를 해주십시오.”


순간, 전화 너머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헤드헌터가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 일을 오래 해왔지만, 이렇게 말씀해주신 분은 처음입니다.”


얼마 뒤, 후배는 최종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당초 계획했던 차장급 자리가 아닌, 부장급으로 채용이 확정된 것이었다. 나는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아직도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새로운 자리에서도 여전히 그는 좋은 평판을 쌓아가고 있다.



이 경험은 내게 다시 한번 확신을 주었다.


평판은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드러난 태도와 선택, 작은 말과 행동이 쌓여 어느 날 누군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한 줄의 말이, 누군가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내 곁에서 해주었던 말, 누군가 내 이름 앞에 붙여주었던 신뢰의 한마디가 내가 걸어온 길을 만들어 주었다. 평판은 결국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나’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남긴 말은 반드시 돌아온다.


좋은 말로, 신뢰로, 혹은 반대로 부담으로.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을 대할 때 조심스럽다. 더 많은 칭찬을 남기고, 더 많은 신뢰를 쌓으려 한다.


왜냐하면 그 말이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열어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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