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프렉탈
거리를 걷는다.
햇살이 눈부시다. 강아지를 앞세워 산책을 하는 아줌마가 눈에 들어 온다. 하얀 푸들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품종이다. 그에게도 모두가 키우고 싶어하는 품종이었던 호시절이 있었겠지만, 내 눈에는 지금이 호시절이다.
냉면집을 지난다. 사람이 많이 몰려 있다. 문 밖, 편의점 앞에 앉아서 서서, 연신 부채질을 해대며, 냉(冷)면을 먹기위해 열(熱)기를 버틴다. 실로 대단한 장면이다! 저 집이 맛집인가 보다.
냉면집을 지나자, 공원 입구가 보인다. 수목이 우거진 6월의 숲공원. 숲공원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근사한가? 나는 여기를 천정이 없어도 공간이라 말하고 싶다. 공간은 그런 곳이다. 어떤 인식이 투영된 특정한 범위. 딱 스팟(spot)이라 말할 수는 없는 그런, 점점점의 경계가 엉성한.
공원에 들어서니, 바람이 시원하다. 이런 해가 쨍쨍한 날씨에도, 바람이 시원한 것은 독특하다. 해와 바람이 따로 노는 이런 날씨를 사랑한다. 6월의 숲공원은 아직 한여름이 아닌 것이다. (여름이 일러진 2025년의 날씨를 체감해 보시라!)
구비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귀여운 작은 길들을 지나며, 각종 생명을 만난다. 푸릇푸릇하며 초록초록하고 넙대대한 아이들, 길쭉하고 찔릴 것처럼 솟구친 아이들, 적당히 두꺼우면서 갈색, 숯검댕 색, 고동색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족히 50년은 너끈히 그 자리에서 살아왔을 것 같은 어떤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와, 그 옆에서 이제 막 연두색의 반짝이는 어린 잎을 틔우는 작은 나무를 보며 미소 짓는다.
향기도 실로 대단하다. 아카시아향이라 뭉뚱그려 기억된 어린시절의 내음. 그것은 각종 꽃들의 내음이 뒤섞인 것으로, 눈이 나빠 정확히 보이지 않는 대충의 풍경 속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은은함이 줄 수 있는 대단한 존재감. 인공의 향에서는 - 아니, 그런 향이라는 선입견 속에서는 - 피어날 수 없었던, 강력한 메시지!
'아!'
감탄을 하고 비탈을 내리 걸으니, 혼자만이 사색되는 좁은 길이 보인다. 그 길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정확히 사람이 없다. 사람을 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롭게 바람에 흔들린다. 꽃내음은 그대로, 사람만 없다. 숲 속의 좁은 길은 사실은 좁은 길이 아니지 않은가. 사람이 다닐만한 길만이 좁다. 양 옆으로 펼쳐진 풀과 나무들, 내음들이 온 사방에 펼쳐져 있다.
이제는 우측 나무 사이로 슬그머니 나타난 교회 건물을 지나, 사람이 두 세 명쯤은 보이는 트이고 해가 명백한 길을 걷는다.
그러다 그네에 앉았다. 다리가 풀리고, 마음이 나긋하다. 지나는 이들을 구경한다. 꼬마가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점핑하듯, 걷는 듯 뛰어다닌다. 스프링같은 작은 아이의 꺄르르 터진 웃음이 온 세상을 환히 비춘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천국(天國)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온다. 화장실이 가고싶어졌고 목도 말라졌다. '내가 이리도 멀리 나왔던가' 생각하던 그때 갑자기, 쌩하고 뒤에서부터 지나가는 차에 화들짝 놀라서, 손을 심장이 갖다댄다. 그래도 그도 남겨두자. 오늘 구한 세상에 당신도 포함됐다. 괜히 째째하게 집어내어 빼버리는 짓은 이제 안 할 것이다. 당신도 내 세상을 이루는 프렉탈(fractal) 인 것을!
내 인식이 닿는 모든 면면에 나는 오늘 하루치의 구원을 선물한다. 내가 죽으면, 내 인식은 꺼지는 것이고, 내 세상은 망하는 것이요, 그러면 적어도 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두는, 그 생명력을 잃는 것을.
그러니, 오늘도 나는 이 세상을 구했다. 아직은 인류의 종말 따위는 오지 않은 것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닌가! 한 우주를 구원하는 일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