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조용한 절망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내가 퇴폐 이발소를 갔다기보다는 내가 간 이발소가 퇴폐했던 이야기이다.
올여름 난 장발이었다. 이십 대 후반 이후 줄곧 ‘스포츠머리’와 ‘투블록’ 사이를 방황하다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가지 가설은 있다. 먼저 아주 조금씩 느껴지는 나이 들어감에 대한 반동이었다. 장발이었다는 것 말고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입대 전의 내 모습이 그립다고 자주 생각하니까. 두 번째는 직장에 대한 짜증 섞인 시위였다. 우리 회사 정도면 - 어차피 돈 벌자고 하는 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 솔직히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이티 업계 특유의 ‘있는 위계 없는 척'이 난 낯 뜨겁고 번거로우며 가소롭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고 죄송하게도 장발한다고 뭐라고 하는 상사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 머리 자를 거냐고 넌지시 떠보는 분들은 있었는데, 내가 눈치가 없었나 싶다.
글을 쓰다 보니, 솔직히 그냥 머리 자르기 귀찮고 돈 아까웠다는 것이 가장 솔직하고 뒤 내용과도 매끄럽게 이어지는 설명이란 생각이 든다. 남자 커트 비용은 지난 수년간 비약적인 오름세를 보였다. 소위 말하는 메이커 미용실은 말할 것도 없고, 동네 미용실에서조차 남자 커트에 2만 원 정도 계산서는 서슴지 않고 들이대는 것이 요즘 세태다. 혹자에게는 이것도 합리적인 가격일 거로 생각하니 좌절감에 쓴웃음이 지어진다. 머리숱이 많고 반곱슬인 내가 두발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3~4주 주기로 미용실에 가야만 하는데, 물론 여자들처럼 한 번에 가성비 전자제품 하나 구매하는 정도의 지출이 발생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나 만만치 않은 출혈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난여름은 긴 머리로 버티기에는 너무 더웠다. 카카오맵에 ‘이발소’로 검색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발소에 갔다. 네이버 지도로 교차 검증해 보니 가격은 단돈 만 원. 가격도 저렴한데 미용실 가는 시간도 절약하면, 시간은 돈이므로, 돈을 두 번이나 아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발소는 후덕한 인상의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이발하는 의자(미국 이발소에서는 ‘스테이션’이라고 한다고 한다)는 딱 하나였다. 이발사님은 이탈리아 밀라노 축구팀인 인테르 나치오날레의 검은색/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계셨다(인테르 나치오날레, 약칭 인테르는 이탈리아 클럽 최초로 챔피언스리그-컵대회-리그를 동시 석권한 최고 명문 팀 중 하나이다). 풍채로 보아 본인이 축구를 하시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모님은 안경을 끼셨고 체구가 작은 꽤 전형적인 우리네 할머니 같은 분이셨다. 지금 생각하니 굉장히 미국적인 광경이다. 이탈리아계(?) 남자가 운영하는 오래된 이발소라니.
젊은 남자가 90년대 본 조비처럼 치렁치렁 들어오니 재미가 있으셨을까. 예기치 않게 두 분과 많은 대화를 했다. 머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잘랐나, 파마한 곱슬이 아니라니 신기하다, 이만큼 머리 잘라보긴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스몰토크만 하게 되면 쭈뼛대는 극 ‘I’ 성향인데 이를 알아보시고 배려해 주신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이곳이 퇴폐한 곳이라는 의심이 든 건 한창 머리를 자르던 중 '내실'의 존재를 확인한 다음이었고,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의심은 확신이 됐다. 내실에 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실제로 이 공간들이 뭐라고 불리는지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검색도 해봤지만,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는데, 그렇다고 공들여 자세히 탐구하다가는 심연을 들여다볼까 무서웠다.
여기부터는 그렇게 우연찮게 경험한 퇴폐 이발소의 특징을 정리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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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부터 쓸 모든 이야기는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했을 뿐이며, 시대와 지역, 업체에 따라 세부 사항은 매우 상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퇴폐이발소에서 굳이 이발도 할 필요는 없을 거 같고, 7만 원이라는 가격도 매우 임의적으로 느껴지는바, 포스트모던한 진리의 명제인 '케바케'가 여기도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1. 퇴폐 이발소도 이발은 한다.
