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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순금 Jul 01. 2023

꿈 좇아 사는 거 아닙니다만

멋지지 않은 퇴직, 대단치 않은 유학

  십 년을 넘게 일한 교직을 그만두고 체코로 유학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내게 ‘용기 있다, 대단하다’는 말을 했다. 꿈을 좇아 사는 거 멋있다고도 했다. 수의사가 나의 오래된 꿈이었던 줄 아는 모양이다.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라고 했지만 적당히 친한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도 없고, 그래 이 참에 그냥 대단한 척이나 해야지 하고 말을 아꼈다.


  (어릴 때부터 수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공부를 덜 잘해서 어쩔 수 없이 사범대에 들어가, 십수 년 동안 수의사라는 꿈만 바라보면서 쥐꼬리 월급 이 악물고 착실하게 모아 비로소, 드디어, 수의대에 진학하는 꿈★을 이룬! 감동 스토리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꿈이고 나발이고 그냥 내 맘대로 살려고 그런 거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려고. 그리하여 교사를 그만두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첫째, 체력의 한계.

  교사의 과중한 업무는 알려진 것 이상이다. 하루에 세네 시간씩 목청껏 수업하고 돌아오면 교무실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공문 처리하고, 또 수업 들어가고, 급식 지도하고, 청소 지도하고. 한 학기 수십 번의 평가를 하고, 백 수십 명의 생기부를 쓰는 생활을 계속 하다간 3년 안에 관짝에 누울 것 같았다.

  게다가 귀찮은 병 하나를 얻어서 교사 생활 막판에는 병 휴직을 밥 먹듯이 했다. 그래도 교사는 휴직하면 급여 나오지 않냐고? 마지막 병휴직 때 한 달에 90 얼마를 수령했는데 그걸로는 병원비, 보험료도 모자랐다. 따라서 복직해서 과로사로 죽든지, 휴직해서 굶어 죽든지 둘 중 하나였다. 더 이상 쓸 병휴직 연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지병을 달고 살면서 평생 고생할 걸 아는 가족들은 병원과 의료보험 때문에라도 내가 한국에 있기를 권했다. 서울대, 의대, 서울대, 의대가 한 다리 건너 하나씩 있는 우리 외가에서는 내게,

  “외국 나가면 고생인데 차라리 한의대를 가보는 건 어때?”

  “…예? 한의대를… 가 본다…고요?”

외숙모, 저 공부 못해서 못 가요. 저도 ‘가 보고’ 싶었어요, 네….     


둘째, 장래희망 수의사 아니고 그냥 외노자.

  ‘내 맘속에 소중히 간직해온 작은 꿈’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이것도 꿈이라 해준다면, 내 오래된 꿈은 그럴듯한 외노자다.

  교사 하는 동안에도 기회만 있으면 뽈뽈 열심히 해외를 들락날락했다. 여행이 아니라 파견근무 비슷한 걸로 1, 2년씩 체류했다. 근무 환경, 처우 같은 건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베트남이든, 남아공이든 우즈벡이든 조건 가리지 않고 나다녔다.

  가족들은 ‘제발 좀 안전하고 좋은 나라 갈 수 없냐’고 잔소리를 했지만, 어떡해요. 안전하고 좋은 나라에서는 한국 교사에게 돈을 주지 않아요. 그런 나라는 돈을 써야 갈 수 있어요. 교사가 돈을 벌러 가려면 개도국 밖에 못 가요.

  소위 선진국들은 한국의 교육에 별-로 관심이 없다. 교육 관련 일자리는 자국민을 위한 것이지, 굳이 한국인을 데려와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교육사회학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교육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도구이다. 결국 쾌적하고 안전한 나라에서, 먹고 살 만한 직업을 가진 외노자가 되려면 교사라는 직업은 포기하는 게 나았다.


  그럼 이쯤에서 “알겠어. 교사는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치고, 외국도 나가고 싶었다 하자. 대체 왜 굳이 체코에서, 수의사를 하기로 했어? 동물 사랑이 유달리 대단한 것 같지도 않고, 영어를 좋아하는 것 같더니만 영어권 나라를 가는 것도 아니야. 소위 선진국이라 하는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도 아니고. 대체 왜 그런 결론이 난 거야?” 라고 묻는다면.     


첫째, “왜 체코?” - 나이가 많아서요.

  나도 다른 좋은 나라 다 찾아봤다. 내가 갈 수 있는 수의대를 찾아 5대양 6대주를 샅샅이 구글링했다. 그런데 웬만하면 나처럼 대학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은 안 받아주던걸. 가끔 나이 먹은 자도 받아주는 학교는 그 나라 언어를 해야만 했다(예: 독일, 핀란드, 네덜란드). 나는 나이도 많은데 영어 밖에 못해서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체코만이 별다른 조건 없이 자체 입학시험(화학, 생물)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했다. 오? 10년 동안 밥 먹고 과학만 가르쳤는데, 화학이랑 생물 시험만 본다니 너무 땡큐 아닌교? 당장 진행시켜.      


둘째, “왜 수의사?” - 직장에 강아지 데리고 다니고 싶어서요.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다. 체코 의대도 솔직히 말하면 합격할 자신은 있었는데(헷) 의사는 직장에 강아지 고양이 못 데리고 다니니까! 고민 없이 수의대로 결정했다. 미래의 우리 갱얼쥐, 고영희가 나이 먹고 무지개 다리를 건널까 말까 할 때, 그 불쌍한 애들을 어떻게 집에 두고 출근을 하나 영 자신이 없다. 애기들 데리고 다녀야 하거든요. 꼬옥 붙어 있을 거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됐다. 꿈? 그런 거창한 거 아니고 그저 체력 관리하기 좀 수월하면서도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은 벌고, 외국에서 일할 수 있으면서 미래의 갱얼쥐 고영희한테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삶을 살려고. 막상 나의 판단 미스로 인해 수의사가 되어서 되려 교사보다 더 과로하다가 죽으면? 팔자는 어쩔 수 없지, 갱얼쥐 고영희 옆에 묻어줘요. 운이 좋으면 한날 한시에 죽을지도 모르지요.


내가 죽으면 /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 밑둥이 샐지도 몰라

-모리야 센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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