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즉여, 여즉오(吾則汝 汝則吾) 2
1. <오즉여, 여즉오(吾則汝 汝則吾) 2>
내가 처음으로 이 말을 드라마 ‘황진이’에서 접했을 때 나는 무턱대고 황진이와 그 어린 도령의 광팬이 되었다. ‘나는 너고 너는 곧 나니.’ 세상에 이 말을 아는 이가 또 있구나 싶었다. 고2 즈음엔 녀석과 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되어 점점 말수는 줄고 침묵의 시간이 늘어났다. 그냥 둘이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아무 데고 가방 놓고 앉아서 하늘이며 노을이며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가끔씩 열띤 토론도 있었으나 그것도 다른 아이들을 끼워 넣을 때나 그랬다. 말이 필요 없었다.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갑자기 녀석이 방향을 튼다.
“......”
“어디 가는지 안 물어?”
“아이스크림?”
“와-소름 돋아. 요즘 너 독심술 생겼나 봐. 우리 정말 이젠 무섭지 않냐?”
“그러게......”
“이리로 가면 다른 볼 일 도 많은데 어떻게 알았어?”
“그냥 그럴 거 같아서.”
“옛날엔 수다 떨려고 너 만났는데 지금은 쉬려고 만난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지?”
“응.”
“우린 어떻게 이렇게 편할 수가 있지?”
“친구니까.”
‘(싱긋)’
‘(싱긋)’
‘오즉여 여즉오’
내가 곧 너고 네가 곧 나니......
이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 아니, 경험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그런 사람들을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말했듯 우리는 언제부턴가 서로의 존재를 헷갈리며 살았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말로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녀석에겐 내가 하나 더 있는 듯도 했고 나에겐 녀석이 하나 더 있는 듯도 했고 쳐다보면 나는 아닌데 나였다. 녀석과 함께 걸으면 나 자신과 함께 걷는 것 같은데 쳐다보면 내가 아닌 녀석이 걷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고2 때가 아니었을까 한다-우리는 그 일치감이 극도에 달한 경험을 했다. 독서실이 끝나고 나오니 녀석이 먼저 나와 앉아 있길래 나도 옆에 앉았다. 그렇게 한 한 시간 쯤 수다를 떨다가 느닷없이 그 찰나지만 길었던, 길지만 찰나로 느껴진 그 잊지 못할 순간이 우리에게 왔다. 이젠 거의 잊혀서 더욱 묘사가 힘들다. 하지만 그건 두 존재가 완전한 일치를 느끼는 것이었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저가 그 느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내가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을 저가 알고 그것을 또 내가 아는, 반대로 내가 그 느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저가 알고 저가 느낀다는 것을 내가 알고 그것을 또 저가 아는 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순간이 녀석과 나 사이에 있었다. 별 말을 할 수 없었다. 잠시 그대로 멍하니 있었다. 둘 다 멍청해져서 횡설수설하다가 몇 마디 나누고 헤어졌다. 그 뒤로 이상하게 우리는 그날의 그 느낌을 서로에게도 말하거나 물어보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너도 느꼈는지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그 느낌을 그렇게 두었다. 그 느낌에 대해 오랜동안, 아니, 헤어질 때까지 더 말하지 않았다. 그건 우리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차고 무거운 그 어떤 것이었다.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데 울 수도 없을 만큼 벅찬 그 느낌. 영혼의 완전한 일치. 그랬다. 지금까지를 살며 그만큼 짧고도 강한 경험은 없었다. 이성 간의 떨림과 육체로 하나 됨을 경험한 바 없으나 아마 아무리 몸을 나누어도 그 느낌만큼 상대와 존재 자체의 일치를 맛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아니, 오히려 육체가 먼저 개입되었더라면 우리는 그 느낌을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실로 신의 깨끗한 선물이라고 할 밖에...... 실제로 내가 지금까지 만난 어떤 부부도 이 느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녀석을 통해 손 끝 하나 대지 않고도 두 존재가 하나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체험했다. 아니, 손 끝 하나 대지 않았기에 더욱 강렬했다. 그리고 이 느낌은 내가 훗날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그만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신께서 원래 계획하셨던 세상이라면! 아! 세상은 더없이 벅찬 환희 그 자체였으리라! 경이로움과 신비로움 그 자체였으리라! 이 하나 됨의 기쁨을 모르기에 사람들은 기쁨 없이 성경의 신앙을 지루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오즉여 여즉오.
나는 평생 이 경험에 매료되어 살아간다. 아마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관계의 극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