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어의 온도를 측정해 줄래?
“You can’t hurt me without my permission.” 독일을 대표하는 유명한 철학 저서의 제목이다. 이 책의 제목이 한글로 번역되면,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로 변한다. “without my permission”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아도, 그 의미를 다 담고 있다. 비슷한 예로 영화 선전을 본 적이 있는데, 배우는 분명 “You will be found.”라고 말했지만, 자막은 “우리가 당신을 발견할게요.”라고 되어 있었다. 딱딱한 수동 문장에 따뜻함을 한 스푼 넣은 능동 문장이 되었다. 많은 문학 작품들을 읽다 보면 각 나라의 언어마다 표현의 한계점과 내용을 전달하는 특징이 다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그중 특히 우리 한글은, 모든 언어를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그 따뜻함을 연구하는 데에 흥미를 붙이다,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김이나 작사가님께서 집필하신 책으로, 유사한 듯 다른 수많은 단어의 뜻을 규정하고 한글이 얼마나 속뜻이 깊고 예쁜지 알려준다. 추억과 기억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사랑한다’와 ‘좋아한다’는 왜 어감이 다른 것일까? ‘선을 긋는다’는 말에 우리는 왜 상처받는 것일까? 의아하다는 표현은 괜찮은데,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왜 부정적으로 들리는 것일까? 소중하다는 것과 귀중하다는 어째서 다른 것일까? 이는 우리가 마주치는 세상에서 한 번쯤 떠올렸을 물음표들이다. 글을 쓰는 것이 꿈인 나에게 있어서 앞과 비슷한 의문을 많이 가졌었고, 따라서 그 물음표들을 느낌표들로 바꾸어 준 이 책은 아직 내 마음속에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새겨져 있다.
기억은 딱딱하고 정적인 느낌이지만 추억은 유연하고 동적인 느낌을 받는다. 이 책에서 ‘기억’은 잘려서 나온 디지털 사진이고, ‘추억’은 인화되어 액자에 넣어진 사진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억은 수많은 기록 중 하나로 쉽게 잊히지만, 추억은 색이 변질되지 않기 위해 매번 들여다보고 그것이 갖는 의미에 웃음을 지어보기도 해서 기억과 같이 똑같은 기록이더라도 쉽게 잊히지 않고 동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다. ‘기록’이란 똑같은 종류에 ‘사랑과 의미’가 더해져 색이 칠해진다. 기억과 추억은 사랑에 기반하여 기록의 종류를 나눈 것이다. 유사한 표현이지만 그 안의 깊은 파이를 말하는 한글의 단어들, 알아갈수록 새로웠다.
‘좋아한다’는 일시적이지만 ‘사랑한다’는 연속적인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자를 더 원할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이를 비판한다. 사랑은 붕 뜨게 하다가 한없이 추락하게 하는 것이고 좋아함은 온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리게 한다고 한다. 둘 다 좋은 표현이지만, 순위를 함부로 매기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 구절을 읽고 깊이 반성하였다. 우리는 흔히 희귀한 네 잎클로버를 찾기 위해 세 잎클로버를 무시한다. 그러니까 행운을 위해 옆에 수많은 행복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랑과 좋아함도 비슷한 경우이다. ‘사랑’을 위해 주변에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좋아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밟고 있다. 분명 둘의 어감 차이는 존재하고 사랑이 좋아함보다는 무거운 느낌이 들지만, 두 감정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슷한 감정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섬세하고 깊은 우리말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들은 말 중에서 가장 상처로 남아 있는 말은 “너한테 선 긋고 싶어.”일까나. 왜 너와 나 사이 영역들이 서로 맞대면 안 되는지, 문제점을 계속 나에게 찾던 의문으로 남은 밤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 상처는 흉터까지 사라졌다. 우리는 모두 형태가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너무 투명해서 남들은 내 모서리를 보지 못하고 나 또한 남들의 뾰족한 곳을 보지 못하여 서로가 친하다고, 좋다고 뛰어들다가 보이지 않는 모서리에 찔려서 서로 아파한다. 이 책에서는 선을 긋는 행위가 “나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야.”라고 보여주는 행위라고 한다.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형태의 선을 그어 남에게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뜻이다. 누가 싫어서, 미워서가 아니라 서로를 맞대기 전에, 안 보이는 모서리에 찔리기 전에, 서로 아파하기 전에 온전한 내 형태를 드러내는 것. 이것이 ‘선 긋는다’의 본래 뜻임을 알게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수학적인 용어의 뜻을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그건 무리수야.”라는 말을 많이 한다. 수학 시간에 무리수는 ‘분수로 나타내지 못하는 수’ 임을 배웠고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무리수’도 수학적인 의미에서 나왔는지 궁금해했고, 그 답을 찾았다. 우리는 ‘무리수’와 비슷하게 ‘그건 네 분수에 맞지 않아.’라고도 많이 사용한다. 분수에 맞지 않으니까, 무리수라고 하는 것이었다.
‘선을 긋는다’, ‘무리수’, ‘분수에 맞지 않다’ 등 자랑스러운 우리 언어는 수학적인 정형적인 언어와 표현들도 따뜻하고 쉽게 연결 짓는다. 언어가 언어의 학문 분야에 그치지 않고 수학 등 광범위한 분야의 학문까지 녹여내고 있었다. 모든 학문 분야를 유연하게 유기적으로 아우르는 한글. 어찌 어여쁘지 않을 수 있는가?
