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순금 Jul 04. 2023

여고생의 최대 고민

학생이랑 쿨거한 썰

* 내가 잊지 않으려고 써두는 거야. 왕크왕귀 너희와의 추억.


네 얼굴에 마리아나 해구 같은 수심이 드리웠던 그날. 소미 넌 여느 때처럼 맨 앞자리에 앉아서 집중하려고 했지만 오 분마다 한 번씩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뱉었고 도통 수업이 귀에 들어가는 것 같지 않았지.


소미   (깊은 한숨) 선생님.

 나    왜?

소미   택 떼면 환불 안 해주겠죠?

 나    음… 어렵지 않을까?

소미   으앙 완전 망했어요.

혜진   선생님, 얘가 주말에 탑텐에서 후리스를 샀는데 사이즈를 잘못 샀대요. 근데 택을 떼 버려서 환불도 못한대요. 아까부터 자꾸 호수 공원 가서 자살할 거래요.


 나    거기 호수공원 물 얕아서 못 죽어. 사이즈가 왜?

소미   너무 작아요.

혜진   오버핏으로 입고 싶은데 잘못 샀대요.

 나    그럼 아예 안 들어가?

혜진   그건 아니지만 큰 거 입고 싶었는데 돈 날렸대요.


 나    사이즈 봐봐.

소미   왜요?

 나    나한테 맞으면 내가 사게.

소미   네?

 나    한번 봐봐.


(소미 핸드폰으로 셋이 머리를 모으고 사이즈 확인)     


 나    이거 샘한테 맞을 것 같은데 나한테 팔아.

소미   엥, 진 짜 요?

 나    안 그래도 학교에서 입을 작업복 필요했어. 딱이네!

소미   헐… 샘 진심이세요?

 나    응. 샘 자살 예방 교육 열심히 들었어. 학생이 호수에 몸을 던질 거라는데 샘이 못할 게 뭐가 있겠니.

혜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미   (이미 생기가 도는 얼굴) 굳이 안 그러셔도 돼요.

 나    아니야, 나 이거 진짜 갖고 싶으니까 내일 가져와.

혜진   우와, 안소미 대박.


그렇게 당근이 성사되었다. 다음날 교무실.


소미혜진   (문 빼꼼 열고 쭈뼛쭈뼛) 선생님.

 나    어, 들어와 들어와.

소미   (수줍) 옷 가져왔어요.

 나    입어봐야겠다. (딱 맞음) 좋았어, 얼마면 돼!

소미   이거 만 구천 구백 원에 샀는데요….

혜진   야, 너 설마 선생님한테 정가 다 받을 생각?

소미   앗 선생님 그럼 만 삼천 원만..

 나    됐어, 됐어. 만 구천 구백 원 어디로 보내면 돼?

혜진   얘가 카뱅이 없어서 제 걸로 받기로 했어요. 카뱅 신혜진 333 블라블라 블라블라.

 나    돈 넣었다.

소미   우와아아아앙아앙ㅇ 선생님 진짜 감사합니다!

 나    나도 겨우내 학교에서 입을 옷 생겨서 좋아. 샘 행복해. 얼른 가, 곧 종 친다.

소미혜진   헤헷, 감사합니다 선생님!


훈훈한 당근으로 나는 작업복을 득템했고, ○○호수공원에 수장될 뻔했던 창창한 학생의 미래도 지켰다.      


소미야, 그렇게 얻은 그 후리스, 하도 입어서 이제 소매가 다 해졌어. 옷으로서 할 일은 다 한 것 같아.

어떻게 지내니? 푸릇푸릇한 이십 대 청춘을 예쁘게 지내고 있겠지?

혹여 앞으로 더 참담한 쇼핑 실패를 겪더라도 호수 공원 같은 건 생각도 말길. 이제 여대생이 된 너의 앞날에 항상 쇼핑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 옷 사고 택 함부로 떼지 말고.





+ 이제 어른 됐으니 자살 같은 말 가볍게 하면 안된다?

작가의 이전글 꿈 좇아 사는 거 아닙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