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강하게 잘 자랐어.
막 내가 심리상담을 하러 다녔을 때, 엄마는 자책을 많이 했다. 그게 참 슬펐는데 그 당시는 나도 많이 혼란스러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상담을 점차 진행해 가면서 나도 좀 마음을 다스릴 줄 알고, 엄마 또한 마음을 다스리고 싶어서 불교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종교를 공부한다는 게 부정적이게 보였는데, 부처님의 말씀, 인도의 명상이 내가 하는 상담과 어느 부분 겹쳐 보여 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내가 둘 다 진정이 되니, 많은 말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엄마의 자책에 대한 내용도 있었고, 그 말을 들은 내가 한 말들이 엄마는 참 안심이 된다고 했다.
엄마는 맞벌이에 독박육아에 사회분위기상 휴직을 잘 낼 수가 없었다. 엄마는 꿀 직업이라는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낳은 뒤 100일 만에 일을 나갔어야 해서, 나는 이모의 손에 자라다 싶이 했다.
엄마는 나를 잘 키우고 싶고도 했지만, 또 일을 그만둘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해한다. 조금 커서 보니 나도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난 뒤,
엄마에게 말한 첫마디는
엄마, 어릴 때는 나만 엄마가 너무 바쁜 줄 알았는데, 커서 보니까 나처럼 큰 친구들이 정말 많더라.
엄마는 두고두고 그 말이 참 위안이 된다고 했다.
사회 분위기가 과도기 속에 있어서, 엄마는 엄마의 역할도 해야 했고, 가정주부의 역할도 해야 했고, 직장인의 역할도 해야 했다. 그리고 분위기 상 아버지가 도와준다는 것은 그때 당시로서는 고려범위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는 장난 반 진담 반 아빠 탓을 하지만, 만약에 지금 시대에 우리가 태어났다면 또 아빠와 엄마가 역할분담을 하기가 수월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생각을 해 보니 엄마가 위안이 되는 이유는 사실 저 말은 엄마와 우리 가족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조금은 엄마에게 많은 짐을 지웠어서, 그리고 다들 안 힘든 척 숨기고 사느라 엄마 혼자 잘못되고 힘든 줄 알았는데, 사실은 모두가 이제 아이들이 커서 대화라는 것을 해보니 가정환경이 비슷한 친구들이 많아서 엄마의 탓이 아니라 위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요즘은 사건사고가 진짜 많이 나고, 또 매체가 발달해서 사고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랑 동생) 진짜 어디 하나 아프지도 않고 예쁘게 잘 컸지 않아?
라는 말을 요즘은 많이 한다. 정말이다. 나는 혼자 집에 있는 시간도 많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돌보아 줬기 때문인지, 참 잘 컸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건강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늘 말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지금이 참 좋다고 말한다.
몸 건강하고, 그냥 나 벌만큼 내가 쓸 만큼만 일하고, 그리고 틈틈이 놀러 다닌다. 이런 일상을 엄마에게 많이 공유한다.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물론 우리 둘 다 사람이라, 늘 좋을 수는 없다. 엄마는 엄마이기에 가끔 싫은 잔소리도 하고, 나는 그럼 화가 나서 “됐어!!! 끊어!!!”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둘 중에 하나가 슬그머니 전화를 걸거나, 기프티콘을 보낸다. (사실 먼저 연락하는 쪽은 엄마다... 아직은 금쪽이 딸이라...ㅋㅋㅋ)
그럼 또 나는 받아서 또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
나는 지금 이 관계가 참 안정되고 좋다.
늘 안정될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사람과의 관계는 파도와 같은 느낌이라서 잔잔하다가도 넘실거리다가도 또 파도같이 몰아 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파도처럼 몰아 치기만 했는데,
또 시간이 지나고 서로 노력한 결과 지금은 다행히 잠잠해졌다.
그리고 또 파도가 몰아쳐도
잠잠해지도록 노력하고자
이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