이해가 안 간다는 말과 의아하다는 단어는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전자는 부정적인 느낌이고 의아하다는 긍정적인 측에 속하는 것 같다.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은 잦은 빈도로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라고 책에선 규정한다. 그와 반대로 ‘의아하다’는 생각지 못한 말을 들었다, 신기하다 따위의 단어들과 연결 지을 수 있다. 흔히 ‘이해가 안 간다’라는 말을 ‘의아하다’라는 말과 혼동하여 쉽게 사용하고 쉽게 자신도 모르게 남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다. 의미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표현이 갖는 방향과 듣는 사람에게 닿는 속도가 다르다. 이렇게 단어의 아주 깊은 면까지 사람의 감정이 오간다. 하나의 마음과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많아서 쉽게 헷갈리고 혼동할 수 있지만 그만큼 우리나라의 어휘력이 깊고 문학적 소양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높다는 말도 성립된다.
이 책에선 흔한 감정의 표현 단어들을 섬세하게 풀어내어 같은 의미이지만 다른 느낌이 드는 말들을 많이 제시한다. 작가는 ‘사랑한다.’ 말 대신 ‘서로를 실망하게 하는데 두려움이 없길 바란다’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실망은 상대로 인해 생겨난 감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바란, 기대한, 또는 속단하고 추측한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즉 둘 이상의 사람이 서로에게 한 번씩은 실망하고 실망하게 한다는 뜻이다. 상대의 기대치를 낮출 수도 있지만 이는 상대에 대한 내 마음에 자물쇠를 거는 행위이다. 따라서 작가는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 서로를 실망하게 하는 데 두려움이 없길 바란다고 말한다고 한다. 상대에 대한 내 마음에 자물쇠 걸지 않고, 나에 대한 상대의 마음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내가 나임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길 바란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사랑한다’라는 말은 추상적이다. 앞의 내용처럼 추상적인 말은 직관적인 내 표현으로 상대에게 해석해 주는 것은 어떨까? 이 단어에 대한 내 온도를 알려줌으로써 보다 더 정확한 감정을 상대가 느낄 수 있게 한다. 보편적이고 많이 알려진 단어를 나만의 언어로 재구성하여 불투명한 단어에 온도와 색을 나타내는 것. 우리 언어가 아니라면 할 수 없을 것이다.
‘귀중하지는 않아도 소중할 수는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얼추 느낌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정확하게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머리가 복잡했었다. 작가는 ‘소중하다’의 ‘소’는 한자로 ‘~하는바’, ‘~하는 것’ 등의 의존명사 역할을 하고 ‘중’은 한자로 무거움을 뜻한다고 한다. 글자가 뜻하는 것처럼 힘을 들여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방치되고 그래서 주고 과거형이다. 꽃을 모으는 반가움은 곧 시들 것을 알고 있어서, 청춘에 대한 예찬은 빨리 사라져 버림을 알아서라고 한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떠나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고도 책에선 말한다. 가족들이 소중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전하지 못했던 수많은 날. 이젠 조금 솔직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귀중은 소중함과는 다르게, 우리가 봐주고 의미를 덧붙여야 반짝거리는 것이다. 소중함처럼 힘을 써서 붙잡아둬야 하지만, 귀중은 마음에 더 초점을 둔다. 따라서 ‘귀중하지는 않아도 소중할 수 있다.’. ‘소중하진 않아도 귀중할 수 있다.’는 말들은 다 모순적인 것은 아니다. 유사한 말들이지만 하나하나 규정이 달라서 유기적으로 배치하지 않아도 모순되지 않는다. 우리말의 섬세함이 빛난다.
찬란하다, 반짝이다. 둘 다 빛이 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책에선 이 두 언어를 정확하게 구분한다. 찬란하다는 유리 조각들이 부딪혀 소리가 나는 공감각적인 것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라이브 포토이다. 발음할 때의 소리 [찰란]은 [찰]의 받침 ㄹ과 [란]의 자음 ㄹ이 파도 등선처럼 이어지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반면에 ‘반짝이다’는 ㄴ받침을 부드럽게 도움닫기 삼아 짝하고 내뱉는 발음은 무언가에 빛이 닿아서 튕겨 나오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말이 대단한 이유 중 하나가, 단어가 나타내는 현상의 모습들을 그대로 발음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소에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이는 ㄱ이 발음할 때의 발음기관 모습과 비슷하게 창작되었다는 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감정 혹은 발음이 탄생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면 단어의 속성이 더 와닿는다.
한 나라의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문학성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한글이 그렇다. 다양한 언어들로 추상적인 감정의 섬세한 부분까지 규정하기에, 한 현상을 묘사할 수 있는 말들이 다양하고, 그래서 문학성도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그만큼 단어가 나타내는 언어의 색이 다르고, 사람마다 느끼는 언어의 온도가 다르다. 똑같은 언어라도 온도가 달라 쉽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기주 작가님의 책 ‘언어의 온도’에서도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프랑스는 크루아상, 일본은 기모노, 미국은 카우보이, 한국은 ‘한글’이라고 한다.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인들이 알고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면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 다양한 단어들의 온도를 측정하지 못하여 서로가 서로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다면 아마 다양하고 뛰어난 우리말의 어휘력은 감소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사전을 만들어서 단어에 대한 그 사람의 온도를 정리해 보자. 다양한 온도와 색들로 보존되어 가는 한글, 우리가 그 우수성과 다양성을 지켜서 미래 세대에게 전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