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힘이 있어요
이따금 김밥을 싼다.
계란을 푼다. 소금을 한 꼬집 넣고서. 때로는 소금을 빼기도 한다. 넓은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물을 붓는다. 도톰한 계란이 약한 불에서 천천히 익는다.
맛살을 찢는다. 찢어서 계란을 하고 남은 기름에 그대로 지진다. 살짜쿵 촉촉하게. 불을 끄고 건진다.
소시지를 자른다. 엄청나게 큰 밀가루 소시지.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그리워, 햄 대신 소시지를 넣는다. 이 맛이 제일 좋은 걸. 기름을 좀 더 두르고, 소시지를 익힌다. 적당히 익으면, 불을 끄고 꺼낸다.
당근! 당근이 중요하다. 없으면 없는대로겠지만, 당근을 넣은 김밥이 맛도 영양도 더 땡긴다. 당근을 채강판에 간다. 풍성하게 쌓인다. 기름을 두른다. 당근을 넣는다. 반 정도 읽힌다. 색이 참 예쁘다.
그리고서, 단무지를 꺼내 둔다. 그리고 김밥용 두툼한 검은 김도. 이제 밥을 비벼야한다. 밥은 너무 짜도, 너무 싱거워도 안 된다. 적당한 간은 음식의 생명인 것을! 오늘 나는 그 간의 진도를 너무 빼버렸다. 이런 이런! (그래서 급한대로 햇반을 사다 섞는다. 밥통의 밥은 다 비벼버린 것이다. 욕심이 이렇다!) 참기름과 들기름, 통통한 깨를 쏟아붓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도마를 닦아내고, 아무것도 없는 그 위에, 김을 정갈하게 한 장 깔고.
장갑을 낀 손으로 밥을 한 웅큼 크게 떼어다가 김 위에 놓는다. 그리고 손가락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평평해지는 것이다.
그 위에 순서도 상관없이, 재료들을 하나씩 옮긴다. 계란은 좀 두툼하게, 소시지도 넉넉히, 맛살도 맛나지. 단무지는 적당히, 당근은 최대한 쌓아서!
그리고 김발도 없이, 손으로 김밥을 빵빵하게 만다. 최대한 뚱뚱한 김밥을 만들겠으며, 터뜨리지도 않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어릴 적 친구와 놀다가 한밤에 출출해져 김밥집에 들르면, 아주머니께 외치던 한 마디,
‘뚱뚱하게 싸 주세요.’
아주머니는 귀엽다는 듯 웃으시며, 정말로 김밥이 터지기 직전까지 뚱뚱하게 말아주셨다. 단순히 두껍게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 빵빵한 밀도감에 대한 표현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캐치하신 것처럼.
이제는 내가 그 김밥을 싼다.
도시락 통에 소복이 담겨진 가지런하고 예쁘디 예쁜 김밥을 볼 때면, 엄마가 싸주시던 소풍날 새벽의 김밥이, 뒷 꽁다리를 먹겠다고 새벽같이 일어나던 설렘이, 5살 적 유치원 언니들의 소풍에 일없이 끼게 됐다가 얻어먹은 맛있는 3알의 김밥이 되살아난다.
도시락 통에 가지런히 담아두고, 소풍을 나갈지, 한 알씩 빼먹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