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나봐
비행기 출국 당일, 원래 같으면 6시까지 끝나야 했던 오디션이 한참이나 밀려 8시가 훌쩍 넘어서야 끝났다. 새벽 1시에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떠나는 일정이라 오디션이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캐리어만 챙겨서 아빠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엄마 차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지금부터는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 하겠구나.’ 3년 만에 인천 공항에 찾았는데, 홀로 베를린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그렇다고 엄마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수도 없는 법... 이왕 하는 거 쿨하게 가야겠다는 생각에 엄마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당당하게 인천공항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혼자 제주도를 가본 적은 있어도 해외로 가는... 그것도 18시간 동안의 장거리 비행을 혼자서 가다니.. 모든 게 처음이어서, 우선은 살아서 도착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이 밖에도 경유는 어떻게 해야 할지, 짐은 어떻게 찾아야 할지, 유심은 잘 터질지 등등 걱정거리가 한가득하였지만, 배가 고픈 걸 넘어서 곪을 정도라 뭐라도 입에 집어넣고 싶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늦은 시간이라 문을 연 음식점이 없었고 결국 아이스커피 하나로 목을 축이며 게이트 앞으로 갔다.
게이트 앞에 앉아있으면서도 여전히 유럽에 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오디션을 봤는데 갑자기 비행기를 탄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됐고 어영부영 카타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8시간은 같이 갈 텐데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안녕하세요.ㅎㅎ”
기내식을 먹으며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금세 친해졌다. “저희는 직장 동료인데 부채춤을 배워서 길거리 공연을 하러 가요.” 취미로 부채춤을 배우고, 그걸로 유럽까지 가서 선보인다는 이야기에 너무나 놀라웠다.
“저는 이제 막 졸업해서 베를린으로 여행하러 가요. 친구는 이미 먼저 도착해서 거기에 있는데 호스텔에서 만나게 될 것 같아요”
“헐 우리도 베를린으로 가는데 혹시 어떤 비행기로 가요?”
“저는 도하를 경유해서 똑같이 카타르 타고 가요!”
“우리도 그런데 진짜 인연이다...!”
혼자서 경유할 생각을 하며 걱정하던 찰나에 비행기 옆자리에서 우연히 동행자 찾게 되다니.. 정말 기적 같았다.(앞으로 각 각 ‘써니’와 ‘주디’라고 부르겠다.)
우리는 경유지인 도하에 도착한 뒤, 거대한 도하 공항의 모습에 압도됐다. ‘이게 자본주의의 맛인가…’ 이색적인 모습에 넋이 나간 채로 경유지에서의 즐거운 3시간을 보냈다.
“비행기 탈 사람 중에 한국인이 저희만 있나 봐요..!”
“인연이 진짜 신기하네요…”
게이트 앞에서 베를린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한국인이 우리 셋밖에 없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역시 인연이면 어떻게라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다시 6시간 동안의 비행기를 탔을 때, 이전보다 훨씬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졌다. 단 6시간만 버티면 되는데 배는 더부룩하고 찝찝해서 베를린이고 나발이고 집에서 씻고 편히 잠이나 자고 싶었다
그러나 길고 길었던 비행기에 내려 베를린 땅을 밟았을 때, 마침내 유럽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아드레날린이 용솟음쳤다.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과 전광판에 적힌 독일어까지 모두 낯설고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주디와 써니가 묵는 호텔은 내가 머무는 호스텔과 한 정거장 차이였기 때문에 역까지도 함께 가기로 했다. 아마 주디의 도움이 없었다면 기차 타는 법을 몰라서 국제 미아가 됐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주디는 이전에 짧게 독일 여행을 한 경험이 있었다. 어쩐지 믿음직스러웠어..)
“너무 감사했어요. 나중에 한국에 가서 볼 수 있으면 꼭 봐요!”
“좋아요ㅎㅎ 안전히 가세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디와 써니와 함께한 시간은 특별했었다. 나는 먼저 내리는 그들과 이사하며 뭉클한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