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1.

첫 번째 죽음.

by 보너

우리는 평소에 죽음을 느끼지 못한다. 엄지에 어쩌다 상처가 나면 그제야 엄지의 중요성을 깨닫듯, 가까운 죽음을 겪고 나면 한참 삶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또 익숙해하다가를 반복한다.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가까운 죽음을 늦게 겪은 편이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양가 모두 내가 19살 때까지 정정히 계셨기 때문이다. 보통 친구들은 어릴 때 네 분 중 한 분이라도 돌아가신 사람이 많았다. 난 운이 참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죽음은 이건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추억들을 알아버린 채로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19살 수능이 얼마 안 남은 시점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고, 학업스트레스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상태였다. 그때의 일기를 보면 자학하는 내용밖에 없다.


지금에 그 일기를 펼쳐보면 그때의 나에게 연민의 감정이 매우 들정도로.

이렇게까지 '나'를 싫어할 필요는 없는데... 하면서


그때에 할머니의 죽음은 내가 마음껏 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할머니의 슬픔을 빌미 삼아 답답했던 마음을 울면서 풀고 나니 좀 속이 시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갑작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친할머니는 연세가 있으시기도 했고 병원에서의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여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공부와 수능준비라는 핑계로 할머니를 보러 가지 않았던 나는, 어느 날 어머니 아버지께서 할머니를 뵈러 가자고 하셨고,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전까지 병원이라는 공간을 좋아했다. 넓고 숨겨진 곳도 많고 사람도 많고.

그날은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둡고 그리고 할머니는 의식이 없으셨다.


간간이 깨시긴 하셨는데, 나를 보고 사촌언니이름을 불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죽음을 앞둔 사람의 모습은 미라 같았다. 할머니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났다. 매번 호통을 치시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가 이런 모습을 보아서 그런가 굉장히 이상했다.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새벽에 나는 이상하게도 잠에서 일찍 깼다. 오전 5시쯤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과 같이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느라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고 있었고, 나는 깨어서 어머니에게로 갔다. 엄마는 나를 안아주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동생을 깨우고 다 같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고, 리본을 달고.


사실 장례식 당시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영정사진을 눈앞에 두고 있어도 그저 다시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께서는 나오셔서 "오냐~ 왔냐?"라고 하실 것 같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드라마 속의 장례식장은 아비규환이었는데, 그렇게 죽을 것 같이 슬프지 않은 내가 조금 이상한 사람 같았다.


실감이 났던 첫 순간은 '입관'이라는 것을 한다고 했을 때였다.

누워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고왔고, 또 아버지 어머니가 우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염을 하는 순간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아. 가까운 죽음을 보내는 일은 충격적이었고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 같다. '가슴이 찢어진다.'라는 말을 체감했다고 느꼈다. 이러한 고통은 처음 겪어 보아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또 장례식장에서 손님맞이를 할 때 잊고 있다가, 화장을 하러 갈 때 우리는 눈물을 얕게 흘렸다. 우리 말고 다른 팀은 비명소리가 들렸었다. 화장터의 대기 공간에 보면, 이름과 함께 화장 진행정도를 알려주는 모니터가 있는데, 그 옆에 화장을 하는 사람의 이름이 아주 어린아이의 이름처럼 보였다. 그 비명소리에 우리의 눈물은 묻혔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은 우리와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었고, 또 나이가 드셔서 우리는 은연중에 알고 있어 얕은 눈물을 흘릴 수 있었지만, 그 옆의 장례는 아비규환이었다.


우리는 숙연해졌고, 큰아버지들과 아버지는 그래도 이 정도면 고통스럽지 않게 지나간, 할머니의 호상이라고 표현했다. 시간이 되어 유골이 나와 유골을 감싼 비닐을 만져 보는데 따뜻했다. 아마 가마 열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할머니 집에 가서 절을 올리고 집안의 선산(先山)으로 향했다.


선산에 할머니를 묻고 절을 다시 하고 내려오기 전에 어른들이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생전에 할머니께서는 미신을 잘 믿으셨는데 그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죽은 사람을 선산에 묻을 때 옷가지를 옆에서 같이 태우면, 영혼이 그 옷을 입고 나들이를 간다고 했다. 우리는 옷을 태우기 시작했고, 당신께서는 죽을 줄을 아셨는지 미리 태울 옷가지를 준비해 놓으셨다. 그 옷은 핑크색 보따리에 야무지게 싸 놓으셨는데, 너무 많아서 태우는 데 끝도 없이 나왔다. 한 1시간을 태웠던 것 같다. 태우는 것은 보면 안 된다고 해서, 뒤돌아 있었는데 하도 태워도 끝이 안 나서 뭐야? 하고 눈물이 쏙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으신가 보다 했다.


끝이 난 후 밥을 먹고 친척들과 헤어졌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피곤해서 잠을 하루종일 잤던 기억이 있다.

첫 번째 죽음은 내 삶에 자그마한 가시처럼 들어왔다가, 어느새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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