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을 차렸지만 받지는 못할 사람들
어린 시절 나는 명절에 할아버지 댁 가는 것이 정말 싫었다.
아버지의 고향은 전라북도의 남쪽 끝자락에 있는 고창이라는 곳이다. 복분자와 수박 등 먹거리가 강하다고 알려진 고장이다. 인간적인 혐오감을 느끼게 했던 몇 안 되는 직장 상사 중 하나였던 모 예비역 장군의 말에 따르면 이건 지역 특유의 비옥한 황토 덕분이라고, 본인이 중령 시절 인근에서 대대장을 지내 잘 안다고 했다. 고창 바로 옆에는 굴비 하나로 전국적인 위세를 떨친 영광, 동학농민운동의 발상지인 정읍이 전라남도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여기까지 들으면 나쁠 것이 있나 싶지만, 당시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금처럼 정비되기 전이었고 나는 매우 병약했다. 우리 가족은 수도권 언저리에 살고 있었는데,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 단연 주민등록등본이 가장 긴 사람이고, 특히 초등학교 입학 이전의 기억은 몇 가지 스틸컷만 남아 뒤죽박죽인 상태이다). 할아버지 댁에 가는 데 열두 시간씩 걸리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멀미로 구토하거나 앓아눕는 것은 일상이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릴 쯤에 다시 오를 수밖에 없던 귀경길까지 명절 교통체증은 더 작고 약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입맛을 잃고 젓가락을 깨작대면 입이 짧고 까다로운 어린이로 어른들께 낙인찍혔던 기억까지 복합적으로 각인되어 버렸는지 나는 아직도 고창의 특산물인 수박을 싫어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통해 처음 고창에 성공적으로 도착한 날 아버지의 의기양양한 표정은 공사 중인 굴다리 아래 비포장도로 노상에서 잠시 휴식하던 또 다른 기억과 함께 빛바랜 필름 사진처럼 기억 한편에 남아있다. 서해안고속도로 최초 개통이 1994년이라고 하고 2001년까지 한 구간씩 추가 되었다고 하니 이 사이에 있었던 일일 거라고 짐작한다.
나이가 들어 이제 내가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매년 두 번씩 당신의 아이가 앓아눕는데도 고창에 부득불 가야만 하던 이유가 당최 뭐란 말인가? 교통체증이 덜 한 시기에 찾아뵈면 안 됐을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시면 안 되는 거였을까? 어머니에게 이렇게 한 번 여쭤본 적이 있다. 당신께서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냥 그땐 그랬다고 한다. 지금이라면 어느 부모가 그렇겠냐고 덧붙이시면서 이번 연휴에도 눈이 많이 내리니 내려오지 말라고 하신다.
유교 기반 농업 공동체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 우리 조부모님 세대의 권위주의가 힘을 잃는 데까지는, 이런 말 하기 죄송하지만, 두 분께서 육체적으로 노쇠해지시는 데 걸리는 만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명절만 되면 어머니는 부엌 밖을 나오지 못했고 아버지는 열두 시간씩 운전 해야했고 나는 멀미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전통적인 가치와 대가족적 공동체에서 주는 추억이 - 나는 없지만 -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이면에는 희생과 복종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의 명절 풍경은 정말 민주적이고 모두 행복했었을 수도 있다. 그건 진심으로 부러운 일이다.
나의 부모님은 각각 1959년생과 1963년에 태어나셨다. 전형적인 '베이비 붐 세대'의 범주에 들어간다. 단순히 아이가 많이 태어났다는 기술적인 용어인 '베이비 붐' 외에 이들을 역사가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쉽지 않은 작업임은 틀림없다. 우리 아버지는 농업 공동체의 끝자락에서 유년기를 보내다가 조국 산업화와 세계화의 첨단에서 청춘을 보내고 이제는 ChatGPT 쓰는 법 좀 배우라고 아들에게 잔소리를 듣고 계시니까 말이다. 가정 내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도 이렇게 격동의 시기를 겪는 세대가 있을까 싶다. 한창때 우리 할아버지는 요즘 기준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독재자였을 거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가 집안의 큰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은 어떤가? 차례를 지내는 가정은 실로 멸종 위기이며 유교적 순리를 강요하는 시부모는 최소 인터넷 커뮤니티의 험담 대상이고, 상호 방문 중단 선언까지 이어지는 것도 여기저기서 봤다.
이런 말을 굳이 해야 하나 싶지만, 나는 이런 변화가 좋다. 물론 지금도 고통받는 가정이 많겠지만 '평균적으로 예전보다는 낫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나는 정말 억지라고 생각한다. 가정 내 갈등이 많아진다는 것은 더 이상 일방적인 희생이 당연시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동일한 맥락에서 이혼율 상승은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분명히 진보하고 있다(그래야만 한다!). 가정 내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보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에서 선임에게 온갖 괴롭힘을 당했지만, 시대와 함께 밀물처럼 찾아온 '병영 선진화' 정책으로 인해 후임을 괴롭힐 수 없어 우울해진 사병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요즘 기준 2년도 안 되는 군 생활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반강제적으로 '대물림되지 못하는' 폭력이라는 구조는 기시감이 있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내 차례가 왔거늘, 사실 룰이 잘못됐으니 가만히 있으라니!
그러니 부모님들이 억하심정을 불쑥 드러낸다거나, 아무것도 아닌 걸로 어깃장을 놓더라도 조금만 인내해보면 어떨까하는 주제넘는 고언과 함께 명절을 맞아 갑자기 쓰기 시작한 글을 갑자기 마친다. 시대라는 긴 터널을 지난 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흉터를 어루만지는 하나의 방식은 아닐까. 내 마음이 허락하는 데까지만이라도 노력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물려받은 우리의 양심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Try your best, and that's the best anyone can do"
- <길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