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17년도에 떠난 세계여행 스토리입니다.
여행의 첫 장면을 어떻게 꾸며야 할까. 보통 영화가 시작되면 강렬한 인트로로 관객을 사로잡곤 하는데, 나도 그런 인트로 못지않게 왠지 이 길고 긴 여행의 첫 시작을 대단한 감상과 꾸며진 말들로 멋들어지게 표현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시작부터 우여곡절 많았던, 나의 우당탕탕 블라디보스토크.
나 다녀올게!
2017년 4월 10일. 자식을 타지로 떠나보내는 부모님 걱정을 뒤로하고 긴장하지 않은 척 씩씩하게 인사했다. 비장한 각오와 달리 잔뜩 긴장한 얼굴. 막상 떠나려니 세계여행 진짜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맞나,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 없이 블라디보스토크행 편도 티켓만 쥐고 있다는 게 덜컥 겁이 났다.
사실 떠나기 하루 전날까지도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잘 있던 배낭끈이 갑자기 끊어졌고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 남겨주고 싶어 챙겨둔 포토 프린터기도 하루 전날 망가졌다. 인화지도 잘못 구매해서 3만 원을 날렸다.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한껏 예민해져 있던 탓에 계획에 없던 일들이 꽤나 신경 쓰였다. 액땜했다 생각하고 앞으로의 여행은 순탄하길 바랬다. 그렇게 혼자 마음을 추스르며 나는 한국을 떠났다.
첫 행선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다.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 탓에 주변 지인들도 걱정이 많았다. 왜 하필 러시아냐- 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싶어서!
게다가 비행기표도 싸다!
*인천-블라디보스토크행 오로라항공 편도 16만 원 (17년 4월 기준)
러시아 여행할 겸, 횡단열차에 도전해볼 겸, 경비도 아낄 겸. 다이렉트로 유럽에 가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 후회 없을 만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여행을 했다.
약 2시간 만에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공항에서 시내까지 봉고차 같은 107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본격적으로 시내에 들어서자 동양인이라곤 나 혼자 뿐. 그리고 주변엔 잔뜩 화가 난 듯 굳은 표정의 러시아인들이 있었다.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키 153센티의 작은 동양인 여자애가 몸의 반 만한 크-은 배낭을 메고 있으니 눈에 안 띌래야 안 띌 수가 없었다. 혹여나 벌써 소매치기의 타겟이 되진 않았을까 걱정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숙소를 향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 순간, 누군가 내 가방을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한 여성이 러시아어로 뭐라 뭐라 말을 하는데 러시아어를 알 턱이 있나!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ㅇㅅㅇ??"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니 환하게 웃음 짓고는 내 가방과 나를 번갈아 가며 가리키며 제스처를 취했다.
"넌 덩치는 요만한데 가방은 이!!! 따!!! 만!!! 해!!!"
(언어의 장벽 따위... 바디랭귀지는 만국 공통어다)
그제야 이해한 나는,
"아! 쓰바씨바!!!(고마워요)"를 크게 외쳤다.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고맙다- 라니...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저 말이 칭찬은 아닌데 그냥 기분이 좋았다. 무서운 사람들인 줄만 알았는데 나에게 웃음을 지어 보여줘서 그런가! 거짓말처럼 긴장이 싸--아악 풀리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앞만 보고 걷던 내가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온통 회색빛이었던 주변이 점점 색으로 물들어 갔다.
'블라디보스토크 좋네!'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 12킬로 배낭을 들고 신나게 달렸다.
분명 한국에서 아침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오후 5시가 훌쩍 넘어 밤이 되었다. 일단 숙소로 가 짐을 풀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그제야 몸도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Porto Franco라는 음식점인데 종류가 엄청 다양했다. 러시아 전통음식인 샤슬릭과 맥주 한 잔을 시켰다. 샤슬릭은 “꼬치구이”란 뜻으로 고기를 양념에 재 놓은 후 숯불에 구운 러시아인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요리 중 하나다. 돼지고기로 선택! 돼지고기 밑에 구운 감자가 깔렸다. 위에 생양파는 없어선 안될 아이다. 어디선가 먹었을 법한 맛인데 가성비 최고다. 500 루블 약 만 원의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 음식이라니.
아 첫 끼다- 고단한 나를 위해 맥주도 한 잔 치얼스-
여행 1일 차, 고단했던 하루가 저물어 간다. 되돌아보면 앞으로 어떤 여행이 펼쳐질지 이땐 상상도 못 했지. 아무것도 몰랐던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2017.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