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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09. 2023

하얀패모 이야기 35-유럽여행

유럽여행

 <유럽여행>

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고 2 때 정부는 일반인에게 해외 자유 여행을 허가했고 녀석은 그 법의 첫 수혜자가 되어 학교에서 가는 한 달짜리 유럽 여행을 가게 되었다. 녀석은 들떠하면서도 함께 가지 못하는 나 때문에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녀석은 출국 한 달 전쯤부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잔소리를 해대며 사람을 들들 볶았다. 모든 것을 뒤늦게 느끼는 나는 사실 녀석이 한 달 동안 없을 거란 사실이 별로 실감 나지 않았기에 녀석의 출국에 별 느낌이 없었다. 녀석이 없는 동안 녀석의 집요한 질문을 한 동안 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녀석의 출국이 고맙기까지 했다. 하지만 가기 전 녀석의 잔소리는 평소의 두 배쯤 은 되었다. 

“나 없는 동안은 너는 그냥 집에서 공부하면 안 돼?”

“왜? 밤 길 위험해서? 다른 애들도 있는데 뭐.”

“없을 때도 있잖아.”

“괜찮아. 나는 얼굴이 무기다.”

“그런 말 좀 하지 말고. 말 좀 들어라.”

“그럼 OO가 데려다주면 되지. 우리 집 근처잖아.”

“그건 내가 싫으니까 그렇지.”

“뭐가 싫으냐? 그 녀석도 우리 친구거든.”

“둘이 나 없는 동안 내 뒷담화 할까 봐 그런다.”

“호. 찔리는 게 많나 보지?.”

“찔리긴. 엽서 쓸 테니까 잘 받아. 답장은 아마 못 쓸 거야. 나는 이동을 할 거니까.”

“누가 답장 쓴 대냐? 엽서랑 우표는 알지? 멋진 걸로 골라라.”

“넌 내가 없는 게 좋냐?”

“뭐 기껏 한 달인데. 외국 나갔으면 몇 달은 있어야지.”

“한 달은 짧냐?”

“한 달 동안 유럽을 어떻게 보냐?”

“빈말이라도 아쉬운 척 좀 해주면 안 되냐?”

“아 내가 가랬냐? 결정은 지가 해 놓고 왜 나한테 바가지를 긁어?”

“암튼 걱정 마. 난 열심히 여행만 할 거야.”

“그럼 또 뭐 할 게 있나?”

“야! 솔직히 내 친구들은 여자 친구들이 유럽에서 딴 여자한테 눈도 돌리지 말라는 둥 신신당부를 한다는데 넌 뭐 그런 거 없냐?” 

“그러면 안 되지. 난 네 여자 친구가 아니거든. 내가 진정한 네 친구면 그러면 안 되지. 좋은 여자가 있으면 꼭 잡으라고 응원을 해야지.”

결국 녀석이 짜증이 났다. 

“아-그만해. 듣기만 해. 우리 조엔 여자가 한 명이야. 후배고 우리가 아주 싫어하는 전형적인 싸가지야. 같이 말 섞을 일도 없을 거야. 알았지? 그러니까 행여나 신경 쓰지 마.”

“미친. 난 상관없는데 맨날 저 혼자 맹세야.”

“금방 올게.”

“죽으러 가냐?”

“사진 많이 찍어서 내가 본 거 몽땅 보여줄게.”

“사진기 잘못 열어서 필름 다 튀어나오는 거 아냐?ㅋㅋ.”

“아프지 말고.”

“안 아파.”

“심심 해도 잘 참고.”

“안 심심해. OO랑 매일 노니까.”

“둘이 너무 놀지 마. 너넨 지금도 충분히 너무 친해. 그러다 나 돌아오면 안 놀아 주려고?”

“별.”

“공부 열심히 해 놔. 검사할 거야.”

“차라리 돌아오지 마라.”

“그건 안 돼.”

“잔소리 그만하고 제발 떠나라. 그러면 궁금해질지 누가 아냐?”

“넌 참 몰라. 이런 남자가 없거든?”

“맞아. 아주 징그럽게 잔소리야. 사내자식이 왜 그러니?”

“성경도 많이 읽어.”

“너나 빼먹지 마.”

“기도해 줘.”

“걱정 마.”

“나중에 꼭 같이 가자.”

