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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진 Feb 17. 2022

장기 아르바이트의 조건 : 좋은 동료들

에피소드 오픈 04

비단 아르바이트 뿐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 어느 집단에 있든 장기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끈기? 높은 페이? 집과의 거리? 다 맞지만 이들은 옵션일 뿐 절대 기본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기본 요소는? 맞다. 바로 제목에도 있는 좋은 동료.


내가 처음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는 패기로 똘똘 뭉쳤던 20살이었다. 그냥 20살은 중요하지 않다. 바로 '잘못된 정의구현 의식을 패기라고 생각한' 20살이 중요하다...

그렇다. 나는 당시에 손님의 무례함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몰랐고 사장과 아르바이트의 사고 차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나의 흑역사를 밝히는 것 같아서 민망하나,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는 내 스스로에게 도취했었다. ....어렸으니까 봐주자.


그런 내게 처음에 만났던 같이 일하는 언니들은 한 두 살 밖에 나이가 많지 않았는데도 참 어른스러웠다.


빵집의 포스기는 정말정말 복잡하다. 단팥빵이나 슈크림 등 클래식 한 아이들과 소시지가 메인인 빵들의 페이지가 분리되어 있고, 이들도 생산지가 본사인지 가게인지에 따라 나뉜다. 그리고 케이크, 음료, 시즌 빵 등등 페이지가 정말 상세하게 나뉘어져 있다.

사실 페이지가 많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아뿔싸! 빵은 바코드가 찍힌 채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르바이트생은 각 빵이 어느 페이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아야 빠른 계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처음 일하는 내가 그게 가능할 리가. 교육을 받았는데도 익숙하지 않아 포스기를 칠 때는 버벅거렸고, 줄 지어진 계산줄에 괜히 삐질삐질 식은땀만 났다. 설상가상 손님의 한숨이 들렸고 나는 울컥했다. 그때 옆에 있던 언니가 빵 지금 나온 거 놓고 식은 빵 포장할 수 있냐며 자연스럽게 바통터치 했다.

나를 제외한 둘이서 그 많은 손님들의 빵을 포장하고 계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데, 걍 나는 제빵 기사님이 나온 빵을 놓는 곳이 가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까~ 라는 생각에 냉큼 계산대 주위를 벗어났다.


그리고 비교적 한산해 질 때,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 갑자기 내게 빵을 사는 시늉을 했다.


"저 지금 단팥빵이랑 뽀드득이랑 음료 한 잔 하고요~ 아! 이것도 하나 주세요"


"봉투까지 총 n개요~"


옆의 다른 언니도 실제로 계산하듯 몇 개가 포스기에 찍혀야 되는지 알려줬고, 그렇게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포스기에 점점 익숙해졌다.


"표정이 너무 안 좋길래. 원래 그럴 때는 단순 노가다를 하면서 머리를 비워야 돼."


아까 둘이 그 긴 줄을 상대할 때 괜찮았냐고 묻자 한 언니가 대답했다. 본인들도 처음에 그랬다며, 원래 이런 건 하면서 늘어야 되는데 지금 못하는 건 당연하다며 말해줬다.


이때 일 제외하고도 언니들이 도와줬던 일이 많았다. 갑자기 아파서 세 명의 일을 둘이 했을 때도 괜찮냐고 먼저 안부 연락하고,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면 배라도 채워야 한다며 빵을 사서 나눠 먹기도 했다. 사석에서 만났을 때 언니니까 한 번 술 사주고 싶었다고 멋지게 결제까지 했던 언니였다.


내가 볼 때 무례한 경우에도 절대 비굴하지 않되 적당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유하게 넘어가는 모습들을 보며 태도를 배웠다. 난감하거나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본인들이 해결한 뒤에 앞으론 어떻게 하면 된다고 차분하게 설명해줬다. 만약 언니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시대의 최고의 싸움꾼이 되지 않았을까...?


일을 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 단골 손님의 특징들, 일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등을 말하며 우리들은 친해졌고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도 빵집에 가는 게 두렵진 않아졌다. 어쨋든 나는 두 명의 든든한 아군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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