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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유정 Jun 05. 2022

[여행] 첫 번째 행선지,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의 시작

※17년도에 떠난 세계여행 스토리입니다.


 여행의 첫 장면을 어떻게 꾸며야 할까. 보통 영화가 시작되면 강렬한 인트로로 관객을 사로잡곤 하는데, 나도 그런 인트로 못지않게 왠지 이 길고 긴 여행의 첫 시작을 대단한 감상과 꾸며진 말들로 멋들어지게 표현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시작부터 우여곡절 많았던, 나의 우당탕탕 블라디보스토크.


나 다녀올게!


 2017년 4월 10일. 자식을 타지로 떠나보내는 부모님 걱정을 뒤로하고 긴장하지 않은 척 씩씩하게 인사했다. 비장한 각오와 달리 잔뜩 긴장한 얼굴. 막상 떠나려니 세계여행 진짜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맞나,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 없이 블라디보스토크행 편도 티켓만 쥐고 있다는 게 덜컥 겁이 났다.


 사실 떠나기 하루 전날까지도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잘 있던 배낭끈이 갑자기 끊어졌고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 남겨주고 싶어 챙겨둔 포토 프린터기도 하루 전날 망가졌다. 인화지도 잘못 구매해서 3만 원을 날렸다.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한껏 예민해져 있던 탓에 계획에 없던 일들이 꽤나 신경 쓰였다. 액땜했다 생각하고 앞으로의 여행은 순탄하길 바랬다. 그렇게 혼자 마음을 추스르며 나는 한국을 떠났다.

인천공항. 내가 배낭을 메고 있는 건지, 배낭에 내가 매달려 있는 건지...

 첫 행선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다.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 탓에 주변 지인들도 걱정이 많았다. 왜 하필 러시아냐- 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싶어서!

게다가 비행기표도 싸다!

*인천-블라디보스토크행 오로라항공 편도 16만 원 (17년 4월 기준)


러시아 여행할 겸, 횡단열차에 도전해볼 겸, 경비도 아낄 겸. 다이렉트로 유럽에 가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 후회 없을 만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여행을 했다.

하늘 위를 나는 기분은 늘 짜릿하다

 약 2시간 만에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공항에서 시내까지 봉고차 같은 107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본격적으로 시내에 들어서자 동양인이라곤 나 혼자 뿐. 그리고 주변엔 잔뜩 화가 난 듯 굳은 표정의 러시아인들이 있었다.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키 153센티의 작은 동양인 여자애가 몸의 반 만한 크-은 배낭을 메고 있으니 눈에 안 띌래야 안 띌 수가 없었다. 혹여나 벌써 소매치기의 타겟이 되진 않았을까 걱정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숙소를 향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 순간, 누군가 내 가방을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한 여성이 러시아어로 뭐라 뭐라 말을 하는데 러시아어를 알 턱이 있나!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ㅇㅅㅇ??"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니 환하게 웃음 짓고는 내 가방과 나를 번갈아 가며 가리키며 제스처를 취했다.


"넌 덩치는 요만한데 가방은 이!!! 따!!! 만!!! 해!!!"

(언어의 장벽 따위... 바디랭귀지는 만국 공통어다)


그제야 이해한 나는,

"아! 쓰바씨바!!!(고마워요)"를 크게 외쳤다.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고맙다- 라니...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저 말이 칭찬은 아닌데 그냥 기분이 좋았다. 무서운 사람들인 줄만 알았는데 나에게 웃음을 지어 보여줘서 그런가! 거짓말처럼 긴장이 싸--아악 풀리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앞만 보고 걷던 내가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온통 회색빛이었던 주변이 점점 색으로 물들어 갔다.

'블라디보스토크 좋네!'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 12킬로 배낭을 들고 신나게 달렸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첫 번째 밤

 분명 한국에서 아침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오후 5시가 훌쩍 넘어 밤이 되었다. 일단 숙소로 가 짐을 풀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그제야 몸도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Matras, Matros, and Albatros Hostel (현재 폐업) 기숙사형 객실 내 침대


Porto Franco라는 음식점인데 종류가 엄청 다양했다. 러시아 전통음식인 샤슬릭과 맥주 한 잔을 시켰다. 샤슬릭은 “꼬치구이”란 뜻으로 고기를 양념에 재 놓은 후 숯불에 구운 러시아인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요리 중 하나다. 돼지고기로 선택! 돼지고기 밑에 구운 감자가 깔렸다. 위에 생양파는 없어선 안될 아이다. 어디선가 먹었을 법한 맛인데 가성비 최고다. 500 루블 약 만 원의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 음식이라니.

  끼다- 고단한 나를 위해 맥주도   치얼스-

'Porto Franco'의 샤슬릭(Shashlik)

여행 1일 차, 고단했던 하루가 저물어 간다. 되돌아보면 앞으로 어떤 여행이 펼쳐질지 이땐 상상도 못 했지. 아무것도 몰랐던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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