“좋지. 사전 답사 잘해.”

“점심은 혼자 먹지 말고 꼭 OO랑 같이 먹고.’

“갠 늦게 오잖아.”

“안 그럴 거야. 내가 없으니까. 보고 싶겠지?”

“미친.”

“건강히 있어.”

“제발 떠나라, 이 화상아!”

녀석이 그제야 웃었다. 

“하하. 그래 그렇게 씩씩하게 있어”


녀석의 말대로 녀석이 해외에서 어떤 여학생과 사귀고 온 다 해도 나는 친구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녀석이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히려 녀석에게 미안할 일이었다. 녀석은 정말 상상도 못 하게 고지식한 녀석이라 내 앞이 아니라고 자신의 신념을 허물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느 해 겨울 방학에, 우리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두 달 입시 학원이란 곳의 새벽반에 처음 등록을 했을 때였다. 아직 어두컴컴한 겨울 아침 무렵 우린 매일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함께 학원에 갔다. 나는 늘 흰색 점퍼를 입었었고 녀석은 늘 나보다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날이 평소보다 더욱 어두웠고 나는 처음으로 검은색 점퍼를 입고 나갔다. 늘 그렇듯 녀석이 정류장에 서 있었고 나는 또 늘 그렇듯 아무런 인사도 없이 옆에 서서 내가 왔음을 알렸다. 우리 사이엔 "안녕?" 따위의 간지러운 인사는 없었다. 그저 녀석이 먼저 서 있고 내가 그 옆에 서면 녀석이 빙긋 웃으면 끝. 그런데 아무리 우리가 서로 인사가 없기로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인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침부터 왜 저리 부었지? 화났나?’

나는 늘 나를 향해 빙긋 웃어주던 주던 녀석의 침묵이 의아했지만 뭐라 말할지 몰랐다. 한데 마침 급하게 나오느라 버스 회수권이 없기에 녀석에게 말했다. 

“야, 회수권 한 장만 빌려줘."

그러자 녀석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외면을 하며 조금 옆으로 비켜섰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당황스러웠다. 녀석에게 재차 물었다.

“어? 회수권 한 장만 빌려 달래두?" 

녀석은 아까와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귀찮은 듯 고개를 이래 저리 돌리며 시계를 보고 누굴 찾는 시늉을 했다. 

“야, 회수권 없어? 왜 사람은 보지도 않고 도망가?, 야!" 

나는 참다못해 녀석의 가방을 잡아 흔들었다. 그제야 녀석은 나를 보며 놀란 듯 말했다. 

“왔어? 웬 검은색 옷이야? 너 아닌 줄 알았잖아! 아침부터 웬 여자애가 말을 걸고 난리다 했지?" 

“야, 나 아니더라도 누가 회수권 빌려 달라는데 그걸 모른 체하냐?" 

“네 허락 없이 여자 애들한테 웬만하면 선심 안 써. 그럴 필요 없잖아. 너랑 같이 있으면 몰라도. 안 그래?" 

“선한 사마리아인은 괜히 배웠냐?”

“거긴 둘 다 남자니까 그랬지. 여자면 성경에 기록되지 못했을 수도 있어.”

“이그, 저 화상……말은!" 

아무튼 그때 나는 녀석이 정말 철저히 나를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것을 알았다. 녀석이 “예수님 제외하고 너는 내 생각 대부분을 차지해. 아니, 예수님은 기본이니까 계산에서 제외하고 말하면 너는 내 생각의 거의 대부분이야. 물론 더 많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던 말이 실감이 났다. 나도 한 고지식하니까 아마 우리가 우정을 뛰어넘을 수 있는 나이까지 함께 있었다면 나는 어쩌면 녀석의 이런 fidelity쯤은 우습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겨울의 사건으로 나는 녀석이 눈앞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한결같은 인간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 녀석이 그처럼 호들갑 떨며 해댄 장황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녀석은 유럽에 있던 한 달 동안 엽서를 두 장 보냈다. 그나마 마지막 엽서는 귀국하고 나서 배달되었다. 녀석이 떠나고 한 달 동안 나는 매일 다른 남학생들이 번갈아 집에 바래다주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꼭 필요한 한 두 마디를 제외하곤 나와 말을 섞지 않았다. 녀석의 철저한 사전 조치였다. 그래선지 녀석의 예견대로 나는 많이 심심했고 나와는 대조적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바쁜 듯한 녀석의 엽서에 심통이 났다. 그때 결심을 했다. 