심지어 나쁘지 않게 한다. 물론 짚고 갈 것이, 내 미적 주관은 까탈스럽지도 않고 주변의 의견에 매우 쉽게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이발소 같은 경우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각종 이발대회 상패들은 물론 소싯적 세계구급 미용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출전하실 적의 사진 자료들까지 자랑스럽게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구촌이 인정하는 분이 이발하는 머리가 별로일 리 없다는 후진국 시민적이고 옹졸한 결론에 이르니, 단돈 만 원에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가 주제넘은 겸허함까지 들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이발 백종원 선생님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발 장비는 굉장히 노후했지만 비위생적이지는 않았는데 (이발사님도 계속 마스크를 착용 중이셨다) 도구가 낡았으니 괜히 더 고수처럼 보인다는 희한한 생각도 잠깐 했던 것 같다. 나는 노포 식당을 매우 좋아한다.
2. '내실'이 존재한다.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퇴폐함이 드러난다. 이발 의자 바로 옆에는 중문이 하나 있는데, 나는 당연히 이발사 내외의 휴게 공간일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한창 머리를 자르며 담소를 나누던 중 중문이 안에서 벌컥 열리고, 화려한 반짝이 장식이 달린 검정 시스루 원피스를 입은 중년의 여성이 에어컨이 고장 났다고 하시더니 문을 쾅 닫고 들어가셨다. 찰나를 틈타서 내부를 슬쩍 보니, 중문을 지나면 일종의 복도가 존재하고 좌우로 작은 방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뭐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찰나였던 만큼 여기까지는 추측일 뿐이었으나 이후로도 중년의 남성 여러 명이 우르르 나오고, 비슷한 옷차림,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여성분도 나오시고 하는 것을 보니 실제로 안쪽 공간이 매우 넓다고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밖에서는 정말 작아보였는데 내부 공간은 엄청 넓은 것이 마치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 나오는 마법 텐트 같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었다.
3. 성 노동자들은 평범한 중년 여성들이다.
적어도 이 경우는 그랬다. 성 노동자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대단히 수심이 가득한 얼굴은 아니었다. 내실 안에 몇 분이나 계신 줄은 모르겠지만, 내가 가까이서 뵌 분은 화장이 짙었다는 것 정도를 빼면 기억할 만한 특색이 없었다. 기억할 만한 특색, 정확히 말하면 기억할 만한 그림자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얼굴일 거라고 짐작했던 이유는 뭘까? 뻔하디 뻔한 얼굴을 보고 약간 실망한 이유는 뭘까? 성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 존엄의 추락이며 인간 존엄의 추락에는 장구한 사연이 필요하다고 어림짐작하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그의 얼굴이 내가 불행에 무슨 사연이 필요하다는 식의 오해 속에서 살아왔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불행은 - 베스트셀러 그래픽 노블 <킬링 조크(Killing Joke)>에서 조커의 유명한 말 한마디를 빌려오자면 - 그저 옴팡지게 재수 없었던 단 하루(one bad day)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우리 삶은 대단히 경로 의존적(path dependent) 일 때가 있다.
아니면 그냥 익숙해진 일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말하면서도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관점에 따라 성노동자라고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직장인들도 회사가 싫다고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사무실에서 오만상을 쓰고 있지는 않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선생 말마따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용한 절망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그들과 크게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소시민적 엘리트주의 아닐까.
4. 그러고 보니 '이발하러 왔어요?' 따위의 질문을 한다.
처음 반투명 테이프가 붙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을 때 사모님이 이발하러 왔느냐고 물어보셨는데, 곱씹어보면 이것도 퇴폐업소라는 지표였던 거 같다. 이발소에서 이발, 그리고 어쩌면 이발하는 법 배우기 정도를 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너무 당연해서 묻지 않는 질문도 있다. 동네 순댓국집 사장님이 '식사하러 오셨나요?'하고 물어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혼자야?' '뭐 드려?' 같은 예/아니오 외의 구체적인 정보 값을 요구하는 질문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건 내 과대 해석일 수 있다. 이를테면 순댓국집 사장님이 '순댓국 하나 드려요?'하고 물어볼 때도 있는데, 이는 어떤 순댓국집에서는 육개장도 팔고 뼈해장국도 팔기 때문이다(물론 이런 경우 대개 맛의 깊이가 얕다). 이발소에도 이발 말고 다운펌 하고 싶은 손님, 뿌리염색 하고 싶은 손님도 드나들 수 있다. 물론 내가 간 곳에 그런 서비스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번외로 이발사 내외가 대화에서 'A는 저번에 와서 이발만 하고 갔잖아'라고 말씀하신 것도 기억난다. 이발이랑 같이 또 뭘 할 수 있을까? 샴푸?
