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

운은 준비된 자의 것

by 낙하산부대

서른아홉, 나는 부장이 되었다.

그 해, 내가 속한 부문에서 가장 어린 부장이었다.


“운이 좋았다.”
“윗사람에게 잘 보였겠지.”


사람들은 그렇게 수군거렸다. 틀린 말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나의 5년은 단순히 운으로 요약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첫 출근 날 건물 로비에 들어섰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여기서 살아남겠다. 반드시 자리 잡겠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나보다 학벌도 좋고, 경력도 화려하며, 언변까지 뛰어난 동료들이 즐비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긴장했고, 하루하루는 시험대 같았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아니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 말고는 답이 없었다.



내가 맡은 업무는 고객사에 컨설팅을 하고 제안하는 일이었다.


말은 멋있지만, 나에겐 낯선 자리였다. 이전 회사에서는 늘 ‘제안받는 쪽’이었지, 직접 제안서를 써 본 경험은 전무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제출한 제안서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왔다.


몇 번의 실패가 이어지자 자존심이 상했다. 나 스스로는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이 일에 맞지 않는 걸까?’ 하는 불안이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나는 냉정하게 내 제안서를 다시 펼쳐 보았다.


그 속에는 고객의 고민을 풀어줄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우리 회사의 규모, 역사, 기술력, 화려한 수상 경력 같은 문장만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읽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고객이 왜 이런 제안을 거절했는지, 이유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고객을 보지 않고 나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고객의 입장이 아니라 회사의 입장에서만 제안서를 썼으니, 실패는 예정된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방향을 바꾸었다.


‘고객과 시장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고객사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 요즘 어떤 이슈에 발목 잡혀 있는지, 관련 업계 자료를 모으고 또 모았다.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로는 부족했다.


직접 발로 뛰어야 했다. 협력업체 담당자들을 만나 술자리를 함께하며 관계를 물었다. 때로는 고객사 사람들에게 미팅 자리를 청해, 그들이 어떤 솔루션을 쓰고 있으며 무엇이 불편한지를 끝없이 물었다.


처음에는 내가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은 전해진다. 점차 사람들은 내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한마디, 두마디 던져주는 말이 모여 어느 순간 큰 그림으로 연결되었다.



그렇게 쌓은 조각들이 어느 날 내 머릿속에서 퍼즐처럼 맞춰졌다.

‘아, 이거다.’


고객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지가 그림처럼 그려졌다. 그리고 나는 그 전략을 제안서에 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제안은 수주로 이어졌다. 작은 성공이 쌓이자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은 다시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더 많은 고객과 협력업체를 만나러 다녔다. 그 과정에서 얻은 정보는 더 나은 제안을 낳았고, 그것은 새로운 성과로 돌아왔다.



이제는 영업대표들이 먼저 나를 찾아와 부탁했다.


“제 고객사에도 제안 좀 해주십시오.” 줄을 서는 모습에, 나는 처음으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제안서를 새벽까지 붙들고 씨름해도 힘든 줄 몰랐다. 성과가 따라주니 피곤이 곧 보람으로 변했다.



성과는 곧 평가로 이어졌다.


인사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고, 나는 팀장을 맡게 되었다. 팀장이 되자 책임은 무거워졌지만, 무게는 곧 성장의 기회이기도 했다. 사람을 이끌며 내 일만 잘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부장으로 승진했다. 입사 후 단 5년 만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승진에는 운이 따라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운이 전혀 없었다면, 나 역시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운은 준비된 자 앞에서만 고개를 내민다고.



나는 제안 실패의 굴욕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고객의 진짜 목소리를 듣기 위해 골목길을 누볐고, 밤을 지새우며 자료를 뒤적였다. 그것이 결국 기회를 불러왔다.


서른아홉의 부장 승진은, 운이 아니라 준비의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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