‘난 나중에 지가 한 번도 안 가 본 나라 먼저 가봐야지.’ 

녀석이 없던 도서관 여름은 유난히 매미가 시끄럽고 지루했다. 한 달이 지나고 녀석이 왔다. 우리가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온 녀석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 웃기는 선물 보따리도. 먼저 제 것과 내 것은 각각 빨강과 파란색의 양피로 만든 필통이었다. 그리고 제2 외국어가 불어인 내 친구 것은 불어 성경 또 나머지 한 명, 열심히 내 밤길을 지켜준 녀석에게는 꼴랑 손톱깎이 하나. 그것도 지가 비행기에서 한 번 썼다나 하는 중고품이었다. 속 좋은 그 친구는 그 웃기는 선물을 받고 어이없어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이 가고 나면 녀석은 저널북을 펼쳤다. 한 달 동안 유럽에서 지내며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것이라 했다. 일기와 같은 것이라 다른 친구들에겐 읽어 줄 수 없다며 하루에 꼭 한 장씩만 읽어 주었다. 녀석의 저널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그림 솜씨 좋은 녀석은 군데군데 삽화도 그려 넣어 그 저널은 마치 견문록과도 같았다. 저널에는 또 군데군데 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하숙집 아저씨한테 내 자랑을 했다는 둥, 자기 이름이 외국인에게 어려워 차라리 불어로 내 이름이 지 이름과 비슷해서 그걸 썼다는 둥~. 사진을 보여주며 녀석이 말했다. 

“이 분이 하숙집 아저씬데 음료수 마시자고 나가자고 하셔서 막 신나서 따라 나갔거든? 그런데 딸까지 다 데리고 나가서 한 잔씩 하고는 계산할 때 그 집 식구들이 갑자기 계산서를 다 돌려보며 뭘 체크하는 거야.”

“뭘 하는 건데?”

“글쎄 자기가 마신 거 얼만지 각각 따로 계산하는 거 있지?”

“와-어떻게 그러냐? 너도 따로 냈어?”

“아니. 나는 그냥 모르는 척하고 뭉그적댔더니 그 집 딸이 대신 내줬어.”

“딸이?”

“날 무척 예뻐야 주셨거든. 질투 나냐? 나도 나가면 구박받는 사람 아니다.”

“여자한테 얻어먹고 와서 좋아하기는?”

“나보다 나이도 많으신 누님이시다. 됐냐? 그래도 무지 예쁘게 생기셨다.”

나도 감탄하며 맞장구를 쳤다.

“정말 그렇다.”

그러자 녀석은 곧 말을 바꿨다.

“아아냐. 서양 애들 얼굴은 이틀만 보면 질려. 정말 어찌나 금방 싫증이 나는지 놀랐다니까.”

“됐고, 사고는 안치고 잘 따라다녔냐?”

“한 건 했지. 유럽 화장실 알지? 영화 보면 욕조에서 목욕할 때 커튼치고 하잖아.”

“응, 거 왜 치는지 모르겠더라. 무슨 멋이야 그게?”

“그치? 나도 첨엔 괜히 치는 줄 알고 -야 이것들아, 니들은 목욕할 때도 멋 내지? 난 순수하게 목욕만 한다- 그러고는 그 커튼 안치고 그냥 샤워하고 나왔거든?”

“그런데?”

“아 조금 있으니까 주인아주머니가 욕실에서 난리가 나신 거야.”

“왜?”

“꼴을 보니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 같더라고. 일단 가 봤지.”

“네가 뭘 잘못했어?”

“잘못했지. 바닥이 물바다가 된 거야.”

“왜?”

“걔네들 욕실은 오래된 거라 욕조 밖에는 배수관이 아예 없는 거라. 커튼은 욕조 안으로 쳐서 물이 바닥으로 못 나가게 꼭 쳐야 하는 거더라고.”

“아, 그걸 욕조 밖이 아니라 안에다 쳐야 하는 거구나.”

“야, 근데 그 아주머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손님이고, 모르고 한 건데 막 소리를 지르고 너무 하시더라.”

“따지지?”