5. 가격은 7만 원이다.
상술했듯이 이발만 하면 만원이다. 내가 간 이발소 같은 경우 대외적인 가격표에는 '체형 관리 마사지' 비용이라고 써 놓으셨다. 실제로 화려한 옷을 입고, 내실에서 은밀하게 체형 관리 마사지만 할 확률도 있을까? 만에 하나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무한히 죄스러워진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이발 올림피안이 집도하는 두발 정리에 체형 관리 마사지까지 풀코스로 받으면 무려 8만 원인데 (1+7=8) 이렇게 해도 일반적인 여성 미용 한 번 보다 싸다는 것이 시장주의의 아이러니이다.
6. 이발소 표시등이 두 개가 돌아간다.
이건 내 경험이라기보다는 나중에 웹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카더라' 수준의 정보인데, 삼색 표시등이 한 개만 있는 곳은 실제로 이발을 하는 건전한(...) 이발소이고, 두 개가 돌아가는 곳은 그렇고 그런 곳이라고 한다. 내가 방문한 곳도 표시등이 두 개였다. 물론 이 따위로 똑 부러지게 분류될 리는 없을 거로 생각하고,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정보니 그런 말도 있다 정도로 넘어가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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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일어날 용기도 명분도 없었던 나는 끝까지 앉아 있었다. 이곳의 정체를 눈치채고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든 나를 이발사 내외도 불편해하는 것이 느껴져 조금이라도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는데, 여느 미용실처럼 샴푸도 해주셨다. 개수대도 오래됐지만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머리 감겨주시는 물 온도가 차가웠는데 말씀드릴 분위기는 아닌 거 같아 꾹 참았다. 좀 특이하게도 드라이는 나에게 직접 하라고 드라이기를 주셨는데 워낙 정신 없던 상황이라 어떻게 하고 나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만원을 카드결제했다.
여성가족부에서 3년마다 발간하고 있는 '성매매 실태조사 및 연구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약 37퍼센트의 남성이 성매매를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한다고 한다. 물론 이 통계가 크게 신빙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2016년 보고서에서는 50퍼센트를 상회하던 것이 몇 년 만에 37퍼센트로 가파르게 하락했는데 그 사유를 '젊은 층의 성매매 경험률이 상대적으로 낮음' 정도로 퉁치는 보고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인들을 살펴보면 이 추정치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거대한 산업이 실존하고 우연히 방문한 퇴폐이발소도 실존하는 그 일각일 것이다.
대체 우리의 등잔 밑은 얼마나 어두운 걸까? 이런 곳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
나는 지금 이발소 건너편에 위치한 고급아파트(실제로 우리 동네 유일한 '메이커 아파트'로 알고 있다)에 사는 학부모가 빙의되어 퇴폐업소의 즉각 퇴거 따위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린 성매매에 대한 온갖 소식을 듣는다. 각종 매체를 통한 보도를 듣거나, 대중문화를 통해 가공된 이미지의 성 노동자들과 마주하기도 한다. 성노동자들에 대한 멸칭은 가성비 좋은 욕지거리로 쓰이기도 한다. 성 노동자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우리가 상상하는 대부분 성 노동자의 작업장은 '오피'니 '사창가'니 하는 성매매 평생 안 해본 사람들도 짐작할 수 있는 곳들이다. 한여름 에어컨이 고장난 이발소 내실에서 일하는 중년의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고 있지 못한다. 내가 상상도 못 하는 방식으로 누군가가 조용한 절망의 삶의 영위해 나갈 것이란 사실이 나는 무섭다.
그림자 속에도 그림자는 있다. 이들은 누가 보호할 수 있을까? 이들은 보호받기를 원할까?
이렇게 한 번도 성매매를 해본 적이 없는 한 한국인의 눈으로 정말 어쩌다 관찰한 현장 르포를 마친다. 30분 남짓 곁눈질로 장황하게 내려쓴 글이 구멍이 숭숭 뚤린 퍼즐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문득 걱정이 된다. 소경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맹인모상(盲人摸象) 속 소경이 바로 나다. 그래도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다들 한 번 정도는 궁금해 해본다면 조금이나마 이 어두움을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주제넘는 생각을 해봤다.
아무튼 목적 없는 장발을 정리하고 나니 머리는 상쾌했지만, 마음은 여러모로 꿉꿉해지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