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지옥에서 배운 것

by 낙하산부대

1년여의 준비 끝에 두 번째 직장에 첫 출근하던 날이었다.


무거운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그 순간, 팀 선배가 나를 힐끗 보더니 나지막이 한마디를 던졌다.


“Welcome to hell.”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억지웃음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의아했다.


‘지옥이라니… 설마 진짜일까?’


하지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금융회사는 신용과 신뢰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곳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늘 깔끔했다. 정장과 와이셔츠는 기본, 구두는 늘 광이 나 있어야 했다. 업무 시작 한 시간 전에는 반드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고, 상사나 임원의 지시가 떨어지면 조직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효율이 아니라 ‘전통’이었다.


그런데 우리 팀은 그중에서도 더 엄격했다. 회의가 있으면 반드시 팀장에게 사전 보고를 해야 했고, 동료와 점심을 먹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열리는 회식은 빠짐없이 참석해야 했으며, 2차는 기본, 3차는 당연한 절차였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고, 거부는 곧 배신으로 여겨졌다.


팀장은 마치 자신이 작은 제국의 군주라도 된 듯 행동했다. 자신의 신입 시절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며, 우리에게도 똑같이 따르라고 강요했다.

‘나도 이렇게 버텼으니 너희도 마땅히 견뎌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존경이 아니라 숭배였다.



이직한 지 5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였지만, 신혼의 달콤함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가정보다 직장이, 더 정확히 말하면 팀장이 우선이었다.


밤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았고, 결혼 초의 설렘은 점차 피로와 갈등으로 바뀌어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지쳐갔다. 특히 힘들었던 것은 팀장의 기분에 따라 하루의 공기가 극단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그가 기분이 좋을 때는 웃음이 오갔지만, 기분이 나쁠 때는 사소한 보고조차 독설로 돌아왔다.


“너는 초등학교는 나왔냐?”


보고서에 흠이 없어도, 그는 꼭 이런 말로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 차라리 명확한 지적이라면 견딜 수 있었겠지만, 인격을 깎아내리는 말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점점 위축되었고, 회사에서조차 내 목소리를 잃어갔다.



이직 1년쯤 되었을 때, 결국 한밤중에 아내에게 눈물을 보였다.


“회사 다니기 너무 힘들어.”


말끝이 흐르며 울음이 터졌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자책보다, 더는 견디기 어렵다는 절망이 앞섰다.


아내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그만둬. 내가 먹여 살릴게.”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위로의 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당장은 무작정 회사를 떠날 수 없었기에, 다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첫 직장에서 쌓은 경험을 발판 삼아, 다행히 세 번째 회사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합격 소식을 듣고 퇴사를 알리자, 대표이사가 팀장에게 내 퇴사를 막으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오기 전 이미 8명이 팀을 떠났고, 내 전임자는 팀장과 멱살잡이를 벌이다 회사를 떠났다고 했다.


그 말만으로도 이 조직이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팀장은 마지막까지 나를 붙잡으려 했다.


“골프 시작했지? 부킹 해놨어. 내가 집 앞으로 데리러 갈게. 가는 길에 얘기 좀 하자.”


퇴사하는 마당에 웬 골프인가 싶어 거절했지만, 그의 끈질긴 부탁에 결국 자리를 함께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말했다.


“한 달 안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테니, 퇴사를 철회해 줄 수 있겠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믿음은 이미 깨진 지 오래였다. 결국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퇴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에게 들은 소식은 예상대로였다.


팀장은 단 2주 만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 회사는 몇 년 뒤 모회사에 흡수 합병되었고, 팀장 역시 회사를 떠났다.


마치 오래된 건물이 무너져 내리듯, 굳건해 보였던 권위도 허망하게 사라졌다.



세 번째 회사로 자리를 옮긴 나는, 시간이 흐른 뒤 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나 역시 사람인지라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기분이 곧 태도가 되지 않도록, 그것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는 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며 얻은 깨달음은 단순하다.


권위는 억지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리더는 신이 아니라, 함께 길을 걷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때 선배가 내게 건넨 말이 이제는 다르게 들린다.


“Welcome to hell.”


그 말은 어쩌면 경고이자, 내가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메시지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마음속에 다짐한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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