“뭐 내가 불어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급하니까 영어가 막 나오더라.”

“오호~ 영어는 유창하게 나오대? 뭐라고 했는데?” 

“어? 그냥 막... 쏘리 마담...”

“크하하!”


이렇게 한 달 동안 나는 녀석의 이야기에 푹 빠져 살았다. 지금도 그 저널을 달라고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녀석이 멀리 있는 동안 나는 녀석이 걱정했던 일들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녀석이 다른 여학생들과 친해질 것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고 다른 녀석들이 내게 다가올 걱정도 하지 않았다.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 앞에 우린 모두 서 있었다. 

다음은 녀석의 엽서 전문이다. 


엽서 1

To OO 자매.

아름답고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이곳 랭스에서 이 펜을 듭니다. 

솔직히 말해 너무 바쁘고 빽빽한 일정 때문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 생각은 거의 못 했습니다. 짧은 불어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물론 나보다 불어를 못하는 사람도 허다합니다만)과 

생활하자니 정신이 없을 만도 하지 않습니까?

이곳 이야기는 돌아가서 하기로 하고 하나, 이곳에서 배운 교훈을 말해줄까 합니다. 

“If you go anywhere, there is God.”

몸 건강히~


추신: 본문을 쓴 지 3일이 지났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파리로 떠났고 나는 하루를 이곳에서 쉬기 위해 남아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놈의 더위 먹는 것 때문에 굉장히 고생합니다. 기도 부탁합니다. 머리가 멍해가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내일은 파리로 떠날 것 같아요. 상상해봐요. 지금 내가 어떤 꼴로 있을지. 다행히 집식구들이 모두 친절해서 참 다행입니다. 걱정은 하지 말아요. 보름 후면 돌아갈 테니까. 지금 성당의 종소리가 들립니다. 이 소리가 제발 제게 힘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신호이길 바랍니다. 

-1990. 7.20 랭스에서 -Young 이곳에서 내 이름.


엽서 2

To OO.( 말 놓겠음)

잘 지내고 있지? 벌써 이곳 유럽에 온 지 2번째 일요일을 맞고 있어. London, Roma를 구경하고 이곳은 Zurich인데 여행 일정은 빽빽하고 볼 건 많고 날씨는 덥고 해서 참 피곤해. 하지만 불란서에서의 병은 나아졌고 컨디션은 아주 좋아. 공부는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네? 열심히 하는 줄 믿고 안심한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열심히 하라고 말해줘. 요사이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은 급격히 줄었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평안과 인내 속에 살고 있어. 오늘은 바티칸의 기도실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오후엔 카타콤베에서 우리 신앙 선배들의 아름다운 찬양과 기도 소리를 성령의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왔어. 목숨의 위협 가운에 주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그분을 생각해 보니 내 심령에 큰 감동이 오더라고. 언젠가 다른 친구들도 꼭 봤으면 해. 그럼 돌아갈 때까지 안녕히.

-아무래도 이 엽서보다 내가 먼저 도착할 것 같음

-1991 7.28

-OO


이렇게 말 많았던 녀석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 끝이 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빠르게 복귀했다. 


여기서 잠시...... 녀석의 유럽 여행을 생각하다 보니 수년 전 학생들과 했던 나의 유럽 여행 한 토막이 비교되어 생각난다. 지금은 모두 사회인이 한 명을 곧 결혼이다. 당시 청소년들이 넓은 세상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무 명도 넘는 시골 아이들을 모아 유럽 여행을 감행했었다. 중 3 남학생 세 명을 뽑아 조장으로 세우고 지도를 찾아 발로 뛰는 험난한 여행이었다. 그중 유난히 사교적이고 유머감각이 풍부했던 한 남학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녀석이 팀원 중 한 여학생과 손을 잡고 걷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저것들이 분명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텐데 해외에 나오더니 이제 막 가는 구만!’ 

나는 화를 참으며 혼쭐을 내줄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한편 다른 아이들에게는 녀석들이 언제부터 사귀게 된 것인지 탐문 조사를 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둘은 사귀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내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더욱더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그 녀석과 나란히 도버 해협을 건널 수 있는 온전한 세 시간이 주어 졌을 때 내가 운을 떼었다. 

“야, 너 OOO랑 사귀냐?”

