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부터 하루가 0시부터 시작됐다. 매일 그런 게 아니라 월수금에 한해서다. 그런데 다음 주가 되면 이런 생활도 끝이다. 급전이 필요하여 시작한 우유 배달 알바를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알바는 생활을 풍성(개인적 기준)하게 해 준 반면, 돈과 바꾼 토막잠은 육체에 피로를 덧칠했다. 생활력 강한 내가 가정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우유 배달에 뛰어들었다. 이제 소강상태가 되었으니 그만둬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아 결정하게 되었다. 낮에는 회사원, 이른 새벽에는 우유 배달. 9개월. 그간 애썼다.
나만 수고한 건 아니었다.
내 극성스러움을 따라올 자 없는 가족은 알바를 한다고 나선 나를 말리진 못했다. 그저 미안한 마음을 담아 수시로 위로해 줬다.
막둥이 남편은 가끔 청소도 해주고, 설거지도 해줬다. 퇴근해서 빨래도 걷어주고. 어쩌다 한 번 해주는 것이 쭉 해주는 것보다 더욱더 감동적이다. 딸이 필요한 것을 말할 때, 주저하지 않고 선뜻 해 줄 수 있는 배포는 천만다행이다. 얻는 게 많은 우유 알바였다.
큰돈은 아니지만 새벽 우유 배달로 번 돈은 응급약과 같이 긴급한 곳에 사용됐다.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일은 잘 풀려서 마무리되어가고 있고, 가정 경제도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알바를 하기 전에는, 노는 건 아니니까 더디더라도 어떻게든 될 거로 생각했다. 그러면 당장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대책 없이 보낸 시간은 빚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마음을 짓누를 것이 뻔했다. 알바까지 한다고 고집을 피워 가족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긴 했지만, 나의 알바 선택은 시기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점도 꽤 많았다. 우유 배달하는 시간대의 도로는 한산해서 운전하는 것도 편안했고, 일하는 3시간 동안 들었던 오디오북의 양도 상당했다. 일일 만 보 걷기를 넘기는 일은 예사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하루 24시간을 꽉 차게 설계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유 배달을 꺼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선뜻 나서기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일을 시작하면 성실성을 갈아 넣어야 한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빠질 수도 없고, 다른 제품과 헷갈려서 잘못 배달해도 안 된다. 실수가 거듭되면 신뢰를 잃게 되고, 제품 구매 취소까지 이어질 수 있다. 가족들에게 꾹 참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 쉬었다가 벌떡 일어나 밤바람 맞으며 다니는 건 고단하고 외로운 일이었다.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전에는 안 들던 귀찮다는 생각들이 올라왔다. 그런 부정적 생각들이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새 사람을 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일주일 전에는 몸살을 앓게 되었다.
사장에게 그만둔다고 말하고, 한 달이 지나서야 일할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배달 일 나가기 전 잠깐 쉬기 위해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깨서 억지로 몸을 일으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는 편하게 다음날까지 쭉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럴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행복이다.
당연히 가족들은 만세를 외쳤다. 다시는 새벽 알바는 안 하겠다는 나의 다짐에 쐐기를 박듯 딸은 제발이라는 말로 확인 도장까지 받았다.
남편과 딸이 번갈아 가며 고생했다고 말했고, 그 말을 주고받는 우리는 한 배를 타고 폭풍을 헤치고 나온 동지였다.
몸에 익숙해진 배달의 기술은 빠른 시간 내에 사장될 것이다. 우유 배달이 처음은 아니지만, 시작할 때마다 헤매긴 했어도 그만둘 무렵이면 날렵해지고 완료 시간도 단축된다. 경험은 휘발성이 아니고, 저축형인 것 같다.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도 도전하게 되면 어찌 됐든 헤쳐 나가게 돼 있다. 이 나이 먹도록 겪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해결하려고 마음먹으면 길은 보였다. 해결사가 나타났던 게 아니라, 문제를 헤쳐 나갈 방법과 지혜를 주셨다. 시급(時給) 차이의 고저(高低)가 행복을 주는 게 아니라, 나의 하루가 평안한 것으로 감사하며 살았다. 하루의 우유 배달료를 시급으로 따졌을 때, 기껏해야 우리 가족 하루 밥 한 끼 먹으면 없어질 적은 돈이지만, 그 밥은 사랑이고 기쁨이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와서 집안 살림하고, 잠깐 쉬고 다시 일어나 밤바람 새벽바람 맞으며 배달일을 해도 기뻤다.
투잡까지 하며 살아 낸 내가 기특하다. 이런 기특한 나에게 휴가를 선물한다. 알바 안녕. 잠시 안녕.