녀석이 정색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아니요? 저 여자 친구 있어요, 선생님.”
 “그런데 왜 너희들 손잡고 걸었냐?”

“아 그거요? 그냥요. OOO가 아프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잘했다는 거냐, 지금?”

녀석은 내가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왜요? 친군데 손잡아 주면 안 돼요?”

“갸가 아파서 쓰러져 못 일어나데?”

“에이. 그 정도는 아니죠.”

“그럼 우리가 암벽 등반 했냐?”

“아니죠.”

“근데 왜 쓸데없이 손을 잡고 그랬냐? 네 여자도 아닌데?”

“전 별로 잘못한 거 같지 않은데요? OOO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어요.”

“인마, 넌 여자 친구 있다며?”

“그 애도 별 상관 안 할걸요? OOO는 그냥 친구잖아요.”

녀석은 좀처럼 항복하지 않았다. 죄인이 죄를 깨닫지 못할 때 최후의 방법은 지랑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었다. 

“흥. 친구라. 그럼 그 여자애도 지금 우리 동네에 어디선가 아무 이유 없이 반 친구 남자애가 손잡아줘도 넌 아무렇지도 않겠네? 아니, 그 아이도 머리가 조금 아프다고 가정해 볼까?”

순간 녀석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녀석은 한 동안 말도 못 했다. 

“그건...... 안 될 거 같아요.”

‘옳거니!’

녀석이 걸려들었다. 나는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녀석에게 쏟아부었다. 

“왜? 너도 지질한 남녀 차별주의자냐?”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그 여자애가 딱 너 같이만 지금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지 왜!”

녀석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 안 돼요. 싫어요. 미치겠어요. 그 애가 자기 동생하고 그런다고 해도 싫은데요?”

“이 속이 시커먼 놈을 좀 보게. 너는 친구니까 된다며 어째 그 여자애는 안 된다는 거야?”

“아-. 몰라요. 생각만 했는데도 그냥 막 기분이 나쁘네요.”

“니들이 사귄다고 해 봐야 얼마 못 가는 별 심각한 거 아니란 거 아는데 그래도 기왕 ‘여자친구’라는 타이틀 달고 사귈 거면 예의라는 게 있어 봐, 이 녀석아. 아님 그냥 친구라고 하고 분수를 지키던지!”

녀석은 한 동안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는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 감상문에 썼다. 

“선생님, 여행에서 많은 것을 느꼈지만 그날 선생님과 했던 대화에서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배운 것과 실천은 또 별개의 것이겠지만, 성경의 가치관을 가지지 않는 녀석에게 무리한 기대를 하진 않지만 녀석이 제발 꼭 그걸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다. 내가 가르친 모든 것을 홀랑 까먹더라도 말이다. 


내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줬던 그 녀석. 이젠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가졌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언제나 그 기본 원리를 깨뜨리지는 않았을 거란 믿음이 있다. 학교에서 조국이 그리운 마음에 인터넷을 뒤적이다 어떤 상담 코너에서 한 십 대의 사연을 접하고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사연인즉슨 자신이 요즘 만나는 오빠와 잠자리까지 가지고 있어 임신이 걱정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이 여학생이 더욱 딱한 것은 그 오빠가 다른 여자와도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몸을 서로 나눈 마당에도 남자든 여자든 자기 몸을 나눈 상대에 대해 배타성을 전혀 주장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세상이 이미 된 것 같다. 그러면 속 좁고 촌스러운 신파로 낙인찍힌다. 그들이 수 만원을 써가며 선물을 주고받고 커플링을 하고 커플 패션으로 치장을 하고 심지어 서로의 몸을 나눌지라도 그것은 오히려 사그라지는 fidelity에 대한 역설적인 동경 이상이 되지 못함을 본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요즘 문어발까지 동원하며 양다리를 운운하는 당당한 십 대 커플은 내가 녀석에게 오롯이 받았던 그 순수를 알지 못한다. 비행기를 타고 먼 타국에 가더라도 조금도 요동 않는 믿음을 주는 한 줄 글과 말 한마디가 있다는 걸 요즘 학생들이 알 수만 있다면……자신들이 순결한 사랑을 주고 또 요구할 권리가 있는 귀한 존재들임을 깨닫게 되기만 한다면……그것은 이 세대의 학생들을 보면 터져 나오는 내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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